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리지 ETFㆍETN 규제 발표...선물옵션 '데자뷔'
WTI ETN 괴리율 이슈가 애꿎은 지수 ETF에 유탄
"형평성 결여...국감에서 추궁 피하기 위한 규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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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물 유튜버는 발에 치일만큼 많은데 왜 국내선물 유튜버는 없냐고요?금융당국이 탁상공론으로 국내 선물 시장을 말려 죽였기 때문입니다. 해외선물이 훨씬 진입이 쉽거든요. 이번엔 패시브 투자 시장에까지 똑같이 '마수의 손'을 뻗쳤네요. 조만간 2014년 같은 '해외 엑소더스'가 벌어지고, 역설적으로 투자자들은 더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될 겁니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급 관계자)
금융위원회가 새로운 규제의 칼을 빼들었다. 앞으로 2배수 단위로 움직이도록 설계된(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ㆍ상장지수채권(ETN)상품에 투자하려면, 기본 예탁금 1000만원 이상을 예치하고 의무교육을 이수해야 한다. 금감원은 '무분별한 투기 자금 유입을 방지하겠다'는 대의명분을 내걸었다.
실패한 규제의 대명사로 꼽히는 '2014년 선물옵션 규제'때와 완전히 똑같은 상황이다.
당시 레버리지가 10배 이상인 선물옵션에 투기 수요가 몰린다고 판단한 금융위는 선물 3000만원, 옵션 5000만원의 기본 예탁금으로 진입장벽을 쌓았다. 20시간의 의무교육도 이수하도록 했다. 거래량 기준 세계 1위였던 한국 선물옵션 시장은 이 규제 이후 급속히 축소됐다.
시장이 축소만 됐다면 다행이다. 더 큰 부작용이 생겼다. 이에 투자자들은 예탁금도, 의무교육도 필요없는 해외선물 시장으로 달려갔다.
해외선물은 상품이 세분화돼 훨씬 적은 돈으로 투자가 가능하다. 현 시점 기준 미니나스닥선물은 2000만원, 마이크로나스닥선물은 200만원, 마이크로러셀2000선물은 불과 70만원이면 투자할 수 있다. 유튜브에 해외선물 투자 콘텐츠가 수천 건 이상 업로드되며 성행하게 된 핵심 배경이다.
레버리지 배수가 10배~15배인 국내선물에 비해, 해외선물은 지수추종상품의 경우 20~25배, 상품추종상품의 경우 최대 50배에 달한다. 금융위가 투자자들을 더 위험한 시장으로 쫓아낸 격이다.
소액으로 선물에 투자할 수 있게 해준다는 무인가 투자중개업체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2015년 한 해동안 단속된 무인가 업체만 500곳이 넘었다. 의무교육도, 계좌개설도 필요없이 단돈 10만원으로 선물옵션 투자를 할 수 있게 해준다는 말에 수백명의 투자자가 돈을 입금했다가 돌려받지 못했다. 지금도 해외선물 거래계좌대여 및 자금대출을 해준다는 사설 중개업체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금융당국도 이 규제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2019년 4월 선물옵션 증거금을 1000만원으로 내리고 의무교육 절차를 간소화하며 '투기적 수요를 파생상품 시장으로 흡수해 투자위험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랬던 금융당국이 불과 1년만에, 똑같이 획일적인 틀로 또 다른 시장을 규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모든 레버리지 ETFㆍETN를 단속하겠다는 규제의 폭 역시 이해가 안된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에 높은 괴리율로 문제가 됐던 상품은 서부텍사스산중질유(WTI) 관련 레버리지 ETN 단 하나다. 그럼에도 규제의 부담은 파생 ETFㆍETN 전체가 지게 됐다.
지수 추종 ETF(ETN은 지수추종 불가)의 경우 평소 하루 변동성이 1~2%포인트 미만이다. 역사적인 폭락과 폭등 때에도 지수 움직임은 10%포인트 수준이고, 이 경우 레버리지 ETF는 20%포인트가량 움직이게 된다. 일일 종목 상하한가 기준인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WTI원유 등 상품 관련 선물은 글로벌 상업거래소에서 상하한가 없이 거래된다. ETN의 상하한가 기준은 종목의 2배인 ±60%다. 이론적으로 레버리지 ETN은 단 하루 사이에 100% 전액 손실도 가능하다.
이런 상품군을 하나로 묶어 일괄 규제한다는 것 자체가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상품별로 일일히 심사할 수도 없고 형평성 시비가 걸리는 건 귀찮으니 일단 다 막자'라는 공무원식 사고 방식이 엿보인다는 평가다.
WTI관련 레버리지 ETN의 심각한 괴리율 사태는 유동성공급자(LP)의 신규 공급 물량을 일괄신고제 방식을 통해 적시에 충분히 공급하도록 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문제다. 애초에 15거래일의 심사가 필요한 증권신고서 제도로 운용토록 한 건 바로 금융당국이다. 괴리율 축소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증권사를 처벌하는 것 역시 금융당국의 몫이다.
이번 규제가 이제 막 영글기 시작한 국내 패시브 투자 시장에 큰 악재가 될 거란 우려의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린다. 국내 ETF 총 거래대금 중 레버리지 상품 비중은 60%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증시 폭락과 레버리지 상품 선호 현상이 본격화하기 이전인 지난해에도 42.4% 수준이었다.
지수 추종 패시브 투자의 낮은 변동성을 보완하기 위해 레버리지 상품을 활용했다는 말이다. 이런 투자 수요까지 '투기적 수요'로 판단한다면, 금융당국의 현실 인식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거란 지적이다.
한 중견 자산운용사 주식운용팀장 출신 전업투자자는 "레버리지 배수가 10배인 선물옵션 기본 예탁금이 1000만원인데, 고작 2배인 레버리지 ETFㆍETN에도 같은 액수를 부여하겠다는 점에서 누가 봐도 잘못된 규제"라며 "제대로 된 시장 의견수렴 없이 허겁지겁 3분기 내 도입하겠다는 건 10월 국회 국정감사때 관련 추궁을 피하기 위해서로 해석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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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5월 2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