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경 키움證 HTS 먹통…투자자 손 묶여
투자금 전액 손실·반대매매 당해…"소송 준비"
證, HTS 마이너스 인식 안 돼…청산시점도 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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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증권 홈트레이딩시스템(HTS)이 사상 최초 마이너스로 전환한 5월물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가격을 인식하지 못하고 한때 멈춰섰다. 이로 인해 해외 선물에 투자하는 일부 개인 투자자들이 6월물로 월물교체(롤오버)를 하거나 선물을 매도하지 못했다. 이 투자자들은 투자금이 전액 손실은 물론, 마이너스분에 대해 추가로 캐시콜(Cashcall)을 당할 처지에 놓였다.
선물 옵션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자회사를 둔 증권사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증권사 HTS가 마이너스를 인식하지 못한다. 주식 중심이다보니 마이너스가 날 수 있다고 미처 생각지 못한 탓이다. 투자자들이 시스템 미비를 이유로 집단 소송에 나서면 키움증권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평가다.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5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배럴당 마이너스(-) 37.63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국제 유가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것은 사상 처음이다. 5월물 WTI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 시작한 시간은 새벽 3시 30분 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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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투기 수요와 저장 용량이었다. 4월21일 거래가 만료되는 WTI 5월물 선물은 20년 전 가격인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떨어졌다가, 감산 합의를 앞두고 28달러까지 40% 치솟기도 했다. '판'이 벌어지자 자금이 몰렸다. 그러나 이런 투기적 수요는 현물 인도 의사가 없는 자본들이었다. 21일까지 선물을 팔지 못하면 기름을 직접 인도 받아야 한다. 보통 이 경우 항공사 등에 계약을 넘기지만, 코로나19로 수요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점이 변수가 됐다.
원유 저장고도 큰 변수로 작용했다. 미국 원유 저장 중심지인 오클라호마주 쿠싱(Cushing)의 지역 내 원유저장 용량을 7600만배럴인데, 이미 70%인 5500만배럴이 가득 차있고 나머지 용량도 예약이 끝난 상태다. 저장 설비는 물론, 유조선까지 모두 임차 가격이 폭등했다. 이렇다보니 '돈 줄 테니 내 원유 계약 좀 가져가라'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문제는 WTI 5월물 가격이 마이너스로 전환되던 새벽 3시 30분 벌어졌다. 키움증권 HTS에서 '미니 크루드 오일 5월물' 거래가 중단됐다. HTS가 5월물 선물 가격이 마이너스난 것을 인식하지 못하며 마이너스 호가도 인식하지 못했다. 당시 미니 크루드 오일의 호가창은 움직이지 않았다.
투자자들은 자동 청산 주문 및 매도 주문이 모두 불가능한 상태가 됐다. 유가 하락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던 셈이다. 투자금은 전액 손실이 났고 캐시콜까지 당했다. 캐시콜은 선물계약 기간 중 선물가격 변화에 따른 추가 증거금 납부를 요구하는 마진콜(Margin Call)이 발생했음에도 선물 가격하락으로 마진콜 주문이 체결되지 않아 강제적으로 반대매매가 발생하는 것이다.
증권사의 HTS는 선물보단 주가 등 실물자산에 맞춰져 있어 마이너스까지 인식하는 시스템까지 구축되진 못했다. 또한 증권사마다 만기일에 따른 선물 청산 시점이 달라 투자자들의 피해액이 증권사마다 다르다.
먼저 대부분의 증권사 HTS는 '주문'에서는 마이너스 호가가 인식이 되지 않는다. 한 관련업계 관계자는 "실물 자체가 마이너스가 난다는 게 이론적으로나 가능하지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왔다"며 "선물은 마이너스로 떨어지는 게 가능하긴 한데 발생 가능성이 없다고 보다 보니 시스템이 그렇게까지 준비는 되지 않았던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자회사를 통해 선물을 취급하는 증권사들은 피해가 없었던 이유다. 삼성증권은 선물옵션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삼성선물'을 자회사로 뒀다. 삼성선물은 선물 옵션의 경우 마이너스가 충분히 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시스템을 정비, HTS 상에서 마이너스 호가도 제대로 인식된다. NH투자증권의 자회사 NH선물을 두고 있어 이론적인 가격에 대비해왔고,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이번 원유 선물 거래로 인한 피해액은 추정이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선물옵션 거래 규제 강화 이후 개인투자자들은 대부분 기본 예탁금(국내 선물은 3000만원)이 없는 해외 선물을 이용해왔다. 해외 선물의 경우 상품별로 다소 다르지만 최대 20배까지 레버리지가 가능하다. 100만원의 증거금으로 2000만원짜리 상품을 거래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 경우 5%만 손실이 나도 자본금이 전액 잠식되며, 마진콜이 발생하게 된다.
피해 투자자들은 인터넷 투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키움증권에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직 실제로 구체화하는 모습은 아니지만, 시스템 오류가 피해를 키운만큼 다툼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증권가의 시각이다.
키움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증권사들은 그나마 빠른 대처로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증권은 5월물 가격이 마이너스 구간에 들어서기 4시간 전인 자정에 전액 강제청산을 했다는 입장이다. 미래에셋대우도 약관에 따라 마이너스 구간으로 진입하기 2시간 30분 전인 새벽 1시경 반대청산을 해 추가 손실 사례가 없다고 밝혔다.
키움증권 관계자는 "미니 크루드 오일 한 종목에서 유가 하락하면서 마이너스가 발생했다"며 "대부분의 증권사가 우리와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일부에 한해서 미니 크루드 오일 종목 조기 마감한 종목은 있었던 거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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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4월 21일 14:3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