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침체 시 가치 하락 불가피…영향 적은 투자처 물색도
환율 급등도 부담…달러 품귀로 조달 어렵고 비용도 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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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체투자에 힘을 실었던 국내 기관투자가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안전성이 높은 자산들에 투자해왔지만 경기침체(리세션) 우려가 확산하는 상황에선 원활한 회수를 장담하기 어렵다. 외화 시장이 출렁이며 외화 조달 난항, 비용 증가로 투자 시작부터 부담을 안아야 하는 상황이다. 전세계적 불확실성 확대로 해외 투자 자체가 어려워졌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이번주 들어 여러 기관투자가들이 해외 대체투자 포트폴리오에 대한 비상 점검에 나섰다. 미국발 블랙 먼데이를 시작으로 장기 불황 우려가 전세계적로 급격히 퍼졌기 때문이다.
해외 요지의 오피스 빌딩들은 글로벌 기업 등 우량 임차인들의 장기 계약을 믿고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불황이 장기화하면 임차인들의 질이 악화할 수 있고, 도산하는 경우는 공실 우려도 있다. 기관들은 투자 기간 동안 수익률 저하는 물론, 부동산을 매각했을 때의 자본이익도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걱정하고 있다.
물량을 재매각(셀다운)하지 못한 경우엔 위험이 더 크다.
그동안 증권업계 일각에선 미매각은 ‘잠시 자본이 묶인 것’이라는 시각이 강했지만 이런 경제 위기 상황에선 위험 분산이 필수다. 작년만 해도 마중가타워(미래), 크리스털파크(삼성), 투어에크호빌딩(NH·메리츠) 등 유럽 우량 빌딩 투자가 이뤄졌으나 재매각에 애를 먹었다.
글로벌 호텔 투자는 더 큰 타격이 예상된다. 미국은 호텔산업이 도산 위기에 빠지자 정부가 대규모 자금 지원 계획을 내놨다. 그러나 당분간 호텔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기 어려울 것이고, 회수기의 성적도 양호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많다. 미래에셋대우가 중국 안방보험으로부터 인수한 15개 미국 호텔은 작년만 해도 일부 호텔을 별도로 인수하겠다는 등 적극적인 구애가 있었으나 코로나 사태 이후엔 투자 시장의 관심이 사그라든 분위기다.
금융회사, 운용사 할 것 없이 눈독을 들이던 미국 에너지 인프라 투자를 보는 시각도 달라졌다. 발전소, 셰일가스와 셰일오일, 파이프라인 등 우량 자산이 주를 이루지만 일말의 불안감은 있다. 인프라 가동률이 낮아지면 수익률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셰일 관련 투자는 저유가가 겹치며 기업 연쇄도산 우려까지 있다. 다른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시중은행 해외 투자 담당자는 “이번주 급히 미국 인프라 투자 포트폴리오를 분석한 결과 주로 선순위 대출로 집행했고 글로벌 우량 기업이 지분 투자자인 경우가 많아 당장 손실 우려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도 “앞으로는 실물 경기 위축 영향을 덜 받고 성장성도 있는 디지털 인프라 쪽 투자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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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투자자들은 환율 급등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조달 비용이 늘어 수익률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조달 자체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 1194원으로 시작한 원달러 환율은 이번 주 1300원을 향해 오르고 있다.
시중은행처럼 달러를 많이 보유하고 있거나 빌리기 용이한 경우엔 운용 후 만기에 그만큼의 달러를 돌려주면 된다. 그러나 보험사나 증권사 등 기관은 원화를 달러화로 바꿔 해외에 투자해야 한다. 환율 급등 상황에선 더 많은 자금을 들여야 달러를 구할 수 있다. 회수기에 달러 가치가 하락하면 그만큼 수익률은 손해를 볼 가능성이 커진다.
외환 시장의 상황이 평소 때와 다르다는 점도 부담스럽다.
이달 들어 미국이 두 차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가 다시 역전됐다. 이론적으론 달러화를 가진 투자자들이 원화로 바꿔 투자했을 때 이익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 평상시라면 1년 기한으로 원화와 달러를 바꿀 때 1년 후엔 더 많은 원화를 돌려주는 것, 즉 스왑포인트가 플러스인 것이 형평에 맞다. 그러나 지금은 스왑포인트가 오히려 마이너스 상황이다. 안전자산인 달러화 수요가 전세계적으로 급등하면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관투자가 입장에선 투자 전부터 환에 따른 부담을 안는 셈이다. 환율 변동이 크다보니 환율을 현재 시점으로 고정하기 위한 환헤지 비용도 커질 수밖에 없다. 몇 %라도 더 벌기 위해 해외로 나가는데 지금 상황에선 비용이 수익 대부분을 깎아먹는다. 이 때문에 일부 기관들은 환을 열어두는 것도 고려하고 있지만 웬만한 금융사들은 헤지 없이 투자하기 쉽지 않다. 환헤지 기간을 세분화하거나 비용 부담이 줄어들 때까지 투자를 미루는 분위기도 있다.
한 자산운용사 해외 투자 담당 임원은 “이번주 환율과 환헷지 비용 급등으로 많은 기관들이 투자를 재검토 하면서 혼란에 빠졌다”며 “기관들이 환헷지 기간을 짧게 해서 수익률을 방어할 수 있지만 이 경우 장기적인 수익 범위를 관리할 수 없다는 점도 문제”라고 말했다.
위험을 떠나 투자 기회 자체가 없다는 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 기관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기존에 투자해둔 것들이야 중간 평가때 가치가 출렁이더라도 만기까지 끌고 가면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글로벌 주식 시장 침체와 달러 수급 불균형으로 당분간 해외 투자 자체를 할 수 없다는 점이 가장 큰 고민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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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3월 2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