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다툴 여지 있고, 배상 시 배임 우려
감독당국 방관이 라임사태 키웠다 지적
금융회사에 목소리 낼 자격 있냐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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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자산운용 환매 중단 사태에 대해 상품을 판매했던 금융사들이 먼저 피해자 보상에 나서는 안이 거론된다. 감독당국은 DLF 대란 때처럼 금융사를 압박해 문제를 조기에 진화하길 바라는 분위기인데 금융사들은 고개를 젓고 있다. DLF 대란과는 사안이 다르고 금융사들도 피해자라는 주장이다. 감독 소홀로 사태를 키운 감독당국이 마침 주요 회장들의 각종 이슈가 많은 시기를 틈타, 금융사 뒤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지금까지 라임자산운용이 약속한 날짜에 돌려주지 못한 금액은 1조7000억원에 육박한다. 사모채권(플루토 FI D-1호) 및 메자닌(테티스 2호) 투자 펀드에 무역금융펀드(플루토 TF 1호) 문제까지 불거졌다. 투자자들은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불완전 판매, 사기 판매를 문제삼아 소송에 나서고 있다.
궁극적으론 투자자들의 손실 배상 문제가 남는다. 라임자산운용은 이미 대응 능력을 잃은 상황이다. 채권 회수 여부에 달려있지만 그럼에도 불구, 평판 논란 때문에 여력이 있는 판매사들이 먼저 투자자에 배상하게 될 것이란 예상이 나오고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금융사가 우선 책임을 지고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하는 방식을 염두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지난 DLF 대란 때의 대처와 유사하다. 금감원은 우리은행, 하나은행의 내부 통제 실패 및 조직적 불완전판매를 강하게 문제 삼았다. 두 은행은 금감원의 손해배상기준안을 받은 뒤 자율 배상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금융당국 외부 자문위원은 “금감원은 불완전판매 책임 소지가 있는 금융사들이 앞장서 책임을 지고 나중에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자산을 활용하거나 최종 책임자에 구상권을 행사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당장 금융사들이 앞장을 서면 라임사태는 보다 빨리 진정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엔 금융사들이 앞장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일단 이번 사태는 DLF 대란과는 문제의 결이 다르다.
DLF 때는 ‘OEM 펀드’ 논란이 있었을 만큼 은행들의 과실이 명확했다. 은행들은 초기부터 책임을 인정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라임사태에서는 판매사들이 연합해 ‘우리도 피해자’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객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면서도 먼저 책임을 질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다툴 여지가 있는데 근거 없이 배상에 나섰다간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가능하다면야 손실 고객들에 다 갚아주고 싶은 것이 은행 생각”이라면서도 “감독당국이 압박한다 해도 배임 우려가 있는 은행들이 앞장서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사들이 먼저 배상을 한다 쳐도 추후 금융회사들이 구상권 등을 활용해 이를 되돌려 받을 길은 마땅치 않다.
문제가 된 펀드 자산을 활용해야 하는데 회수가 어려워진 것들이 많다는 평가다. 채권회수율에 따라 달라지고 이 부분에 대해 현재 어떤 예측도 쉽지 않다. 그렇다고 운용사인 라임자산운용에 책임을 묻는다 쳐도 상환 여력이 없기 때문에 당장인 손실 확정 가능성이 크다. 라임사태가 본격화하기 전 정상적인 펀드 판매 대금이 문제 펀드 환매용으로 쓰인 경우도 많아 어디까지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게다가 판매사인 시중은행들 각각의 현재 처한 상황과 라임사태에 대한 이해관계도 다르다.
우리은행이나 신한은행처럼 판매 규모가 큰 곳들은 향후 펀드 자산을 활용할 때 판매액 비율대로 나눠갖자는 기류가 강하다. 산업은행이나 NH농협은행처럼 판매 규모가 작거나 문제되지 않는 상품만 팔았던 금융사들은 자신들이 우선권을 가져야 한다는 입장으로 알려졌다. 지금은 판매사들이 공동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결국 각자도생 하게 될 전망이다. 게다가 산업은행처럼 준 공공기관 성격을 지닌 금융사의 경우, 법적책임의 정당성보다는 당장의 정치적 생존능력과 임기를 얼마 두지 않은 회장의 스탠스 등을 감안해 '정무적'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른바 '법리' 혹은 '시장논리'가 아니라 '정치논리'로 접근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인데, 이러다보니 다른 시중은행들도 이에 편승해야 할지, 그렇다고 이후 몰아닥칠 후폭풍을 감내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
결국 본질적으로 금융감독당국이 라임자산운용 사태에 판매사들인 시중은행 등 금융사들에 목소리를 낼 자격이 있느냐는 비판이 나온다.
라임자산운용이 운용자산(AUM)을 급격히 키우면서 시장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컸지만 어쨌든 감독당국이 관리 감독에 소홀했다. 복잡한 모-자펀드 구조를 꾸려 사모펀드를 사실상 공모펀드처럼 운용하는 것도 용인했다.
결국 사태 확대에 일조한 금감원이 금융사들에 부담을 지워 감독 의무 소홀에 대한 당국의 책임을 떠넘기고 당장 피해가려 한다는 지적이다. 이미 감독당국은 지난 1년 가까이 금융사고가 터질때마다 개별 금융사에 중징계를 남발하며 빈축을 샀다.
최근엔 금감원이 판매사들에 라임자산운용 펀드 상각을 요구하며 논란이 되기도 했다. 상각을 통해 회수 기대치를 낮춰버리면 그 이후의 회수 부담은 오롯이 라임자산운용과 판매사의 몫이 된다. 금감원이 책임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리수를 두는 것이 아니냔 평가가 나왔다. 판매사들은 상각 논의는 이르다며 반발하는 분위기다.
금감원 관계자는 판매사들의 선배상 가능성에 대해 “라임사태에 대해선 관련 부서끼리 협의 중이며 금감원이 어떻게 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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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1월 2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