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하반기 회복장에서 소외됐던 개인들 적극 투자
기술적 반등 일정수준 진행되자 다시 각개전투로 변화
"향후 지루한 횡보ㆍ하락장 견딜 개인 자금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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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심의 발로라기보단,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아 자금이 정착한 곳이 증시였다. 증시가 불안정하거나 못 미더운 모습을 보여준다면 언제든지 이탈할 수 있는 자금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비교 대상은 그간 '불패 신화'를 보여줬던 부동산이다. 증시로 유입된 유동성이 증시의 추가 상승보다는, 개개인의 욕망에 따라 각자도생하며 변동성 확대의 원인이 될 거라는 전망도 많다. 이는 이미 현실화하기 시작했다.
올해 1분기 이례적인 증시 자금 유입을 지켜본 금융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증권사 고객 예탁금 증가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해 12월 발표된 12ㆍ16 부동산 대책이었다. 지난해 11월말 24조원으로 1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던 예탁금 잔고는 12월말 27조원을 훌쩍 뛰었다. 2019년 하반기를 기점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소강 국면에 들어간데다, 강력한 부동산 규제책이 나오며 수익을 쫒던 자금들이 증시 주변으로 거취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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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증시 주변에 흘러들어온 자금이 갈 곳이 없었다는 점이다. 자산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던 사모 헤지펀드는 라임자산운용 사태 이후 신뢰를 잃었다. 파생결합펀드(DLS) 사태로 주가연계증권(ELS) 같은 파생상품 선호도도 뚝 떨어졌다. 이 당시 국내 증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리플레이션(경기 회복) 랠리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신규 투자자들이 진입하기엔 '이미 너무 비싸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개인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증시에 입성하기 시작한 건 올해 1월 말의 일이다. 1900선에서 2300선까지 치솟은 코스피지수가 2100선 내외로 기간 조정을 받았던 시기다. 삼성전자 등 지켜만 보고 있던 주식이 '예전에 비하면 싸다'는 판단이 들자 곧바로 자금을 투입한 것이다. 이는 2000선이 잠시 무너졌던 코스피 지수가 불과 4거래일만에 100포인트를 회복한 2월 말~3월 초에도 반복됐다.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가 나온 것도 바로 이 시기의 일이다. 이 단어를 처음 언급한 한 투자 관련 유투버는 코스피 2000선을 전후로 증시에 입성한 개인투자자들을 '스마트 머니'라고 언급했다. 동학농민운동의 기치인 반(反)봉건ㆍ반외세를 각각 기관투자가ㆍ외국인투자자들과 대응시키며 개인투자자들의 용기를 추켜세웠다.
그 이후는 익혀 알려진 바다. 코스피지수는 2100을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3월 1450선까지 굴러 떨어졌다. '최초의 동학개미'들은 여전히 손실권인 셈이다.
물론 이 사이 증권사 고객 예탁금은 46조원 이상 치솟았다. 저가 매수 기회라고 여긴 개인 자금들이 끊임없이 흘러들어온 것이다. 이 때만 해도 매수세는 삼성전자에 집중됐다. 개인들의 매수세에 '애국심'이라는 상징이 부여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의 일이라는 게 증권가 관계자들의 평가다.
이 매수세가 수급에 유의미한 영향이 있었을까. 없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큰 효과를 낸 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3월6일부터 저점인 19일까지 코스피지수는 30% 하락했다. 개인들의 매수가 집중된 삼성전자는 같은 기간 26% 떨어졌다.
4월 들어 회복장에서 코스피 지수는 전 고점 대비 낙폭의 50%를 되돌렸다. 금융권에서 예상했던 기술적 반등 지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적극적으로 달러를 풀었고, 사실상 투기 등급 회사에까지 유동성을 지원하며 신용을 보장하자 투매가 잦아들었다. 여기에 연기금이 3월 이후 3조5000억원의 순매수에 나서며 반등장을 이끌었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개인들의 수급은 외국인들의 투매를 받아주는 데 한정돼 하락폭을 유의미하게 줄이진 못했다"며 "3월 말 급하게 진행된 기술적 반등장에서도 개인 자금은 주로 유동성을 공급하는 역할을 담당했고 실제로 지수 상승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건 2~3거래일 정도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하락장에서 적극적으로 주식을 매수한 개인투자자들은 이번 기술적 반등장에서 상당한 수익을 냈다. 금융권의 호사가들은 이를 1894년 4월의 '전주성 전투'와 비교하기도 한다. 당시 동학농민군은 기세만으로 전주성에 무혈 입성했다. 그리고 이는 동학농민군의 사실상 마지막 승리였다.
