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정 공모가, 최초 공모예정가 대비 22% 낮아
신주인수권은 프리미엄 얹어 거래
"자본시장 통한 조달 불확실성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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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C현대산업개발(이하 HDC현산) 유상증자 차익거래(아비트리지;Arbitrage)에 참여한 공매도 기관들이 막대한 차익을 누릴 전망이다. 우한 코로나 사태로 인한 증시 폭락이 더해져 예상보다 두 배 가까운 수익이 났다는 분석이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공매도 기관 공모 참여 금지' 입법 논의를 다시 시작해야 할 거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HDC현산은 2일 공모 유상증자 최종 발행가액을 1만4600원으로 최종 확정 공시했다. 유상증자를 결의한 1월초 최초 발행예정가액 1만8550원 대비 22%나 할인된 금액이다. 1월 말 1차 확정 발행가액 1만8150원과 비교해도 20%나 낮은 수준이다.
HDC현산 유상증자 결정 이후 국내외 일부 기관은 차익거래에 착수했다. 공매도를 통해 주가를 낮추고, 낮아진 주가로 발행가액도 낮아지면 공모에 참여해 저가에 매수, 주식을 갚는 매매 전략을 쓰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미미하던 HDC현산의 공매도비율(일일 거래량에서 공매도의 비율)은 지난 1월 1차 발행가액 확정을 앞두고 한때 20%까지 치솟았다.
2월 들어 공매도가 본격화했다. HDC현산의 2월 전체 거래량은 1299만여주인데, 이 중 27%인 351만여주가 공매도였다. 가격 확정 기간을 코 앞에 둔 2월 마지막주엔 공매도 비율이 44%까지 치솟았다. 2월25일 거래된 HDC현산 주식 2주 중 1주는 공매도였다는 소리다.
이렇게 공매도가 늘어난 데엔 우한 코로나 사태로 인한 증시 급락도 한 몫했다는 평가다. 불과 한 주 사이에 코스피가 10% 넘게 하락하며 충격을 준 것이다. 외국인들은 이 기간 4조원이 넘는 코스피 주식을 내다 팔았다. 큰 물량은 아니지만, 2월 중 외국인들은 HDC현산 주식도 200억원 어치 이상 매각했다.
그 결과 HDC현산은 당초 계획보다 크게 낮은 최종 확정가를 받아들여야 했다. 당초 유상증자를 통해 4000억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도 3200억원으로 수정했다.
1월~2월 HDC현산 공매도 평균가격은 2만1890원이다. 이번에 공매도에 참여한 투자자가 향후 공모 절차에서 신주를 배정받아 공매도를 갚으면 2달 사이에 무려 평균 49.9%의 수익을 누리게되는 셈이다. 1월부터 일찌감치 차익거래에 나선 투자자들의 성과는 더 좋다. 이들의 평균 공매도가는 2만3431원으로, 신주를 배정받아 상환할 시 60.5%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지난 2월 초만 해도 증권가에선 이번 차익거래를 통해 공매도 참여자들이 20~30% 정도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상됐다. 우한 코로나로 인한 돌발 악재가 이들의 수익률을 두 배 가까이 끌어올려준 것이다.
활발했던 차익거래의 결과로 지난달 20일부터 27일까지 거래됐던 HDC현산 신주인수권은 상당한 '프리미엄'을 누렸다. 이 신주인수권의 이론가격은 신주인수권 상장 당일 주가와 1차 발행가액의 차액인 1800원 안팎이었는데, 실제 거래는 3000원대 중반에서 최대 4000원 안팎에 이뤄졌다.
차익거래를 완성하기 위해선 안정적으로 구주주 청약에 참여해야 하는만큼, 신주인수권 매수 수요가 그만큼 많았던 것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 같은 차익거래를 방지하기 위해선 공매도에 참여한 투자자가 일정 기간 공모에 참여하거나 신주를 취득할 수 없게끔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필요하다. 현재 미국과 일본은 이 같은 차익거래를 금지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상증자 발행가액 산정 기간 동안 HDC현산 주식 순매수에 나선 건 개인투자자들밖에 없었다"며 "유상증자 차익거래는 주식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역효과가 크기 때문에 국회에서 전향적으로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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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3월 03일 15:4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