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미전실' 7년 전 개인정보 열람에 한정
이재용 부회장 불리하지 않은 '소재' 한계
준법감시위 '재판용' 시선 벗어나기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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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준법감시위의 지적을 받아들여 임직원의 시민단체 후원 내역을 무단 열람한 사실을 인정하고 공식 사과했다. 재계를 비롯한 시장 관계자 사이에선 과거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나선 것은 전향적이란 평가가 주를 이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체된 미래전략실의 일부 잘못을 준법감시위원회의 첫 활동이자 사과의 소재로 선정한 것에 대해 현안과 거리가 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28일 삼성전자를 비롯한 17개 삼성 계열사는 '구(舊) 미전실'이 임직원의 기부금 후원내역을 무단 열람한 것에 대해 관계자들에 공식 사과했다. 삼성은 "앞으로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내부 체질과 문화를 확실히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13일 준법감시위가 정례회의에서 우려를 표명하고 진정성 있는 사과와 재발방지를 촉구한 데 따른 조치라는 설명이다.
당시 삼성은 미전실 주도 하에 불온단체에 기부한 임직원 386명의 명단을 확보해 각 계열사 노사관리 부서에 전달하고 감시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불온단체로 분류된 곳은 진보 성향의 시민단체와 정당 11곳이다. 사법부는 지난해 말 이 같은 증거를 종합해 삼성의 노조 와해 혐의에 대해 유죄판결을 내고 이상훈 전 삼성전자 이사회 의장을 구속한 바 있다.
다만 첫 활동 대상으로 과거 미래전략실의 과오를 선정한 것을 두고 이런 저런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선 시기적으로 이재용 부회장에 불리하지 않을 소재에 해당된다. 미래전략실은 지난 2017년 해체돼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기구다. 삼성 각 계열사의 사과문에도 미전실이 개인정보를 열람한 시점인 2013년 5월이 명시돼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선 것은 2017년 이후다. 당시 미전실을 해체한 것도 이 부회장의 용단으로 알려져 있다.
사안의 본질과도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출신 한 관계자는 "그룹 내 초법적 조직이 비밀리에 임직원을 조사하고 정당한 노조 활동을 원천 봉쇄하려 했다는 게 사안의 본질"이라며 "진짜 문제는 삼성의 불투명한 의사결정구조와 오너 개인에 집중된 지배구조이지 임직원 기부내역을 무단으로 열람한 것은 지엽말단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이어 "준법감시위가 삼성의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려면 당시 미전실의 활동에 관여했던 사람이 직접 사과하는 방식이어야 했다"고 전했다. 삼성그룹 18개 계열사가 일거에 사과하면서 오히려 실질적 책임자는 가려지는 구도가 연출됐다는 설명이다.
정작 지속되고 있는 노조 메일 삭제 등 현안은 소홀히 다루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앞서 준법감시위는 지난 5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쳐 회의를 가졌지만, 현안으로 꼽히는 노조 메일 삭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와중에 7년 전 이미 사라진 기구의 잘못을 꺼내들어 '계열사 일괄 사과'라는 모양새만 자아냈다.
준법감시위의 활동이 지금과 같다면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에 활용된다는 시선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준법감시위 한 관계자는 "전문가들 사이에선 출범 이전부터 참여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오갔다"고 전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재판을 위해 만들어진다는 한계에도 불구, 삼성의 거버넌스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기회로 활용할 수 있다는 참여자의 해명에도 이견이 제기됐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첫 성과가 나온 시점부터 이 같은 태생적 한계를 부각시키는 사례로 회자할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 지배구조 관련 한 전문가는 "삼성으로서는 어쨌든 준법감시위를 내세워 어쨌든 사과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 있게 됐다"며 "준법감시위는 삼성이 당연한 일을 하면서도 생색을 내는 데 일조하게 된 셈"이라 말했다.
이어 "수년 전 만들어진 삼성 거버넌스 위원회가 그동안 변화를 이끌어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처럼 흐지부지될 가능성이 여전하다"라며 "준법감시위가 스스로 존재 이유를 증명하고 신뢰를 이끌어내려면 삼성의 진짜 아픈 구석을 냉철하게 지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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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2월 28일 17:1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