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도 실효 없었고 선물 매도 등 수단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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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증시를 (외국인 투자자 진입이 힘든) 중국 증시 수준으로 격을 끌어내린 거죠. 원하는 효과는 얻기 힘들 것이고,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한국 증시의 따돌림만 심해질 겁니다."(한 증권사 트레이더)
정부가 공매도 금지라는 초강수를 내놨지만 주가하락 방지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성자인 증권사들의 행보는 자유롭고 선물이나 옵션 등 주가하락에 베팅할 다른 수단도 여전히 기능하기 때문이다. 개인투자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꺼낸 실효성 없는 방안에 반(反)시장적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13일 금융위원회는 16일부터 6개월간 주식 시장 전체 상장종목에 대한 공매도를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시장안정조치를 내놨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의 일평균 공매도 거래금액은 3180억원이었으나 올해 1~2월엔 4527억원으로 늘었다. 지난 12일엔 8722억원까지 치솟았다. 과도한 투매 우려 속에 공매도 금지 카드가 나왔다.
공매도가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계량적 근거가 없다는 지적은 오래 됐다. 경제 위기 시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세력이 늘며 투자자들의 심리가 위축될 수는 있지만 근원적 시장 가치와는 무관하다. 공매도를 금지하면 주가 급등락을 일시적으로 완화할 수는 있지만 주가를 부양하는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매도는 전망과 거래가 얽히면서 시장 가격을 발견해가는 긍정적 기능도 한다. 좋은 회사건 나쁜 회사건 걸맞는 평가를 받으면서 실제 가치에 부합하는 주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정작 주가가 급격히 오를 때 공매도 세력이 손절에 나서는 것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정부 입장에선 공매도 금지 카드를 꺼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전부터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를 손실의 원흉으로 지적하며 완전 금지를 촉구해 왔다. 최근엔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공매도 금지가 올라왔다. 지금처럼 주가 폭락으로 개인들의 손실이 커지고 총선까지 앞둔 상황에선 정부가 무슨 대책이라도 내놓지 않을 수 없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앞서 내놓은 ‘공매도 과열종목 제도 강화’로 부족했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다분히 ‘감정적인 조치’일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부가 반(反)시장적 정책을 내놓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가뜩이나 자본시장 친화적 정책과는 거리가 멀었는데 효과가 불분명한 정책으로 투자자의 판단에까지 간섭한다는 것이다. 일부 주식에 대해서만 하루 공매도를 금지하며 ‘단기 변동성 완화’를 꾀한 유럽 국가와 대비된다. 코로나 확산 후 투매를 막기 위해 공매도 금지를 명령한 중국의 사례와 닮았다.
한 외국 운용사 관계자는 “공매도를 공공의 적으로 생각하는 개인들에 맞춘 포퓰리즘 정책이라 정부의 조치가 부끄러웠다”며 “공매도를 아예 금지시키면 시장의 예측 가능성은 더 줄어들 수밖에 없고 롱숏펀드는 한국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공매도 금지 효과는 잠시 있었다. 금지 발표일과 그 전일 공매도 거래 비중이 20%를 넘었던 호텔신라, 이마트, 아모레퍼시픽, 오리온 등은 16일 그 비중이 10% 미만으로 급감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주식 시장에 효과가 미칠 것이란 기대는 많지 않다. 과거 사례를 보면 2008년 10월, 2011년 8월 모든 주식에 공매도 금지 조치를 내려졌으나 주가는 계속 떨어졌다. 정부는 증시안정 펀드까지 내놓아야 했다.
주가를 끌어내릴 가능성이 있는 다른 수단들은 막히지 않았다는 점도 공매도 금지의 효과와 명분을 희석시킨다. 주가가 더 떨어질 것을 예측하고 주식이나 지수 선물을 매도하는 것은 가능하다. 실질은 공매도와 비슷한데 규제 대상에선 빠졌다. 이외에 하락장에 베팅하는 파생상품에도 투자할 수 있다. 이는 현물과 선물의 괴리만 키워 결국 정보에 어두운 개인 투자자들의 피해를 키울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공매도 금지 방안이 나오기 전 코스피200 선물 매수세가 강했던 금융투자업자들은 제도 시행 첫날 순매도로 돌아서기도 했다. 지난주만 해도 260을 넘었던 코스피200 선물지수는 일주일 사이 30포인트 이상 빠졌다.
한 증권사 주식운용 연구원은 “공매도 금지가 주가 하락을 부추긴다는 근거가 없기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이 보기엔 반시장적 조치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선물 매도 등 공매도와 유사한 성격의 수단들이 남은 상황에선 효과도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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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3월 17일 17:39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