가격 차이 1조원 육박…자금력 있는 FI 불참한 탓
강력한 시너지 설파…경쟁사 자금부담 늘린 결과
KCGI는 결국 SI 못 구해…"대기업이 꺼린다" 시각 나오기도
-
올해 기업 인수합병(M&A)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모았던 아시아나항공 경영권 매각이 본입찰 1주일도 지나지 않아 결과가 나왔다. 자금력이 우세한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대우 컨소시엄이 12일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다. 초창기부터 아시아나항공 인수의지를 보이고 다수의 증권사ㆍ사모펀드 등을 찾아다닌 애경그룹은 1조원이나 낮은 가격으로 인수자가 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막판까지 강력한 인수의지와 시너지를 강조하며 여론전을 펼친 애경그룹의 활동이 아시아나항공 매각가격 인상, 그리고 상대편 후보의 재무부담을 더 늘리게 만드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지난 7일 치러진 아시아나항공 매각 본입찰에서 HDC컨소시엄은 총 인수가격 약 2조5000억원을, 애경그룹-스톤브릿지컨소시엄은 약 1조5000억원을 써냈다. KCGI-뱅커스트리트 컨소시엄 또한 2조원에 하회하는 가격을 제시했다. 산업은행의 신주 발행 최소 기준 8000억원, 여기에 금호산업이 보유한 구주 가격 약 4000억원을 포함하면 최소 인수가는 1조2000억원이 기준이었다. 결국 HDC컨소시엄은 기준가에 1조2000억원 이상을 깜짝 베팅하며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넘겼다.
업계 한 관계자는 “가격이 근소한 차이라면 모를까 최대 1조원 가량 격차가 벌어진 상황에서, 여타 조건을 따져보기 전에 이미 인수자는 처음부터 HDC컨소시엄으로 기울었다”라고 설명했다.
당초 시장에서는 애경그룹의 인수가능성, 그리고 본입찰 제시 가격에 대한 기대감과 궁금증이 컸다. 이는 그간 애경그룹이 보여온 그간의 행보 때문이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영권 매각이 결정될 당시부터 애경그룹은 가장 앞서 인수전 참여를 선언했다. 주요 후보로 거론되던 SK, GS, 한화, 신세계 등 대기업들이 줄줄이 참여 포기를 선언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실제로 애경그룹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이 진행되기 오래 전부터 인수 가능성을 열어뒀으며 제주항공 재무담당 임원들을 필두로 해서 세부 준비에 나섰다. 이들이 과거 몸담았던 삼성증권이 일찌감치 자문사로 합류했다.
문제는 자금력 부족. 이에 애경그룹은 대형 금융회사들을 찾아 공동투자를 제안했다. 또 국내 대형 사모펀드(PEF)들을 접촉해 공동 인수의사를 물었다. 회사는 부인했지만 필리핀항공ㆍ홍콩계 항공사 케세이퍼시픽 등에도 공동인수 의사를 타진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애경과 컨소시엄을 구성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애경이 요구한 '50:50 에쿼티 투자' 제안이 FI들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최종적으로 예비입찰에 참여한 스톤브릿지캐피탈과 연합했고, 스톤브릿지가 4000억원대 이상의 프로젝트펀드 결성에 나섰으나 자금력이 상대적으로 열위하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하지만 애경그룹의 인수의사는 그 어느 후보보다 강력했다. "항공업 운영 노하우를 가진 유일한 입찰자로, 항공사 간 인수합병을 통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것"이라는 논리가 자주 등장했다.
다만 투자업계에서는 애경의 이런 행보에 의구심을 표명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적대적 M&A가 아니고서야 기업 인수를 준비하는 기업들은 입찰에 앞서 통상적으로 외부에 의견을 내거나 여론전을 펼치는 것을 상당히 자제한다. 경쟁 입찰의 경우엔 더욱 그러하다. 자칫하다 M&A 전략이 노출될 뿐 아니라, 경쟁 상대를 자극해 역효과를 낼 수도 있기 때문. 그러나 애경그룹의 행보는 반대였다. 이에 본입찰을 앞두고는 “애경-스톤브릿지의 자금 모집 속도가 굉장히 빨라 HDC컨소시엄 측이 상당히 긴장하고 있다”는 언급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이변은 없었다. 양측이 ‘엎치락 뒤치락’ 하는 경쟁 구도는 연출되지 않았다. 본입찰이 “뚜껑을 열자 10초도 안돼 결판이 났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본입찰 당일 크게 치솟았던 AK홀딩스의 주가는 이튿날 제시 가격이 알려지면서 8%이상의 급락세를 보였다.
결과적으로 HDC컨소시엄이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가격을 제시한 데는 애경그룹의 여론전도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인다. 본입찰을 앞두고 여론전을 더욱 강화할 정도니 이를 극복하려면 가격을 높게 쓰는 수밖에 없다는 것. 의도와 무관하게 결과적으로는 애경이 아시아나항공 매각가격을 올리는 데 일조한 셈이라는 의미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입찰 과정에서 가장 열의(?)를 가지고 움직였던 곳이 바로 애경그룹과 삼성증권(인수주관사)이었다”며 “그간의 나타낸 인수 의지를 비춰볼 때 이번 제시 가격은 기대에 못미쳤다”고 말했다.
KCGI 또한 이번 매각에서 뚜렷한 '한계'를 보였다. 본입찰 직전, 매각 측은 지난 5일까지 모든 인수후보들을 대상으로 컨소시엄 관계를 밝힐 것을 주문했으나 KCGI를 비롯한 후보들은 보안 등의 이유로 응하지 않았다. KCGI가 국내 유수의 대기업과 접촉한 것으로 전해져 본입찰 때 깜짝 SI가 등장할 것이란 기대감도 있었으나 역시나 이변은 없었다.
국내 대기업들 입장에서도 KCGI와 연합할 유인이 크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KCGI가 접촉했던 신세계만 보더라도, 만약 아시아나항공 인수전에 나섰다면 굳이 KCGI가 아닌, 국내외 대형 PEF들과 얼마든지 연합이 가능한 기업으로 꼽힌다. PEF들 입장에서도 대기업과 연합하면 주주간 계약을 통해 안정적인 회수전략을 마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거래선을 확보해 추가 자본시장 거래에서 유력한 파트너로 낙점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
여기에 한진그룹의 지분을 대거 확보하며 공세에 나선 KCGI와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모양새를 연출하고 싶은 대기업도 많지 않았을 것으로 풀이된다. KCGI 입장에선 행동주의펀드라는 명확한 방향성을 보여줄 것인지, 바이아웃(경영권 거래)을 주 목적으로 하는 여타 PEF들과 유사한 투자 형태를 지향 할 것인지에 대한 정체성 확립이 주요 과제로 남게됐다는 평가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1월 12일 15:3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