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단 지원 확정 시 인수 부담감 줄어들 듯
채권단은 M&A 후 악영향 지속시 지원 방침
-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점점 더 험난한 과정을 겪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돈이 들어갈지 모르는 HDC현대산업개발로선 인수 전에 채권단의 지원안을 확정해놓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다. 반면 채권단은 거래 종결이 우선이며, 대주주 교체 후의 상황을 살펴 지원에 나선다는 입장이라 긴장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아시아나항공은 코로나 사태 후 몇 개월 사이 끝모를 나락으로 떨어지는 중이다. 자본잠식 상태로 운영자금 조달은 물론 회사채, 자산유동화증권(ABS) 만기 대응도 쉽지 않다. 기한이익상실(EOD) 시 많은 비행기를 리스사에 돌려줘야 해 항공업을 계속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있다. 비행기를 띄우든 그렇지 않든 리스료 부담은 크다.
-
사정이 이렇다 보니 HDC현대산업개발의 인수 가능성엔 의문 부호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권순호 HDC현대산업개발 사장이 지난달 열린 25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M&A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맹목적인 인수 의지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지금 낼 수 있는 입장을 낸 정도로 봐야 한다는 평가다.
여기에 지난달 27일엔 아시아나항공의 정정공시가 눈길을 모았다. 유상증자 대금 납입일을 이달 7일에서 ‘거래종결의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로부터 10일이 경과한 날 또는 당사자들이 달리 합의하는 날’로 바꿨다. 해외 기업결합 승인 절차 지연이 원인이고, 내용도 작년말 체결된 계약서에 포함됐던 것이다. 그럼에도 ‘합의’에 눈길이 모아지며 뭔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냔 시각이 많았다.
아시아나항공 M&A 계약에 따르면 중대하게 부정적인 영향(MAE, material adverse effect)이 발생하고, 그 하자가 치유되지 않으면 계약 해제도 가능하다. 그러나 천재지변은 MAE에 해당하지 않는다. 코로나를 어떻게 볼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는다.
이런 가운데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PMI를 위해 지난 2월 선정한 컨설팅사 맥킨지도 애를 먹는 것으로 알려졌다. 채권단의 지원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선 인수 이후의 전략을 짜는 것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HDC현산 입장에서도 인수를 강행할 명분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
건설 및 개발부문에서 인허가 관련 정부 눈치를 봐야 하는 HDC현산 입장에서는 그렇다고 발을 빼기도 쉽지 않다. 어쨌든 아시아나항공 매각은 문재인 정부가 손에 꼽을만한 산업 구조조정의 성공 사례인데 총선을 앞두고 민감한 시기에 이를 무위로 돌릴 경우, 정부에 미운털이 박힐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HDC현대산업개발로선 인수를 하되 거래의 키를 쥐고 있는 채권단에 최대한의 지원을 요청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다. 기존 차입금의 금리 인하나 만기 연장 등은 기존 계약조건에 큰 영향 없이 진행할 수 있다. 과거 대한전선 구조조정 땐 기존 채권의 출자전환도 이뤄졌다. 아시아나항공에 돈을 집어 넣기 전에 이런 보장을 확실히 잡아둬야 발을 빼지 않을 명분이 커진다. 실제로 물밑에서 몇 차례 산업은행에 지원을 요청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아직까지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의 분위기는 아직까진 아시아나 추가지원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최대한 지원을 하겠다면서도 체결된 계약에 따라 거래를 종결하는 것이 먼저라는 입장이다. 금호아시아나가 아닌 'HDC아시아나'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기업의 신용도가 오르면 자연히 지원의 폭도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채권단 관계자는 “코로나 사태는 HDC현대산업개발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에 최대한 지원하겠지만 유상증자가 이뤄지기 전엔 보장해주기 어렵다”며 “아시아나항공이 HDC현대산업개발그룹으로 들어가면 신용도가 개선될 것이고 지원의 규모든 조건이든 더 후해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HDC현대산업개발이 올해 들어 1조원 규모의 협조융자를 요청했을 때도 산업은행은 반려했다. 당시 코로나 사태가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번지기 전이기도 했지만, 대기업에 대한 특혜 우려가 불거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근 검토했던 안은 지난해 결정한 1조6000억원의 지원금 중 3000억원의 보증한도(스탠바이LC)를 일반 여신으로 전환해주는 정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변수는 정부의 방침이다. 항공은 기간산업으로서 중요성이 크다. 이탈리아처럼 항공사를 국유화하는 곳도 있다. 지금까진 저가항공사(LCC) 위주 정부 지원책이 주를 이뤘지만 위기에 대응하기 어렵긴 대형항공사(FSC)도 마찬가지다. 채권시장안정펀드에 편입하려 해도 신용등급이 낮아 쉽지 않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대기업이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보다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3일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거시금융경제회의에서 기간산업이 일시적 유동성 부족으로 문을 닫는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향후 채권단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아시아나항공 M&A 향방도 갈릴 것으로 보인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4월 0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