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자산 규모에선 자기자본 3조원대면 충분
최대 3조원 감자 여력...배당은 더 늘리기 부담
ROEㆍ매각 가능성 등 감안하면 지금이 '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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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카드의 오랜 이슈로 지목돼 온 '과잉자본'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지난해 사실상 처음으로 영업자산을 대폭 줄였지만, 내실위주 경영으로 수익성 유지에는 성공한 까닭이다. 영업 확대에 쓰지 않고, 주주에게 돌려주지도 않고 쌓아둔 이익잉여금이 4조5000억원에 달한다.
금융권에서는 삼성카드가 자기자본이익률(ROE)을 현실화하고, 혹시 단행될지 모르는 매각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자본감소(감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현재 영업규모상 삼성카드의 감자 여력은 2조원에서 최대 3조원에 이른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매출액 3조3000억여원, 영업이익 4500억여원의 실적을 올렸다. 전반적인 카드업계의 부진에도 매출ㆍ이익 모두 2018년 대비 1% 안팎 감소로 선방했다는 평가다. 신용등급도 AA+(안정적)의 우수한 등급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다른 카드사와는 다른 전략을 선택했다. 덩치를 키우는 대신, 부실ㆍ저수익 자산을 줄여 기초체력을 강화한 것이다. 23조원에 달하던 총자산이 21조8000억원대로 줄어들었고, 이와 함께 20조6000억여원 수준의 영업자산도 19조원대로 축소됐다. 7개 전업카드사 중 영업자산이 1조원 이상 줄어든 건 삼성카드 뿐이다.
카드사 입장에선 영업자산이 줄면 수익도 줄어드는 게 합리적이다. 삼성카드는 지난해 영업자산을 5% 이상 줄였지만, 연간 당기순이익은 2018년 대비 0.3% 줄어드는데 그쳤다. 수익성 방어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시중 금리 하락으로 조달금리가 크게 줄어든 것이 수익성 유지의 핵심 배경이긴 했다. 삼성카드의 지난해 4분기 신규 차입금 기준 조달금리는 1.72%로 1년 전 대비 54bp(0.54%포인트)나 떨어졌다. 총 차입금 기준 조달금리도 2.43%로 하락 추세가 지속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 금융권에서는 저수익자산과 판관비 축소 노력 역시 수익성에 크게 반영됐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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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실적발표를 지켜본 금융권에서는 조심스럽게 삼성카드의 감자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카드사 실적을 좌우하는 핵심은 자본규모와 조달금리다. 자본규모는 영업자산 규모를 결정하고(레버리지비율 규제, 6배) 조달금리는 수익성을 결정한다. 삼성카드의 경우 영업자산 대비 자기자본이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왔는데, 이번에 영업자산마저 대폭 축소하며 이런 자본과잉 상태가 더욱 두드러지게 됐다는 것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카드는 지금 자본규모라면 40조원까지 영업자산을 늘리는 게 가능한데, 오히려 지난해 20조원 이하로 규모를 줄였다"며 "지나친 자기자본이 전략적 선택에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다는 건 삼성카드가 제일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카드 과잉자본의 핵심 원인은 이익잉여금이다. 지난해 말 기준 4조5000억원이 넘는다. 전체 자기자본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상장 주식회사가 과도한 이익잉여금을 주주에게 돌려주지도 않고, 사업에 쓰고 있지도 않다는 건 상당한 단점으로 작용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주주가치가 중요하게 떠오른 최근의 추세에서는 더욱 그렇다.
현재 자산규모라면 삼성카드는 3조2000억원 안팎의 자기자본만 유지하면 된다. 레버리지비율을 업계 평균인 5배 안팎으로 유지한다고 가정해도 4조3000억여원이면 충분하다. 현재 삼성카드의 자기자본은 6조8000억원에 달한다. 적게는 2조4000억여원에서 많게는 3조2000억여원가량 감자해도 영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것이다.
삼성카드의 배당성향은 이미 50%에 가깝다. 업계 평균과 현금흐름, 그리고 배당성향은 한번 늘리면 후퇴가 쉽지 않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무작정 배당을 더 늘릴 수도 없다. 지금 배당을 더 늘린다고 해서 쌓인 이익잉여금이 크게 줄어들지도 않는다.
삼성카드의 시가총액은 현재 4조2000억여원 수준이다. 2011년초 최고점 대비 절반 수준이다. 유상감자를 통해 1조~2조원가량을 주주에게 배분하면 삼성카드의 주주가치는 크게 치솟을 거란 분석이다.
당장 최대주주인 삼성생명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70%의 지분율을 고려시 1조5000억원에서 2조원가량이 삼성생명에 흘러들어간다. 회계기준 변경으로 현금이 필요한 삼성생명이 요긴하게 활용할 수 있다.
아직 결정된 바는 없지만, 삼성카드 매각 가능성이 꾸준히 언급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할 요소다. 삼성그룹은 지난 2015년 KB금융그룹과 실제로 삼성카드 경영권 매각을 논의했었다.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주된 척도가 되는 금융회사 매각 특성상, 과잉자본은 언제나 문제가 될 수 있는 요소다. 실제 기업가치와 현금창출능력에 비해 자본이 많으면 그만큼 기준이 되는 잣대가 높아지는 까닭이다.
삼성카드가 매물로 나왔을 때 관심을 보일 대형 금융지주회사들은 대부분 '자기자본이익률(ROE) 10% 이상' 등의 내부적인 심사 규준을 가지고 있다. 삼성카드의 총자산이익률(ROA)은 2%에 가까워 '합격점'을 줄 수 있지만, 5% 수준인 ROE는 인수 결정에 부담이 될 수 있다. 감자를 통해 ROE를 '현실화'하면 이 같은 우려가 사라진다.
금융권 관계자는 "삼성그룹이 삼성카드 경영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면 지금이 감자를 단행할 적기라고 생각한다"며 "금융회사 인수합병(M&A)에서 과잉자본은 매각하는 쪽도, 인수하는 쪽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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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2월 0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