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400억 손해…수익 낮은 '개인맞춤 신탁' 늘어나나
결국 '글로벌 진출'이 답…"국내은행인가 해외은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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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LF 사태 이후 금융당국이 은행의 신탁상품 판매에 대해 잇따라 규제 의지를 밝히는 가운데 은행권이 근심에 빠졌다. 은행들의 건의가 일부 수용됐음에도 불구, 신탁 관련 규제는 결국 국내 은행들의 내수시장 입지를 크게 저하시킬 거라는 전망이다.
지난달 15일 금융당국은 은행이 고난도 사모펀드 뿐만 아니라 고난도 신탁 상품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자 보호대책'을 발표했다. 은행의 반발이 이어지자 24일 원금 손실 가능성을 20% 이하로 낮춘 신탁에 대해서는 판매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입장을 일부 완화하기도 했다.
12일 금융당국과 시중은행장 간담회 이후 금융당국은 추가로 은행권 건의사항을 받아들였다. 기초자산이 주요 5대 주가지수이며 공모로 발행한 손실배수 1배 이상 주가연계신탁(ELT)의 경우 판매가 가능하도록 했다. 다만 판매량은 올해 11월 잔액 이하로 유지해야 한다.
은행의 신탁 판매금지에 대한 논란의 핵심은 ▲고난도 금융상품의 기준 ▲신탁의 사·공모 구분 이었다.
당초 모호한 기준을 내세웠던 금융당국은 '파생상품을 내재하는 등 복잡한 구조'에 '원금의 20% 초과 손실이 가능한 상품'을 고난도 금융상품의 기준으로 확정했다. 자체판단이 어려우면 금융투자협회 점검위원회에서 판정하고, 이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금융위원회 판정위원회에 요청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역시 결국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강력한 규제라는 것이다. 상품을 개발하고도 고난도 금융상품인지 판정이 여의치 않아 해당 여부 확정이 날 때까지 판매가 중지될 수 있는 까닭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기법이라는 건 계속 발전하는데 새로운 상품이 나오면 기존에 없는 기준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신탁상품의 사모 및 공모 여부도 사실상 구분하기 어렵다는 평가다. 신탁은 부동산 등을 은행에 맡겨 대신 운용하게끔 하는 것이기 때문에 펀드와 달리 공·사모의 개념이 사실상 없다는 설명이다. 금융당국은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 투자자와 1대1로 계약을 체결해 모집한다는 점에서 '사모'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결국 '신탁 및 사모펀드'로 뭉뚱그려 고난도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규제가 확정됐다.
어느정도 보완이 되긴 했지만, 결국 이번 조치로 인해 비이자이익을 키우던 은행들은 난처한 지경에 빠졌다. 당장 판매 규모가 현 시점으로 제한돼 규모를 늘릴 수 없고, 기존에 판매했던 상품 구조만 향후 판매가 가능한데다, 활용할 수 있는 지수가 코스피200 등 대표지수 5가지로 제한돼 차별화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신탁을 통해 ELT를 판매해 얻은 은행들의 수익은 연간 최대 4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해당 시장의 규모는 올해 상반기 기준 40조원, 통상 신탁 수수료율은 1% 안팎이다. 일부 건의가 받아들여지며 수익 전부를 날리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지만, 수익성 악화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은행은 2017년부터 저금리로 인해 예대마진이 축소되자 새로운 수익원으로써 ELT 판매 규모를 늘려왔다. 5대 시중은행(KB국민은행, 신한은행, KEB하나은행, 우리은행, NH농협은행)의 신탁 수탁액은 2017년 232조원, 2018년 297조원, 2019년 상반기 362조원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당장 상품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컨데 지난 2015년 홍콩H지수(HSCEI) 사태 이후 주요 증권사들은 이보다 변동성이 적은 HSI(항셍지수)로 ELS를 만들어 판매했다. 은행의 경우 향후 비슷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이것이 불가능하다. HSI지수는 '주요 5대 지수'에 포함돼있지 않아 신탁 편입이 불가능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시장엔 어떤 일이 벌어질 지 모르는데 '5개 지수만 가능하다'는 포지티브(Positive) 규제는 금융당국의 편의주의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상품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결국 경쟁력에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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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률 저하로 인한 고객이탈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은행이 원금손실률을 낮추기 위해 안정적인 종목을 상품에 추가하면 수익률도 덩달아 내려가 매력이 경감될 수 있다.
투자자 맞춤형 신탁 상품 경쟁이 심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까닭이다. 제재에 맞춰 신탁시장을 다른 방향으로 키우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에 따라 인지도가 있는 '맞춤형 신탁'을 추가 운용하는 것이 묘안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낮은 수익률을 그나마 보완할 마케팅 포인트인 셈이다.
투자자 맞춤 신탁 상품은 꾸준히 은행에서 개발되어 왔다. 국민은행은 이산가족 대상 'KB북녘가족애(愛) 신탁', 1인 가구 대상 'KB1코노미 증권투자신탁(주식형) 등을 출시한 바 있다. 신한은행은 유언기부 신탁 등을, 하나은행은 '치매안심신탁', '양육비 지원 신탁' 상품을 선보였고 우리은행은 '우리나눔신탁'을 내놓았다.
그러나 해당 신탁 상품들은 수익성이 크지 않고 상용화가 안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신탁업계 관계자는 "이자가 많이 붙어야 수수료도 높지만 관리형 상품들은 원금을 보장해야 해서 고수익을 바라기 힘들다"며 "일본만큼 상용화가 안 돼 영업점의 직원들이 설명하기에도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어 긴 상담이 가능한 PB지점에서 취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이자수익을 늘려야 하는 은행들은 결국 글로벌 진출이나 IB사업부문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해당 분야의 경쟁도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국내 시중은행들에 금융당국이 자꾸 개입하면 은행들은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다"며 "가뜩이나 외국인 주주가 대부분인데 은행이 해외 자산까지 더 늘린다고 하면 그건 국내은행이 아니라 해외은행이다"고 꼬집었다.
은행들은 해외 진출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올해 7월 베트남 4대 국영상업은행 중 하나인 BIDV(Bank for Investment and Development of Vietnam)에 1조원을 투자하며 2대 주주로 올라섰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베트남 영업에 공을 들이며 동남아시아 지역에서의 영향력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한은행은 11일 베트남에서 한인 기업가들 등을 대상으로 경제전망 세미나를 개최해 투자 관련 정보를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은행이 초기 인프라 비용을 들여 진출하고 있는 동남아 시장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나온다. 현지은행과의 호환성이 떨어지는 등 초기 투자자본 대비 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은행들은 동남아가 아닌 다른 국가로 진출을 도모해 활로를 찾아야 할 때"라며 "마이너스 금리인 일본이 먼저 동남아로 진출해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만큼 국내 은행이 사업을 크게 확장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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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2월 11일 15:04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