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 배급사 CJ ENM 수혜 거론
'자본력' 보여줬지만 콘텐츠 역량은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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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Parasite)'이 글로벌 영화산업의 본토인 미국에서 연이은 수상 소식을 전해오고 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이달 5일 골든글로브에서 한국영화 사상 최초로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쥐었다. 이후 17일엔 미국편집자협회(ACE)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 최초로 장편영화 드라마부문 편집상을, 19일엔 미국배우조합 시상식(SAG)에서 최고상 격인 앙상블상을 수상했다.
'수상 행진' 뒤에선 제작투자사 CJ ENM이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봉준호 감독이 언론 인터뷰에서 CJ ENM 해외배급팀 실무진에 감사를 표할 정도다. 이젠 기생충의 한국영화 최초 아카데미 수상을 위해 CJ ENM이 지난해부터 조직적으로 벌여 온 노력이 결실을 맺을지가 남았다.
그룹 차원의 전폭적 지원이 이뤄졌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는 기생충 팀과 함께 참석한 이미경 CJ 부회장의 모습이 포착됐다. 지난해 5월에도 이 부회장은 칸 영화제에 참석하면서 공식 석상에 5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기생충 책임 프로듀서이기도 한 이 부회장이 본인의 글로벌 인맥을 활용해 기생충 홍보에 앞장 서 온 것도 공공연한 사실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업계에선 기생충이 연이어 수상하는 건 작품이 좋은 점도 있겠지만 CJ가 돈을 엄청 쓰고 있겠거니 짐작하는 것이 사실"이라며 "CJ ENM이 올해를 기점으로 'K컬처'의 중심을 'K-드라마'에서 'K-무비'로 이동시키는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관측이 나온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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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속 대사처럼 과연 CJ ENM의 '계획'대로 기생충의 성공을 오롯이 누리게 될 것인지는 미지수다.
CJ ENM의 기본 전략은 영화, 드라마, 엔터테인먼트 등 각 부문의 국내 비즈니스모델을 그대로 복사(copy & paste)해서 현지에 보내는 것이다. 즉 수출로 끝내는게 아니라 아예 현지화(localization)를 목표로 영화는 투자-제작-배급-상영까지 밸류체인(value chain)을 다 가져가겠다는 셈이 된다. 현지 수출에는 문화 산업의 ‘주요 시장’인 미국도 당연히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이러한 큰 틀에서 보면 기생충의 성공이 당장 CJ ENM에 유의미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단하긴 어렵다. 아직까지 CJ ENM의 매출에서 영화 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하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영화 부문 매출 비중은 공연 사업과 합해도 7%대에 그친다. 워낙 영화의 성공 여부가 예측 불허라 실적도 변동폭이 크다. 그 누구도 '극한직업'이 수익률 1500%의 대성공을 거둘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과연 기생충의 성공이 CJ ENM의 자체 '콘텐츠 역량'을 입증하는가에 대한 물음도 남는다. 기생충이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CJ그룹이 직접 제작에 관여하지 않고 온전히 봉준호 감독에 맡겼기 때문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현재 진행중인 수상 행진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재벌기업 CJ의 '자본력' 증명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전해지는 상황이다.
사실상 '극한직업'과 '기생충'이 2연타를 치기 전까진 CJ ENM의 영화 부문은 한동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CJ ENM의 콘텐츠 시장 지배력 약화의 원인으로 최고 경영진의 콘텐츠 시장에 대한 낮은 이해도가 거론된다. 미디어 부문 경력이 화려한 김성수 전 대표에 이어 현재 CJ ENM을 이끌고 있는 허민회 대표는 CJ그룹의 대표적인 재무통 인사로 꼽힌다.
한 증권사 미디어 애널리스트는 "설국열차 등 계속 시도는 있어왔기 때문에 이번 기생충으로 응집력이 형성되면 해외에서 한국 영화에 대한 저변 자체가 올라가는 이벤트가 될 가능성을 무시할 순 없다"면서도 "다만 '영화는 영화다'라고 한다지만 콘텐츠 내용으로 CJ가 정부 눈치를 봤던 과거도 있었던 것처럼 문화 사업 특성상 기생충의 성공 이벤트 자체가 CJ ENM에 이득만 안겨줄 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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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1월 24일 09: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