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 쿠팡이 만든 전장 뛰어들어 불리
"모든걸 스스로 한다는 대기업 마인드 심해"
쿠팡, 적자 지속에 비전펀드 위기감까지
IPO·M&A 꾀할 수 있지만 현실화는 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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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아마존은 전 세계 유통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고객에게 사랑 받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경영 철학을 앞세워 오프라인 중심이었던 유통 시장을 온라인으로 이동시켰다. 아마존 공습에 도태될 것만 같던 미국 유통체인 월마트는 아마존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가 됐다. 설립자 샘 월튼의 '종업원이 행복해야 고객도 행복하다'는 철학을 앞세워 체질 개선을 했고 유통 강자로 거듭나고 있다.
국내 온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제각기 아마존과 월마트를 벤치마킹 하며 패러다임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아마존과 월마트의 방식만 본 뜬 채 그에 걸맞은 철학은 보이지 않는다는, '카피캣'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꼽히는 이마트와 쿠팡은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지만 자금이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한 우려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이마트는 ‘월마트’가 아니다
2019년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이마트에 유독 기억에 남는 한 해가 될 전망이다. 3월에는 야심차게 온라인 신설법인 쓱닷컴(SSS.COM)이 출범했다. 2분기엔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경험했다. 그리고 4분기엔 사상 처음으로 수장을 외부에서 수혈했다. 모든 것이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다.
지금 이마트가 맞이한 위기는 갑작스럽지 않다.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 중국에선 유통의 축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했고 패러다임의 변화는 이제 전세계적인 추세가 됐다. 최근 몇 년간 유독 심한 경기 부진, 그 부진이 고착화된 한국에선 생존을 건 오프라인-온라인 유통업체 간의 치킨 게임이 이미 시작됐다.
시장에선 이마트의 선전을 기대했고, 또 그렇게 예상했다. 신세계그룹의 탄탄한 자본 동원력, 트렌드에 민감한 오너 경영인의 결단력이 경쟁사 누구보다도 강점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대감은 실망으로, 예상은 빗나가기 시작했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에 비해 효과의 속도는 느리고, 이 때문에 재무안정성이 약해지면서 튼튼했던 신용등급마저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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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은 '전장론'이다. “이마트는 쿠팡이 만든 전장에 뛰어들었다. 운동장에서 뛰는 축구 선수가 갑자기 컴퓨터 앞에 앉아 축구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는 것. 제대로 된 준비 없이 대기업 ‘마인드’로 온라인 경쟁력 강화 기치를 내걸고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는 의미다. 따져보면 재무적투자자(FI) 유치 자금도 마켓컬리가 개척하고 쿠팡도 뛰어든 신선식품 배송에 투입돼 소진되고 있어 특별할 게 없다는 지적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정용진 부회장의 이미지는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마트의 보수적 경영 전략 자체는 크게 변화가 없다”며 “온라인 사업 강화에서 FI 유치를 제외하면 온라인 업체 M&A는 보이지 않고 대부분 스스로 직접 하려는 대기업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첫 FI 유치 방안조차도 이마트의 신용도가 흔들리자 차입금을 늘리는 대신 선택한 고육지책의 성격이 짙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이마트는 공공연하게 ‘한국의 월마트’가 되겠다고 내세워왔다.
하지만 아마존에 밀려 고전하던 월마트가 부활할 수 있었던 전략은 이마트의 투자 방식과 다르다. 2014년 2월, 당시 47세로 월마트 역사상 최연소 CEO로 선임된 더그 맥밀런 최고경영자(CEO)는 ‘디지털 전환’과 ‘신선식품’을 기치로 내걸었다.
디지털 전환은 M&A로 대응했다. 월마트는 지난 2016년 미국 전자상거래 업체 제트닷컴을, 2017년엔 인도 전자상거래 1위 업체 플립카트를 인수했다. 중국 다다-JD 다오지아 투자, 일본 라쿠텐과의 제휴, 멕시코·칠레의 온라인 마켓 플레이스 코너숍 인수 등도 있다. 온라인 사업 매출은 크게 증가했고 월마트 온라인몰은 미국에서 아마존, 이베이에 이어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됐다.
오프라인의 강점인 신선식품을 온라인에서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한 이후 오프라인 매장에서 제품을 수령하는 ‘식료품 픽업 서비스’ BOPIS를 개설했다. 식료품 픽업 서비스는 오프라인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 월마트의 실적 호조 비결 중 하나다.
월마트의 영리한 M&A는 이커머스 포트폴리오를 늘렸고 이를 통해 새로운 소비자들을 끌어모았다는 평가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시장 환경이 다르다보니 월마트의 전략이 그대로 이마트에도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시장에서는 ‘보유한 오프라인 매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치 소비를 이끌어 내야 한다’, ‘시대에 발맞춰 온라인 기업으로 완전 변신을 꾀해야 한다’, ‘규제 해소가 없는 한 이마트의 보폭 확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등등 다양한 의견들을 내놓고 있다. 다만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CEO의 판단과 결단이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새로 이마트를 이끌 수장인 강희석 대표는 컨설턴트로서 월마트 컨설팅을 도맡았던 경험이 있다. 정 부회장은 강 대표에게 월마트, 아마존, 알리바바 등 글로벌 대형 유통업체와 소통하며 글로벌 유통 트렌드를 이마트에 접목시켜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강 대표의 해결 능력 여부를 떠나 CEO가 전권을 쥐고 전략을 펼치고, 이를 믿고 기다릴 수 있는 문화가 이마트에 깔려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지 않다면 강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확실한 성과를 담보하는 구조조정으로 좁혀질 수밖에 없다.
