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비 가동률 ↓…이익 감소·배당금 축소 우려
업스트림 부도 시 미드스트림 수익성도 '흔들'
2년간 투자 늘린 기관들…투자심리 위축될까
-
유가 폭락에 따라 국내 기관들이 최근 2~3년새 집중 투자하던 북미 '미드스트림'(가스 액화·운송) 투자에도 경고등이 켜졌다. 수요 충격이 장기화할 경우 원유 운반이 줄어 이익이 감소함에 따라 투자 주체에게 돌아갈 배당금이 줄어들 수 있는 까닭이다.
또한 업스트림(가스 개발·생산) 기업의 부도 시 맺었던 계약의 무효화로 미드스트림 기업의 수익 기반이 흔들릴 수 있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국내 주요 기관들은 투자 자산별 손실 규모에 주목하며 숨고르기에 나선 모습이다.
15일(현지시간)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의 5월 인도분 선물은 19.87달러를 기록했다. 2002년 2월 이후 18년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6월 원유 감산규모가 하루 최대 약 2000만배럴에 이를 수 있다고 발표했음에도 글로벌 원유수요가 30% 가량 소멸된다는 전망이 나오는 등 수요가 폭락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2018년부터 국내 기관들은 미드스트림 기업 및 설비 투자에 열을 올렸다. 채굴 성사여부나 유가 움직임에 따라 수익성이 요동치는 업스트림과 달리 미드스트림은 안정적이라는 판단에서다. 중위험·중수익 투자자산으로 주목받았던 이유다.
특히 미래에셋대우가 2018년부터 7억달러 가량을 미국 미드스트림 분야에 투자했다. 2018년 미국 사모펀드 아레스(ARES)의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2억달러 대출을 집행했고 2019년에는 에픽 원유 파이프라인 프로젝트에 글로벌 자금 공동주선사로서 3억달러 가량의 대출을 담당했다.
-
그러나 미드스트림 기업도 이번 유가 하락의 여파에서 자유롭지 않다. 유가 하락의 원인으로 꼽히는 '수요 폭락'으로 원유 운반이 줄어들 경우 약속한 분배금을 지급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미드스트림 기업과 '최소 거래량 보장계약'을 맺은 시추기업이 부도날 경우 계약 무효화로 수익 기반이 흔들린다.
먼저 최근 파이프라인 가동률이 떨어지고 있다. 원유 운반에 대한 수요가 줄어 파이프라인이 텅 비게 되면 이익이 줄고 배당금도 줄어든다는 설명이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2019년 하반기부터 송유관 가동률이 100%가 안 나오기 시작했다"며 "코로나19 이후 유가가 떨어지고 나서는 더욱 안 나올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시추 사업을 영위하는 일부 업스트림 기업의 부도 가능성이 제기된다. 유가 하락으로 매출 타격을 받은 일부 업스트림 기업들은 '순부채 대비 상각 전 이익(EBITDA)' 비율이 작년 4분기 기준 4배를 넘고 있어 재무 리스크가 커진 상태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피치도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들이 금융기관으로부터 빌린 담보대출인 '레버리지론' 중에서 미국 에너지 기업들의 부도율이 2019년 1.8%에서 13.0%로 상승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부도 시 최소 거래량 보장계약을 맺어 수익성을 확보해 온 미드스트림 기업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소 거래량 보장계약은 업스트림의 생산자와 일정 수준의 원유 및 가스 거래를 보장해주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부도날 경우 계약이 줄줄이 취소되면 송유관을 제작하던 당시 들었던 자본조달 비용을 댈 수 없게 된다.
파이프라인 업체에 투자하는 펀드인 국내 마스터합자조합(MLP) 펀드의 수익률이 올해 들어 반토막 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에너지 인프라 투자의 선행 지표로 활용되는 MLP는 파이프라인 사업의 이익을 배당금으로 지급하면 세금을 깎아주는 컨셉으로 만들어진 기업이다. 시추기업 등 업스트림 기업들이 파산할 경우 MLP은 맺었던 계약조건이 초기화됨에 따라 현금흐름이 막힐 수 있다.
다만 미국 중앙은행(Fed)이 다수의 레버리지론을 묶은 대출담보부증권(CLO)을 매입하겠다고 나선 것은 변수다. 신용도가 낮은 기업의 회사채를 매입함으로써 부도율을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에서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시장관계자는 "연준이 CLO를 매입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부담은 줄 것"이라면서도 "그런데 연준이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민간채권을 살 것이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미국 원유 수출 급등을 기회로 삼고 노후화된 설비 투자에 뛰어들었던 국내 기관들은 숨고르기를 하는 모습이다. 일단 투자 자산별로 손실 규모가 달라질 전망이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미국 남부에서 북부까지 이어진 파이프라인은 굉장히 좋은 자산으로 평가되고 있어 리스크가 크지 않다는 평가다. 다만 최근 투자가 많이 집행된 '가스' 자산은 가스를 생산해 항구로 보내고 항구에서 수출하는 등 가동이 원활하게 되지 않을 경우 부담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미드스트림도 유가 하락에 영향을 받을 수 있음이 알려짐에 따라 관련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애당초 파이프라인은 투자수익률 7% 정도 나오는 안전자산이지만, 장기공급계약이라기보단 통행료를 받는 구조로 포지셔닝이 애매해 일부 기관들은 투자를 꺼렸다. 현재 유가 하락에 따라 미드스트림이 위험한 시기로 접어든 만큼 중위험 투자자산으로서의 매력은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대부분 7% 안팎의 수익률을 보고 미국 에너지 인프라 투자에 뛰어든 것"이라며 "아직까진 손실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당분간 비슷한 구조의 상품을 다루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4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