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우려와 사우디-러시아가 불러온 超저유가
저유가 지속되면 미국 셰일가스업 위기 봉착
정크본드 타고 금융권으로 리스크 전이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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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미국 금융기관들이 남발한 저신용자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은 불과 몇달새 글로벌한 금융위기로 번졌다. 2020년 코로나가 촉발한 경기침체(리세션) 가능성과 이로 인한 유가 급락ㆍ담보대출채권(CLO) 부실화 우려가 불거지며 금융위기로 가는 수순을 차곡차곡 밟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금융위기를 피할 유일한 해법으로 국제 공조가 꼽히지만, 11년만의 판데믹(전세계적 유행병) 선언에 질린 각 국 정부는 국경에 빗장을 걸기 바빠졌다. 예상을 뛰어넘는 통화정책도 불안감을 잠재우지 못했다. 양적완화를 넘어 '질적완화'의 필요성까지 언급되는 가운데, 대외 변동성에 취약한 국내 금융권 역시 안정권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현재 코스피는 1월 연고점 대비 20% 이상 하락했다. 고점 대비 20% 하락은 약세장(베어마켓) 진입 신호로 해석된다. 2018년 2월 사상 최고치 대비로는 30% 이상 떨어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던 미국 3대 지수 역시 20% 이상 폭락하며 '강세장(불 마켓)은 끝났다'는 선언이 나왔다. 골드만삭스는 12일 S&P500지수가 올해 중반까지 15% 추가 하락할 것이라고 연간 지수 전망을 수정했다.
코로나 판데믹으로 인해 주가가 떨어진 것이라고 인식한다면 절반만 옳다는 게 복수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문제는 그 뒤에 숨은 경기침체 우려와 저유가 쇼크라는 것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최근 2.9%에서 2.4%로 수정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2.5%에서 2.3%로 낮췄다. 향후 추가 하향될 여지도 남아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코로나19가 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예상보다 크다며 조만간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경기 하향 전망이 이제 시작됐다는 것이다. 코로나를 미리 앓은 중국의 경우 올해 5% 성장도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골드만삭스는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1%→1.6%→1.0%로 두 차례에 걸쳐 절반 이하로 깎았다.
경기침체는 유가 하락을 촉발했다. 세계에너지기구(IEA)는 올해 11년만에 처음으로 국제 원유 수요가 줄어들 것이란 예상을 내놨다. 경제의 동맥이자 원유의 주된 소비처인 운송업부터 멈춰서고 있다. 2월 세계 주요 항구의 선박 물동량은 10~20% 감소했고, 대한항공이 국제선 80%를 운항취소하는 등 항공편도 급감 중이다.
여기에 사우디 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신경전이 더해졌다. 두 나라는 이달 초 2년간의 감산 공조를 파기하고 각자 원유 생산량을 늘리기로 했다. 금융권에서는 올해 2분기 매일 90만배럴 수준의 원유 초과공급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는데, 증산으로 인해 이젠 매일 360만배럴 이상의 초과 공급이 이뤄질 전망이다. 여기에 UAE 등 다른 산유국들도 증산에 합세하며 국제 유가가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기준 배럴당 한때 28달러까지 폭락한 것이다.
원유 수입국인 한국 입장에서 초(超)저유가는 호재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저유가 리스크가 비투자등급 채권(정크본드)을 타고 금융권으로 전이될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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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년간의 호황 속에서 미국 정크본드 시장은 1조2000억달러(약 1440조원) 수준으로 커졌다. 채무불이행(디폴트) 리스크가 극도로 적어진 상황에서 저위험 자산보다 최대 연 4% 이상의 수익을 주는 정크본드에 투자를 안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정크본드 시장의 대략 15%가 셰일가스를 기반으로 한 미국 에너지업체의 시장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때 배럴당 100달러가 넘었던 미국 셰일가스 채굴 원가는 기술의 발달로 현재 32.4~57.4달러 수준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 30달러 전후의 국제 유가로는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배럴당 유가가 33달러까지 떨어졌던 지난 2016년 상반기 실제로 수십 곳의 미국 셰일가스 업체가 부도를 내고 문을 닫았다.
그 후 4년간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은 부채를 대규모로 일으켜 사업을 확장했다. 2020년부터 2024년까지 이들 셰일가스 업체가 갚아야 할 부채만 860억달러(약 104조원)로 추산된다.
