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젠-헬릭스미스 이어 올해 세번째 대형 임상 실패
K바이오 신뢰도 영향...업계 밸류에이선 하락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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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약개발업체의 마지막 임상 실험 결과 발표로 관심을 모았던 비보존의 '오피란제린'이 미국 임상 3상에 실패했다. 신라젠, 헬릭스미스에 이어 올해 세 번째 '바이오 대장주'의 임상 실패다.
비보존은 K-OTC에 상장된 장외종목이지만, 올해 장외거래가가 3배 이상 오르며 장외 바이오 대장주에 등극한 회사다. 잇따른 임상 실패로 가라앉은 바이오 투자심리가 비보존을 중심으로 결집하며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다. 이런 비보존마저 임상에 실패하며 내년 바이오 업체 주가 및 상장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비보존은 지난달 24일 비마약성 진통제 오피란제린의 복부성형술 임상 3a상에서 통계적 유의성 확보에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오피란제린은 현재 주류 진통제인 마약성 진통제를 대체할 수 있을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성분이다. 바이오업계에서는 비마약성 진통제 글로벌 시장이 2024년 420억달러(약 49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보존은 신약 성분이 아닌, 임상 설계의 실패이며 새해에 이를 보완해 새로운 임상에 착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이날 K-OTC 시장에서 비보존은 하한가로 직행했다. 전일 대비 2만1800원(-30%) 떨어진 5만15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비보존은 12월 초까지만 해도 시가총액 2조원, K-OTC 거래량의 80%를 점유하는 '뜨거운 종목'이었다. 연초 2만8000원대였던 장외거래가가 7만4000원대까지 치솟았다.
신라젠, 헬릭스미스에서 임상실패로 인해 손실을 맛본 투자자들이 희망을 걸고 몰려든 곳이 비보존이었다. 지난 6월 상장을 위한 기술성 평가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은 이후 잠시 횡보하다가 10월말 이후 2개월만에 3배로 올랐다. 사모신탁으로 개인 자산가들의 자금이 투자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비보존의 임상 실패는 이날 증시 바이오주 전체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이날 코스닥 150 생명기술 지수는 전일 대비 1.66% 하락한 2699.79로 거래를 마감했다. 비보존 지분을 보유한 관계사 텔콘RF제약과 에스텍파마는 하한가를 기록했고, 코스닥 바이오 대장주 셀트리온헬스케어도 장중 한때 2%에 가까운 낙폭을 보였다.
신라젠, 헬릭스미스에 이어 비보존마저 임상 3상에 실패하며 9월 이후 살아나는듯 했던 국내 신약개발 바이오업체에 대한 투자심리에도 다시 찬물이 끼얹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비보존의 내년 상장 계획에도 차질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비보존은 신한금융투자를 주관사로 선정해 상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임상 결과 발표 전 장외 시가총액 2조원 기준, 예상 공모 규모가 3000억~4000억원에 달하는 대어(大漁)급 바이오 기업이었다. 일각에서는 다시 기술성 평가에서 발목이 잡힐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바이오기업 자체에 대한 가치평가(밸류에이션) 척도 자체가 낮아지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코스닥 150 생명기술지수 기준 주요 바이오기업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2018년 1월 기준 10배를 넘었다. 올해 초엔 6배로 떨어졌고, 지금은 4.78배다. 산술적으로도 불과 2년 새 바이오 기업에 대한 가치평가 잣대 자체가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신라젠, 헬릭스미스에 이은 비보존 임상 실패는 이런 'K바이오' 밸류에이션 하락을 더욱 가속화시킬 거란 지적이다.
증권업계도 당황하고 있다. 2017년 바이오 광풍의 여파로 대부분의 증권사 기업공개(IPO) 부서는 상장예정기업 포트폴리오의 20~30%를 바이오기업으로 가지고 있다. 올해 코스닥 150 생명기술 지수가 33% 떨어지는 등 부진했던 까닭에 안 그래도 상장 시점을 잡기가 어려워졌는데, 앞으로 바이오 투자심리가 더 얼어붙을 가능성이 커지며 대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새해 상장을 예정하고 있는 SK바이오팜이 받을 영향도 관심이다. SK바이오팜은 핵심 신약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허가까지 받았다는 점에서 임상에 실패한 다른 바이오와는 차별화된다는 평가다. 다만 타 바이오와의 차별성에 더 영향을 받을지, 바이오 자체에 대한 투심 악화에 더 영향을 받을지는 뚜껑을 열어봐야 알 거란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8월말 바닥을 치고 10월까지 반등했던 바이오 투자심리가 다시 거꾸러졌다는 점에서 내년 상반기까진 회복을 위한 기다림이 필요할 것 같다"며 "8월 셀트리온에 공매도 포지션을 취했다가 물린 일부 외국인 투자자들이 10월 다시 주가가 20% 급락하며 공매도 이익을 실현하고 한국을 떠났다는 소문이 들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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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19년 12월 2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