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임사태 책임은 '판매사'에게…상각 절차는 '일사천리'
금감원 책임 어디까지…법적 책임 없다지만 "회피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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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은 지난해 5월 사모 헤지펀드를 대상으로 총수익스왑(TRS) 거래 관련 실태 조사를 진행했다. SK그룹 등 일부 TRS를 활용한 편법 매입 의혹이 번질 때였다. 라임자산운용 사태가 불거진 지난해 10월에는 사모펀드 대상 유동성 현황 실체 조사를 벌였다. 알펜루트자산운용 환매 중단 이후 시장에 곧바로 현재 운용사와 대형증권사가 맺고 있는 TRS 계약 잔액이 2조원 안팎이라는 정보가 공개된 건 이런 이유에서다.
금감원은 사모 헤지펀드가 TRS를 활용해 유동성을 보충하고 있고, 이것이 개방형 펀드 구조와 비유동성 자산 투자와 맞물려 향후 위험할 수 있었다는 점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도 사태는 벌어졌고, 알펜루트운용 이후 3~4곳의 운용사가 더 위험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이번 사태에서 금감원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사모펀드 계약은 결국 투자자-운용사-증권사간의 사적인 계약인만큼 명확한 법적 근거와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금감원이 개입할 수 있었던 부분은 분명히 한정적이었을 거란 평가다. 그러나 결국 투자자들이 손해를 눈 앞에 두게 됐고, 사모 헤지펀드 일부가 상식 선에서 매우 위험한 구조로 운용이 된 건 사실인만큼 금감원이 역할론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란 지적이 나온다.
결국 불거진 'TRS' 리스크...사적 계약? 그래도 감독 필요?
TRS는 증권사가 자산운용사로부터 일정 수수료를 받고 주식, 채권, 그리고 전환사채(CB·Convertible Bond), 신주인수권부 사채(BW·Bond with Warrant) 등 메자닌을 자산운용사 대신 매입해주는 계약이다. 증권사는 이를 통해 자산운용사에 자금을 빌려준 대가로 수수료를 받고 자산운용사는 해당 자금을 바탕으로 유동성을 확보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부추긴 핵심 원인으로 꼽히지만, 금감원은 TRS 관리 감독에 대한 역할론에 대해 명확하게 선을 긋고 있다. 현행법상으로 문제가 없는 증권사·자산운용사의 사적 계약이라는 시각에서다.
금감원 자산운용검사국 관계자는 "장내 파생상품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만들어도 규제가 없다"며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서로 계약이 되어있는 만큼 법적인 관계는 명확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그러나 TRS의 법적 근거가 모호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지적돼 왔다. 자본시장법상 파생상품에 대한 스왑 등 계약에 대해 명확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어 거래 당사자들의 수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설계가 가능해 다양한 유형의 파생계약이 얼마든지 나타날 수 있어서다. 결국 계약별 사례에 따라 계약의 법적 성격을 파악해야 한다. 또한 증권사가 프라임브로커리지서비스(PBS)의 수익성을 만회하는 데 활용하는 등 시장에서 일부 악용되기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막상 금감원의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는 알펜루트 펀드의 환매중단 사태 이후 증권사들에 갑작스럽게 TRS 증거금률을 높이거나 계약을 조기종료하지 말라며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시장 안정을 위해 일단 구두 조치를 취한 셈이다.
애초에 라임펀드가 처음으로 내놓은 '개방형' 메자닌 펀드를 금감원이 판매 허가를 내준 데도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평가다. 한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메자닌 채권을 담은 펀드가 개방형으로 나온 펀드는 처음이었지만 금감원이 판매 허가해줬기 때문에 시장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며 "일종의 담합이 있었을 수 있다는 시각까지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감원 자산운용본부 펀드심사팀 관계자는 "펀드가 나오면 사후보고 방식으로 관리를 해왔다"며 "2주 안에 보고하면 되는데 그 보고도 법적으로 승인하고 말 대상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시장의 목소리는 조금 다르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신고만 하면 통과된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가 금감원은 법적 책임 회피를 위해서라도 추가 자료를 요청하기도 한다"며 "그렇게 절차가 단순하다면 로펌이 왜 있겠냐"고 지적했다.
해결보다는 덮기? 금감원 수습책에 판매사들 '반발'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상각처리를 두고서도 잡음이 나오고 있다. 내달 나올 감사보고서를 기준으로 자산 상각을 진행해야한다는 금감원의 지침에 판매사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금감원의 칼날은 판매사를 향하고 있다. 금감원은 내달 완성되는 삼일회계법인의 감사보고서를 기준으로 라임펀드의 상각처리를 주도할 계획이다. 이 경우 은행 등 판매사들이 피해액을 보상해야 한다.
그러나 감사보고서 작성 기간이 짧다는 데 대해 판매사들이 반발하고 있다. 은행 등 판매공동단에서는 "CB나 BW 등 여러가지 투자가 진행돼 복잡할텐데 이렇게 빨리 삼일회계법인에서 직접 가치판단을 내렸을지는 모르는 일"이라며 "상각 자체를 논의하는 건 이르다는 시각이 업계에선 지배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판매단에 책임을 떠넘기는 데도 질책의 목소리가 나온다. 상각을 검토한다는 소식이 전해진 데 한 PB(Private Banking)업계 관계자는 "금감원도 책임이 없지 않은 만큼 상각 검토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판매사들에게 결국 책임을 떠넘기겠다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금감원은 앞서 지난 7일 라임자산운용의 최고운용책임자(CIO) 외부 채용 및 금감원 직원 파견 등을 담은 업무협약 양해각서(MOU)를 맺는 방안을 검토했다. 또한 금감원이 라임자산운용으로부터 투자를 받은 코스닥기업 중 일부의 CB 차환 발행 및 감자를 주문했다고 알려지기도 했다.
'해결보다는 덮기에 급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배경이다. 사모 헤지펀드는 도입된지 10년도 되지않은 최신 제도다. 사모펀드와 연관된 이런 대규모 금융사고 역시 처음이다. 사적 계약에 어디까지 규제와 감독의 잣대를 들이댈 수 있을지 '전례'를 만드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이번에 사태를 수습한 전례는 향후 사모펀드 관련 이슈가 벌어졌을때 중요한 잣대가 될 것"이라며 "금감원은 중장기적인 금융시장 발전 방안의 일환으로 사태를 수습하고 감독원칙을 세워야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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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1월 29일 17:2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