이들이 돈을 갚지 못하고 부도를 내기 시작하면 이들의 정크본드를 매입한 미국 금융기관과 헤지펀드들이 흔들리게 된다. 이들이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금까지 글로벌 시장에 투자해왔던 자산을 투매하기 시작하면 자산 가격이 폭락하며 체력이 약한 국가의 경제부터 쓰러지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CLO 역시 금융위기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CLO는 에너지 등 저신용기업에 대한 은행의 대출채권을 기반으로 발행하는 구조화 상품이다. 2017년~2018년 미국 B등급 CLO 평균 수익률이 14%, BB등급 수익률이 9%를 넘어가며 미국 국내외 기관들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일각에서는 CLO를 2008년 금융위기를 초래한 부채담보부증권(CDO)와 비교한다. 예상보다 유동성이 떨어지는데다, 어떤 구조로 어떤 자산들이 묶여 발행되는지 불투명한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인기가 많았던 저신용등급 CLO의 경우 정크본드처럼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 최근 기관들 사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커졌다는 평가다.
여기에 중국 성장 절벽 및 경제 경착륙 현실화로 안 그래도 말이 많았던 중국 회사채 시장이 붕괴하기 시작하면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치달을 수 있다는 공포가 더해지고 있다. 현재 각국 증시의 폭락와 채권 가격의 강세는 이런 시나리오를 선반영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이 현실화하면 국내 금융시장 역시 거대한 충격이 불가피하다. 이미 한국 국채 3년물 시장 금리는 1.077%로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안전 자산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며 한국 국채 10년물은 1.3%대 초반, 미국 국채 10년물은 9일 한때 0.5%대까지 급락하기도 했다. 이후 0.9%대까지 다시 오르던 10년물 금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기준금리 1%포인트 인하를 발표한 16일 하루만에 30% 급락하며 0.6%대로 다시 진입했다.
시장금리의 급락은 순이자마진(NIM)을 악화시켜 금융기관의 보폭을 줄인다. 16일 미국 주요 8개 은행이 일제히 자사주 매입 중단을 발표한 건 이런 까닭이다. 코로나로 인해 소규모 자영업자(SOHO) 대출 부실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3년간 국내 주요 은행들은 자영업자 대출을 크게 늘렸다. 지난해 말 기준 451조원에 달한다.
일반적으로 시장금리가 떨어지면 부실률이 낮아지며 대출자산의 건전성은 좋아진다. 지금은 이런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우려가 크다. 시장금리가 낮아지며 NIM이 압박받는데, 실물 경기가 망가지며 부실률은 치솟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서로 잃을 것이 많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금세 대화를 통해 해법을 모색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2년 전 미국이 중국과 무역분쟁을 처음 시작했을 때에도 몇달 새 진정될 것이라는 낙관론이 득세했다. 미중 무역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사우디 석유 정책을 총괄하는 빈 살만 왕세자는 곧 왕위에 올라야 하고,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한 개헌을 추진 중이라 둘 다 정치적으로 물러설 곳이 없다"며 "정치가 합리적으로 움직인다면, 인류사에 전쟁이 이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기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으로는 의료 뿐만 아니라 금융ㆍ경제전반에 걸친 국제 공조가 꼽힌다. 이미 2016년 세계는 달러약세 공조를 통해 유로존 발(發) 경기침체 위기에서 벗어난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주요국들은 '각자도생'을 모색하는 분위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 대국민 발표를 통해 유럽에서 미국으로의 입국을 30일간 금지했다. 중국에 대한 무역 관세도 여전히 철회하지 않고 있다. 금요일 미국의 전략비축유 매입 발표로 유가와 증시가 동시에 폭등했지만, 전략비축유 매입 여력이 7000만배럴(현 유가 기준 21억달러 규모, 약 2조6000억원)에 불과하다는 반론이 나오며 미 증시는 17일 다시 하락 전환했다.
통화정책도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미국 연준이 16일 아시아 증시 개장 전 긴급 위원회를 열어 기준금리를 다시 '제로'수준으로 낮추고 모기지대출증권(MBS) 매입을 통한 양적완화를 발표했지만, 증시를 진정시키지 못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미 질적완화까지 요구하고 있다. 중앙은행이 직접 기업의 어음(CP)과 증시의 주가연계증권(ETF)을 매입하라는 것이다. 실물 경기가 침체 국면에 들어간만큼 중앙은행이 투자 리스크의 최종 부담자가 되어달라는 의도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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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3월 18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