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양 대신 좀비기업 양산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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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 경고등이 켜진지 오래지만 기업들의 파산이 화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기업들의 체력이 탄탄해서라기보다 저금리 국면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수월해졌기 때문이란 평가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진다면 부가가치 없는 좀비기업들의 수명만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부실기업 정리에 미온적이다. 경제 상황이 엄중하다면서도 재정 확대를 통한 미래 청사진 그리기에만 집중하고 있다. 방향이 옳아도 성장성을 갉아먹는 좀비기업을 정리하지 않는 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지난 5일 ‘2018년 기업경영분석’을 통해 지난해 이자보상비율이 100%를 밑도는 기업이 전체 기업의 35.2%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2016년 31.8%, 2017년 32.3%를 거쳐 매년 상승세다. 영업으로 벌어들인 이익으로 이자도 감당하지 못한 기업들이 늘면서 회생법원을 찾는 기업의 수도 증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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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일손이 크게 부족하지는 않다. 시장을 떠들썩하게 할 중대형 기업들의 회생 신청보다는 소규모 법인들의 파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물결에 대응하기 위해 2017년 파산·회생 전문법원까지 출범했지만, 그에 걸맞는 일감이 없어 설립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법무법인들도 조용하긴 마찬가지다. 구조조정을 올해의 핵심 먹거리로 꼽고 조직을 꾸린 곳도 있었지만 예상이 어긋나며 조직 활용에 애를 먹었다. 올해 그나마 규모가 있는 회생기업은 동아탱커 정도인데, 워낙 자문 거리가 없다 보니 이 사건에 태평양(동아탱커 대리)·광장(특수목적법인)·김앤장(수출입은행)·율촌(산업은행) 등 대형 법무법인이 이례적으로 총출동했다.
구조조정 시장이 잠잠한 것은 덩치가 큰 위기 기업은 2017년 전에 정리가 됐기 때문이다. 구조조정을 주도했던 산업은행은 작년말 관련 조직을 축소했다. 시중은행들도 기업개선부 등 관련 조직의 힘이 빠졌다. 자문사들이 은행 구조조정 부서 출신 인력을 영입해도 활용법이 마땅치 않았다.
무엇보다 저금리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은행은 올해만 두 번 기준금리를 내렸다. 기준금리가 2년만에 다시 최저 수준으로 내려오면서 한계에 달했던 기업들도 잠시 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기업의 본질적 체력이 그대로라도 이자비용이 줄면서 실적이 개선되는 효과를 봤다. ‘경기 부양’이라는 전통적 기대 효과 대신, 좀비기업의 수명이 길어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기업들이 대출 부담에 회생절차 신청을 준비하다가 다른 은행으로부터 차환에 성공해 계획을 접는 경우도 많았다. 연체율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고 있지만 은행들로선 당장의 실적을 챙기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도 투자 기업이 망가졌을 때 여는 관리 회의가 유명무실해졌다고 한다. 저금리 상황이 경제가 호황인 듯한 착시 효과를 불러왔고, 실제로도 기업들이 잘 망가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상황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기준금리를 결정한 지난달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선 추가적인 금리 인하를 주장하는 의견도 있었다. 연내는 아니라도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은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올해만 세 번 기준금리를 인하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움직임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한 대형 법무법인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는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기업도 당장 위기를 넘길 돈만 있으면 디폴트(채무불이행)에 이르기 전에 은행을 갈아탈 수 있게 됐다”며 “일감이 줄어든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들은 송무 등 다른 먹거리를 찾느라 분주하다”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선 상황이 어렵더라도 영업을 이어가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이 스스로 사업을 접기 어렵다면 정부가 나서 구조조정의 틀을 세워야 한다. 정부도 경제 상황의 심각성은 인지하는 모습이지만 구조조정엔 큰 비중을 두지 않는 분위기다. 내년 총선이 반 년도 남지 않은 상황이라 적극적인 정책을 내놓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최근 ‘쌍끌이 구조개혁론’을 설파했다. 인구 감소 등 대세를 바꾸기 힘든 문제는 ‘적응적 구조개혁’, 성장잠재력 확충 등 스스로 바꿀 수 있는 과제는 ‘전향적 구조개혁’을 해나가야 된다는 주장이다.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한다는데 방법론은 모호하다. 구현 방식은 결국 재정 확장이다. 정부는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 ‘곳간에 쌓인 작물은 썩는다’ 등 표현으로 재정 확장의 당위성을 찾고 있다.
그러나 재정 투입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선 성장의 발목을 잡는 요인을 먼저 제거해야 한다. 부총리가 밝힌 것처럼 부족해지는 노동력을 효율적으로 쓰기 위해서든, 성장잠재력을 키우기 위해서든 좀비기업의 정리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한 구조조정 업계 관계자는 “좀비기업들이 남아 있으면 은행 대출, 정부 재정 등 사회적 자원을 갉아 먹을 수밖에 없다”며 “성장성 있는 곳에 돈을 넣어야 한다는 점은 공감하지만 그 전에 좀비기업들을 정리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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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1월 1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