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의체는 실체도 없어…사외이사 동의 근거에 '의문'
사실상 4곳 배상 결정 내린 것?…하나銀 "우선시 되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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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이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 피해기업 147곳과의 추가 분쟁 자율조정 문제를 다루는 은행 협의체에 참여하겠다고 밝힌데 대해 '쌩뚱맞다'는 평가가 나온다. 아직 일성하이스코·남화통상·원글로벌미디어·재영솔루텍 등 주요 4개 피해기업에 대한 배상 권고안마저 받아들일지 여부가 결정이 나지 않은 상황인 까닭이다.
하나은행을 제외한 나머지 키코 관련 은행들은 여전히 배상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 배임 등 법적 이슈도 얽혀있다. 결국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등으로 이미지가 손상된 하나은행이 미리 엎드려 '제스처'를 취하는 모습이 아니겠느냐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나은행은 지난 8일 이사회에서 키코 추가 분쟁조정을 위한 은행 협의체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키코 공동대책위원회가 피해 입증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분쟁 조정을 신청한 피해기업 4곳에 대해 금감원이 지난달 12일 분쟁조정 결과를 발표하면서 나머지 피해 기업들에 대해서는 은행에 자율조정(합의 권고)을 의뢰하겠다고 밝힌 데 따른 것이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에서 변동할 경우 약정한 환율에 외화를 매도할 수 있지만 범위를 벗어날 경우 큰 손실을 보는 구조의 파생금융상품이다. 2008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로 환율이 크게 오르며 은행과 키코 계약을 체결한 수출 중소기업들이 3조3000억원 규모의 피해를 본 바 있다. 지난달 금감원은 은행으로 하여금 당시 피해금액과 기업 규모 등을 고려해 손실금액의 15~41%를 배상하라고 권고했다. 은행별 배상액은 신한은행 150억원, 우리은행 42억원, 산업은행 28억원, 하나은행 18억원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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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은행들은 배임 논란 등을 이유로 권고안 수용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2008년부터 논란돼 온 키코사태는 2013년 사기가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났고 민법상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 시한인 10년도 지났기 때문에 배상할 경우 주주 이익을 해치는 결정을 한 것으로 보여질 소지가 있다. 지난달 23일 윤석헌 금감원장이 "고객을 도와주겠다는 경영 의사 결정은 배임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관련해 업계에서는 "금감원이 주주는 아니지 않나"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오고 있다.
8일 결정 시한 연장을 요청한 은행들은 이사회를 통해 4개 업체에 대한 수용 여부를 논의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한은행은 2월 초까지 논의해 결론을 내릴 계획이다. 우리은행도 4곳에 대한 배상 여부는 확정 짓지 못한 상태일 뿐만 아니라 협의체 참여 여부도 정해진 바 없다고 전했다. 국민은행은 이번에 권고를 받은 4개 업체와는 관계가 없지만, 키코 사태의 진행 추이를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다.
아직 피해기업 4곳에 대한 배상 결정도 나지 않은 상황에서 147곳과의 추가 분쟁에 대비하려는 하나은행의 결정에 의문부호가 붙는 배경이다.
협의체를 제안한 금감원마저도 선후가 다소 바뀐 것 같다는 입장이다. 한 금감원 분쟁조정2국 관계자는 "사실은 4개 업체에 대한 배상 수용 여부가 결정되고 나서 협의체를 만들어야 하는 게 맞다"면서도 "협의체 참여한다는 의사는 결정이 복잡한 게 아니다보니 하나은행이 빨리 발표한 듯 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하나은행이 4곳에 대한 배상 결정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타 은행들은 이미 판결까지 난 4곳에 대한 배상 여부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머지 기업에 대한 배상을 논의하는 협의체 가입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나은행이 보여주기식 결정을 내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부터 DLF로 인해 업계에서의 평판이 저하됐을 뿐만 아니라 올 초 라임사태로 인한 불완전판매 논란이 고개를 들고 있어서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지난해 이슈가 많았던 하나은행이 금융당국에 잘 따르는 모습을 보이려는 모양새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동종업계 관계자는 "사실 4곳에 대한 배상 여부도 결정하지 못한 하나은행이 협의체 참여한다고 해서 당황스럽긴 했다"며 "사실상 보여주기식에 가까운 것 같다"고 전했다.
하나은행이 참여 의사를 밝힌 협의체의 실체가 없음에도 사외이사들이 참여에 동의한 데도 의문이 제기된다. 금감원은 협의체를 통해 은행이 자율적으로 배상비율 등을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의사결정 구조 뿐만 아니라 중재자 개입 여부, 일정도 결정된 게 없다고 전했다. 사실상 하나은행 사외이사들이 구성 계획조차 없는 협의체에 참여하는 것을 동의한 셈이다.
이와 같은 평가에 대해 하나은행 관계자는 "이사회에 협의체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안건을 올려 통과된 것"이라며 "협의체에서 우선이 되려면 협의체에 참여를 해야 한다고 판단해 참여를 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고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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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1월 10일 16: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