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이재용·CJ 이재현 브레이크
LG 구광모·GS 허태수 관심 UP
확장은 해외·스타트업·자본투자
국내선 구조조정·지배구조 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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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말이 있다. 연말연시에 이뤄지는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한 해 그 기업의 전략과 투자 방향성을 읽을 수 있다. 과거에 비해 기업들이 처한 환경이 크게 달라졌고 시스템 경영이 대세가 되고 있지만 결국 결정은 사람이 한다. 투자자들이 기업의 인사와 조직개편을 그냥 흘려 보낼 수 없는 이유다.
올해는 특히 주목할 만한 그룹들이 많다. 오너 경영인들의 의지가 크게 반영돼 본색이 드러날 그룹이 있는가 하면 이벤트 발생으로 운신 폭이 크지 않는 그룹은 큰 변화를 주지 않거나 못하고 있다. 인사 및 조직개편 이후 각 그룹들이 구조조정에 나설지 확장모드를 견지할지, 그에 따라 자본시장에서 바이어(Buyer)가 될지 셀러(Seller)가 될지, 관련 (Deal)이 국내에서 있을지 해외에서 있을지 투자자들과 자문사들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오너경영인 본색 드러난 롯데와 현대차
연초부터 롯데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향후 방향성이 주목받고 있다. 이전까지 각자의 이유로 오너 경영인들의 운신 폭이 좁았다면 올해는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는 평가다.
롯데그룹의 이번 인사는 투자금융업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롯데지주는 황각규 부회장, 송용덕 부회장 투톱체제가 이뤄졌고, 부진한 유통부문의 수장에는 강희태 롯데백화점 대표이사 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 후 BU장에 임명했다. 그 과정에서 40년 넘게 그룹에 몸담았던 그룹 공신들이 물러났다.
이전까진 신동진 회장의 공백 장기화에 대응해야 하는 비상경영체제였다면 이번엔 신 회장 의지가 담긴 사실상의 첫 인사 및 조직개편이다. 신 회장은 경영 일선으로 돌아왔고 ‘뉴롯데’ 슬로건에 걸맞게 경영진의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동시에 권력이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견제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졌다.
롯데그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이전까지 그룹 내 ‘온정주의’가 있었던 게 사실인데 이번 인사에선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확실한 성과주의를 표방하면서 특정 임원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차단하는 모양새”라며 “새 부회장들의 권한이 강화한 만큼 결과에 대한 책임도 더 엄중히 물을 것”이라고 전했다.
롯데는 유통업과 석유화학에 집중돼 있는 사업 구조상 올해 계열사 전반이 수익성 개선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호텔롯데 상장을 제외하면 업황 악화에 대비해 계열사간 합병, 사업부 정리 등 당분간 자본시장에서 소극적 행보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 유통업의 경우 롯데쇼핑을 중심으로 온라인 사업 주체를 일원화하고 석유화학업은 롯데케미칼을 중심으로 계열사간 합병을 하는 등 전반기에는 효율성 강화를 위한 사업 구조조정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식품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 가능성도 열려있다. 어느 정도 일단락 되면 롯데쇼핑이 유통 M&A 시장의 큰 손으로 다시 부상할 수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의 행보는 가장 큰 관심사다. 한동안 부진의 늪에 빠졌던 현대차그룹을 미래 자동차 시장의 패러다임으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과거와는 달라진, 성과주의 인사와 속도감 있는 조직개편이 한몫하고 있다. 각 분야에 걸쳐 전문 인력을 흡수하는 속도는 굉장히 빨라졌다. 알버트 비어만 사장 등 정 부회장이 직접 영입한 외국인 인사들은 각 사업부의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정 부회장은 끊임없이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비전에 부합하는 딜들은 대부분 해외에서, 그것도 조인트벤처(JV)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국내에선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 등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작업들이 주를 이루고 비자동차사업 또는 미래차사업과 거리가 다소 먼 사업부에 대한 구조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외국계 IB 관계자는 “플라잉카 상용화를 위한 인재 영입, 고성능 전기차 개발업체 리막 투자,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업체 앱티브 투자 등 현대차의 투자 기조는 실리콘밸리 기업을 닮아가고 있다”며 “ 이것이 국내 투자자들에겐 오히려 직접적인 투자 기회가 줄어들 것이라는 얘기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3월에 있을 현대자동차 주주총회는 정몽구 회장의 사내이사 임기가 만료되는 시점이다. 정 회장이 더 이상 사내이사진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다면 현대차그룹은 명실상부 정의선 시대가 시작된다.
오너 리스크에 브레이크 걸린 삼성과 CJ
CJ그룹과 삼성그룹은 오너 리스크가 해결되지 않아 본의 아니게 조직에 큰 변화를 주지 못했다. 그동안 확장 모드를 견지해 온 CJ는 당분간 ‘OFF’ 스위치를 켜야하고, 삼성은 언제 인사와 조직개편이 이뤄질지 요원한 상태다.