컨실팅업계 관계자는 “온라인 사업의 FI 유치로 단기적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서 외부 컨설턴트 출신 CEO가 재벌 기업에서 소신을 지킨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며 “결국 정용진 부회장이 오너 경영인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가 이마트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쿠팡은 ‘아마존’이 아니다
한국 유통시장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는 곳은 단연 쿠팡이다. 쿠팡에 대한 궁금증이 이전까진 ‘흑자를 낼 수 있을까’, ‘정말 한국의 아마존이 될 수 있을까’였다면 이젠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이번에도 구원투수가 될까’가 추가됐다. 위워크 상장 무산으로 '쿠팡 최대주주' 소프트뱅크 비전펀드에도 위기감이 감돌면서다.
쿠팡은 2013년 법인설립 이후 3조원가량의 누적 적자가 쌓였다. 그럼에도 배송 인프라 구축에 막대한 투자는 계속되고 있다. 소프트뱅크 비전펀드로부터 투자 유치 받은 총 30억달러 중 상당 부분이 물류 인프라 확대에 들어가고 있다.
2014년 자체 배송인 ‘로켓배송’을 시작하며 직접 택배 시스템을 구축했고 생필품 배송, 새벽배송, 음식배달에 나섰다. 12곳에 불과하던 물류센터는 지난해 24개까지 두 배로 늘었고, 2만4000여명 고용에 지출한 인건비는 1조원에 육박한다.
쿠팡이 물류 투자를 이어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롤모델인 아마존이 전 세계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FBA(Fullfillment By Amazon)’와 유사한 시스템을 국내에 구축하기 위해서다. FBA는 아마존이 입점 판매자들의 상품 보관, 주문 처리, 출하, 결제, 배송, 반품 대응까지 모두 대행해 주는 서비스다. 택배 회사를 거치지 않아 입점 판매자는 운송비를 절감하고 이익을 증대시킬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아마존의 매출 확대, 서비스 개선으로 이어져 시장 장악력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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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 투자를 지속할 수 있느냐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현재 쿠팡의 가용 자금은 약 1조6000억원 수준으로, 현 수익구조와 전략이 변하지 않는다면 보유 자금은 2018년 결산일 기준 1~2년 내 소진된다.
그동안 구원투수 역할을 자처했던 손정의 회장은 위기다. 결산 발표에서 분기 7조원 적자라는 최악의 실적을 내놓자 손 회장은 “앞으로 투자 대상 기업이 적자에 빠졌다고 해서 이를 구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업계에선 쿠팡이 향후 소프트뱅크에서 추가 투자를 유치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고 이에 주식시장에선 이마트, 롯데쇼핑 등 전통적 유통강자의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일각에선 쿠팡의 투자 방식에 회의적인 시각이 나온다. 아마존은 미국 온라인 시장에서 30%를 차지하는 절대 강자다. 반면 쿠팡은 국내에서도 10%에도 미치지 못한다. 롯데, 신세계 등 전통 유통 강자들이 잇따라 온라인 사업 강화를 천명했고 네이버, 카카오 등 IT 공룡들의 시장 진출도 배제할 수 없다. 물류센터 투자 이전에 경쟁업체 M&A를 통해 확고한 시장점유율을 구축하는 것이 먼저였어야 한다는 것이다.
IB업계 관계자는 “쿠팡이 초기에 유치 자금으로 11번가, 이베이코리아, 위메프, 티몬 등 경쟁사를 인수해 점유율을 올렸다면 시장 지배력과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으로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올 수 발판을 마련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지금의 위기 상황에선 매출 규모만으로 왜 쿠팡에 투자를 해야 하나라는 질문에 답을 하기가 꽤 어렵다”고 전했다.
쿠팡이 추가 자금 유치 없이는 인수 주체가 되긴 어려워 보인다. 피인수 주체가 될 수도 있다. 해외에선 아마존이 거론되지만 덩치가 너무 커져버린 쿠팡을 제값에 사려고 할 지는 모르겠다. 롯데, 신세계 등 국내 대기업에 매각 또는 합병 가능성도 언급되지만,현재 대기업의 재무상황과 경영권을 중시하는 이들의 성향을 감안하면 이 역시 쉽지 않다.
물품 구성에서 쿠팡만의 특색은 없다는 게 한계로 지목되기도 한다. 쿠팡에서만 살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고객 모집은 물론 유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아마존은 1998년 이후 다양한 기업을 인수하고 있다. 하이엔드 브랜드 패션을 다루는 샵밥, 신발과 가방의 자포스, 유아용품의 디아퍼스닷컴 등 전문성을 가진 온라인 리테일 업체들을 인수했다. 2017년엔 유기농 전문 슈퍼마켓 체인 홀푸드마켓을 인수하면서 하이엔드 유기농 식품 카테고리를 확보했다.
쿠팡은 케빈 워시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RB) 이사를 이사회 멤버로, 글로벌 재무 전문가 마이클 파커를 최고회계책임자(CAO)로 영입했다. 국내에선 김앤장, 현대카드 출신의 금융법률 전문가 이준희 법무담당 VP(부사장)를 영입했다. 시장에선 실탄이 떨어져가는 쿠팡이 나스닥 상장을 돌파구로, 이를 위해 관련 인물을 영입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우버의 부진, 위워크 상장 무산 등으로 테크기업 버블 우려는 극대화했다. 기업 투자에서 현금흐름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데 좀처럼 흑자를 내지 못하는 쿠팡이 비전펀드 외 다른 투자자들을 끌어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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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1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