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이딩 이익 폭증이 배경...코로나로 '몰락'
증권사 실적 환상 무너질 듯...'눈높이' 맞추기
'트레이딩은 위험ㆍ비연속적' 인식 확산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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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사 성장의 시대는 트레이딩과 함께 끝났다. 앞으로 2~3년간 증권사의 저성장을 받아들여야 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진행될 것이다."(한 대형 증권사 고위 임원)
2016년, 국내 증권사들은 모두 2조1300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2019년엔 순이익 규모가 4조9100억원으로 2배 넘게 늘었다. 4년간 업계 전체 연평균 이익 성장률이 30%를 넘나드는, '마법의 시대'였다.
마법을 가능케 한 건 기업금융(IB)도, 대체투자도 아닌 자기매매(트레이딩;Trading)였다. 2016년 2조4500억원이던 증권사 전체 자기매매 이익은 2018년 4조2500억원까지 성장했다. 대형사 기준 10% 언저리였던 자기매매 부문의 순이익 기여도가 순식간에 30~40%로 급성장했다.
트레이딩의 마법은 코로나19 대유행과 함께 무너졌다. 일부 대형증권사는 트레이딩 부문 손실로 인해 올 1분기 적자마저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금융회사 최고위 경영진들도 시장 변화에 쉽게 무너지는 트레이딩 부문의 위험(리스크)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손 쉬운' 평가이익을 안겨주던 대세 금리 하락기도 사실상 끝났다.
결국 앞으로 증권사 트레이딩 부문 축소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와 함께 증권사 이익에 대한 눈높이도 낮아질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2~3년간 증권사에 대한 '실적 환상'이 무너지며 이상과 현실 사이에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올해 1분기 국내 증권사들은 지난해 대비 민망한 수준의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 대형사 기준 평균 60%, 회사에 따라선 최대 80% 이상 줄어든 순이익을 기록할 전망이다. 이미 실적이 공개된 KB증권의 경우 아예 적자전환했다. IB를 비롯해 특히 트레이딩 부문의 수익이 크게 줄어든 탓이다.
트레이딩의 명가(名家)로 불리던 삼성증권이나 한국투자증권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두 회사 모두 3월 급락장에서 파생상품 관련 유동성 부족으로 마진 콜(margin call;증거금 추가 납입 요청)을 당했다. 한국은행의 단기자금 지원과 해외 증시 V자 반등 덕택에 무사히 넘어가긴 했지만, 올 1분기 트레이딩 부문 적자 전환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트레이딩 부문 적자 전환은 단지 한 부문의 일시적인 부진으로 치부하기엔 가볍지 않은 문제다.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트레이딩을 통해 4477억원을, 삼성증권은 4894억원을 벌어들였다. 각각 두 회사 순영업수익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비중이다.
게다가 2016년 이후 트레이딩은 '불패'의 캐시카우였다. 계절성이나 외부 변수를 심하게 타는 위탁매매(브로커리지)나 기업금융(IB)의 빈자리를 메꿔줘야 할 트레이딩 부문이 오히려 '구멍'이 됐다는 데서 오는 위기감은 상당하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보통 한 해 영업계획을 세울 때 각 부문별로 최대한 가능한 수익을 추정해보고, 회사 전체 목표와 비교해 부족한 부분은 대부분 트레이딩의 몫으로 넘기는 경향이 있었다"며 "특히 대형사를 위주로 트레이딩 부문이 매년 폭발적인 성장을 보인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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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흐름도 나쁘지 않았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국내 시장금리는 기준금리 인하에 따라 대세 하락기를 보냈다. 이 시기 기준금리는 3.25%에서 1.25%까지 떨어졌다. 100조원 이상의 국내 우량채권을 자산으로 품고 있는 증권사들 입장에선 보유만 해도 평가이익이 나는 구조였다. 실제로 트레이딩 수익이 최고치에 달한 2018년의 경우 국내 증권사 전체 채권관련 이익만 6조1800억여원에 달했다.
증권사들은 더 많은 수익을 위해 최고의 히트 상품이었던 주가연계증권(ELS)도 활용하기 시작했다. 수익을 내기 위한 파생 포지션을 직접 운용(자체 헤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이 극에 달한 2018년엔 대부분의 대형증권사 자체 헤지 비중이 60~80%에 넘나들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직전까지도 삼성증권은 80%, 한국투자증권은 50% 안팎의 자체 헤지 비중을 유지했다.
일반적으로 증권사가 ELS를 발행하면 투자자에게 수익금을 지급하고 평균 200bp(2%포인트)의 마진이 남는다. 운용제비용 등을 빼고 나면 수익성이 그리 좋지 않다. 6개월마다 조기상환 뒤 비슷한 규모로 재발행하는 '풍차돌리기'가 아니면 큰 수익을 내기 어렵다.
수익을 더 끌어내려면 ELS를 더 많이 발행하거나, 더 자주 조기상환 시켜야 하는 구조다. ELS는 기본적으로 부채로 잡히기 때문에 발행을 늘리는 건 자본건전성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 조기상환은 글로벌 지수 움직임에 달린 것이라 조정이 쉽지 않다. 수익성을 높이려면 파생 포지션을 직접 운용해 부가 수익을 창출하는 하는 자체 헤지 외엔 별 다른 돌파구가 없었던 셈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글로벌 증시 충격은 혹시나했던 파생 위험을 현실화시켰다. 아무리 대비를 하고 헤지(위험회피) 포지션을 잡더라도 블랙스완(극단적인 예외) 앞에선 '별무소용'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변치 않을 것 같았던 금융소비자들의 ELS 선호도도 퇴색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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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트레이딩은 원래 시장에 따라 수익이 출렁일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5년에 가까운, 굉장히 긴 기간 동안 매년 증가만 해왔기 때문에 모두 리스크에 둔감해졌던 것 같다"며 "제대로 된 경영자라면 이번 코로나19 사태 이후 트레이딩 부문의 위험노출(익스포져)를 다시 키우며 수익 압박을 하진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게다가 코로나19로 인한 초유의 글로벌 경기침체를 앞두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75%까지 낮추며 금리도 바닥에 가까워졌다는 분석이 많다. 미국은 현재 마이너스 금리에 대한 논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기축통화국이 아닌 한국 입장에선 현실적으로 고르기 힘든 선택지다. 금리 하락으로 인한 평가이익 증가세도 이제는 끝났다는 말이다.
트레이딩 부문의 쇠퇴는 결국 증권사 실적이 뒷걸음치는 결과를 낳을 전망이다. 자산관리(WM)부문과 IB부문이 앞으로도 꾸준히 성장은 하겠지만, 최근 수 년간 상당 부분의 이익을 책임졌던 트레이딩부문의 빈 자리를 빠르게, 완전히 메꾸기는 어려운 까닭이다. 직접투자가 늘어나며 WM 부문의 영업은 쉽지 않은 상황이고, IB 역시 시간과 인력의 중장기 투자 없인 폭발적 성장이 불가능한 부문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지주 계열 증권사의 경우 지주와 증권사 사이에 업황에 대한 간극이 크게 벌어져 있었다"며 "마진콜 사태 이후 지주 측 경영진도 증권업의 리스크를 체감했기 때문에, 기대감의 눈높이를 낮추는 과정이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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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5월 18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