CJ그룹은 2020년을 그룹 경영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원년으로 칭하며 '철저한 성과주의'와 '책임 경영'을 전면에 내세웠다. 쉬완스컴퍼니 인수 이후 CJ제일제당 신용등급에 경고등이 켜지자 그룹 전반적으로 재무구조 개선 기조 돌아섰다. 그룹 M&A를 진두지휘하던 지주사 CJ㈜의 힘은 자연스레 빠졌다.
시장에선 CJ그룹이 한동안 바이어가 아닌 셀러 역할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일찌감치 그룹 내 사업부 또는 계열사의 매물 출회 가능성이 언급된다. 이는 경영 승계와도 맞물려 있다. 이선호 CJ제일제당 부장이 물의를 일으켰지만 승계 방향성은 확실하다는 평이다. 그룹 내부와 투자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해선 예비 오너 경영인으로서 자질을 보여줄 수 있는 트랙 레코드를 쌓아야 한다. 이선호 부장이 그룹 내 벤처캐피탈(VC)인 타임와이즈인베스트먼트의 사실상 최대주주로 이름을 올린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재계 관계자는 “이선호 부장이 앞으로 사내 VC를 통해 주력 계열사들의 투자 건에 관여할테고 관련 딜들은 모두 이 부장의 성과로 남을 것”이라며 “그룹 차원에선 비주력사업들을 정리해 향후 주력 계열사들이 다시 한번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는 체력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삼성그룹 앞은 오리무중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오는 17일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파기환송심 공판이 예정돼 있다. 선고 공판 등 재판 일정으로 인사는 밀렸다. 삼성전자는 이상훈 이사회 의장이 지난해 법정 구속됐고, CES 2020을 포함한 주요 행사들이 연초에 몰려 있어 사장단 교체 시기를 놓쳤다.
그룹 방향성에도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삼성전자를 위시한 전자 계열사들이 주축이고 비전자 계열사들은 여전히 각자도생 분위기다. 최종 결정권자의 유무가 정해진 바 없어 특별한 딜이 발생할 여지도 크지 않다. 과거 하만 인수와 같은 대형 딜들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생태계 구축을 위한 해외 스타트업 M&A는 꾸준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IT업계 관계자는 “반도체에 대한 투자는 지속적으로 이뤄지겠지만 신사업으로 내세웠던 미래차 부문은 이재용 부회장의 판단과 결정이 매우 중요하다”며 “시장에선 하만 인수 효과에 대해서도 여전히 물음표를 가진 상황이라 대형 M&A에 대한 기대감은 그리 크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기대감과 의문 공존하는 LG와 GS
LG그룹은 구광모 회장 3년차를 맞았고 GS그룹은 허태수 신임 회장이 선임됐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만큼 기대감은 있지만 그만큼 물음표도 지워지지 않는다.
LG그룹 앞에 놓여진 경영환경은 녹록지 않다. 지난 2년간 구광모 회장만의 작품은 사실상 없는 상태다. 이제는 주주들과 시장을 설득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구 회장이 보수적인 경영방식에서 벗어나 외부 기업과 협력, 과감한 투자, 인재 영입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그룹 체질을 새로운 시대에 걸맞게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은 여전하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해 보인다.
연말 인사에서 신학철 3M 수석부회장을 LG화학 신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내정하고, 재계 최연소 임원을 배출하는 등 변화는 있어보인다. 하지만 LG화학, LG생활건강은 CEO들의 영향력이 큰 계열사고 ㈜LG에선 권영수 부회장이 전면에 나선 모양새다. 올해 구광모 회장의 경영 능력 시험대는 LG전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LG는 전자를 중심으로 미래차 전장부품 사업을 신사업으로 내걸었지만 ZKW 인수 이후 뚜렷한 결과물이 없다. MC사업부의 미래도 여전히 점치기 어렵다.
GS그룹 주력 사업인 에너지 사업은 정체기를 맞았다. 건설 부문은 독자적 행보를 보일 개연성이 더 커졌다. 시장에선 그간 비주력으로 분류됐던 유통 부문이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을지 주목한다. 허태수 신임 회장이 밝힌 디지털 부문의 접목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분야고 허 회장이 GS홈쇼핑 출신이기도 하다.
포인트는 투자 범위다. GS그룹은 그간 대형 M&A에서 유력 후보로 매번 언급됐지만 완주 또는 성공 사례가 많지 않다. GS그룹이 유의미한 규모의 온라인 유통업체를 인수한다면 사업확장 의지를 확인할 수 있지만 반대라면 다시 한번 시장에 실망감을 안길 수 있다.
요약하자면 올해 국내 자본시장에선 재계의 움직임이 활발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사들이기 보단 팔거나 정리하는 주체로 주목받는다. 유통업을 제외하면 사업 확장을 위한 투자 계획은 거의 전무한 상황이다. 승계, 지배구조 개편 등 장기간 쉽게 해결되기 어려운 영역에선 지지부진하지만 지속적으로 딜이 나올 수 있다.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과 관련된 딜은 대부분 해외에서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자금 조달과 관련해서도 현지 조달, 또는 현지 투자자 유치가 트렌드가 되고 있어서 국내 투자자들의 역차별 현상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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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1월 1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