그간 국내 증시에서 개인투자자금이 '흐름'을 만들어내지 못한 건 ▲투자에 대한 이해도와 숙련도 ▲추구하는 수익률 ▲투자 규모가 완전히 다른 수 많은 개인이 방향성 없이 각자의 욕망에 따라 각개전투를 벌였던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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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하락장에선 나름 대형주ㆍ지수에 베팅하며 단결하는 모습을 보였던 개인투자자들은 4월 들어서 다시 이전의 단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지수가 오를만큼 올랐다는 판단이 들자 상당수 자금이 지수 재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품으로 몰린 것이다. 일부는 한창 뜨겁다는 원유 관련 상품으로, 또 다른 일부는 도박에 가까운 바이오주로 자리를 옮겼다.
실제로 4월 1일부터 10일까지 개인이 코스피 시장에서 순매수한 2조원 중 무려 34%에 달하는 6800억여원이 지수 하락에 베팅하는 인버스 상장지수펀드(ETF)에 집중됐다. 셀트리온헬스케어를 위시한 바이오 부문으로도 20% 안팎이 빠져나갔다. 삼성전자ㆍSK하이닉스ㆍ네이버 등 기존 정통 대장주의 상승에 베팅하는 자금은 5000억원 안팎에 불과했다.
시가총액의 25%를 차지하는 삼성전자 등 주요 대장주가 코스피 지수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삼성전자를 매수한 개인과 인버스를 매수한 개인은 이해관계가 완전히 갈린다. 이 둘은 제로섬게임(zero-sum game;승리자와 패배자가 명확히 갈리는 시합)을 할 수밖에 없다. 동학농민운동 때에도 종교적 색채가 강한 북접과 농민 혁명군에 가까웠던 남접은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내전 직전까지 가는 긴장을 연출하기도 했다.
증시에 몰린 자금이 역대급 유동성을 만들어내긴 했지만, 앞으로도 3월과 비슷한 역할을 할지는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게다가 2분기부터는 실물경제의 침체가 본격적으로 증시에 반영되기 시작하며 지루한 횡보ㆍ하락장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분석이 많다.
일례로 현재 코스피 지수는 전 고점 대비 15%가량 하락한 상태인데, 12개월선행 주가순이익비율(PER)로 보면 3월 급락장 전과 밸류에이션이 비슷하다. 이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제 중단으로 국내 상장사들의 이익 추정치가 올해 초 대비 11%가량 하향 조정된 까닭이다. 코로나19 백신 개발 진척, 코로나19 재발, 글로벌 경제 재가동 등 여전히 많은 변수가 남아있다.
한 중견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코로나 관련 낙관론은 이미 대부분 증시에 반영됐고, 악재는 아직 덜 반영됐다고 보는 게 옳은 시각 같다"며 "세계보건기구 등에서 5월 경제활동 재개시 재전파 우려와 올 가을 재유행 가능성 등을 언급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상황이 현실화하면 금융시장이 나 홀로 상승을 거듭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증시에 유입된 대규모 개인 자금은 지루한 횡보ㆍ하락장을 버텨내고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을까. 회전율이 특히 높은 개인 자금 특성상 올해 연말까지 남아있을 자금은 많지 않을 거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만약 2분기 이후 기업 실적이 실망감을 주는 가운데 시중에 대규모로 풀린 유동성이 다시금 수도권 아파트 가격을 들썩이게 만든다면, 예탁금이 이전 수준으로 돌아가는 건 시간 문제라는 보수적 시각도 조심스레 제기된다.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은 "현 정부가 여전히 증시에 적대적인 세금 정책을 견지하고 있으며 이번 코로나 국면에서도 증권시장안정펀드 외에는 아무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결국 증시의 발목을 잡을 수밖에 없다"며 "중장기적인 증시 자금 유입 정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갈 곳이 없어 잠시 증시로 흘러들어온 유동성은 다시 빠져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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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4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