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분할·합병 방식 개편안 선택하기 어려워져
법률상 공정성 따지기 어렵지만 방법 진화 중
지배구조 개편 미완성 그룹 고민 더 커질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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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지배구조 개편의 주요 방식이던 기업 분할합병이 소액주주 반발의 단골 소재가 돼가고 있다. 주주 눈높이가 높아지면서 분할합병을 통한 개편안이 최대주주에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분석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삼광글라스 소액주주들은 오는 7월 임시주주총회까지 삼광글라스 계열사의 합병비율 문제를 두고 공방을 준비 중이다. 소액주주 측은 삼광글라스와 계열사 군장에너지·이테크건설 3사 합병 과정에서 삼광글라스의 기업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됐다고 주장한다. OCI 계열로 삼광글라스는 올해 초부터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3세 승계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광글라스 사례와 같은 합병 또는 분할합병 방식 지배구조 개편은 그간 주요 그룹의 지주사 전환 및 경영권 승계에 널리 사용됐다. 기업가치나 합병비율을 산출하는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데 법률상 한계가 있어 최대주주의 보유지분 가치를 극대화하기 유리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의 주주행동을 기점으로 주주 가치 훼손 문제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IB업계에선 지배구조 개편을 앞둔 기업집단이 합병 또는 분할합병 방식을 선택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의결권자문사 한 관계자는 "재계 1, 2위인 삼성그룹이나 현대차그룹 모두 비슷한 진통을 겪었고 당시 엘리엇을 포함한 일부 의결권 자문사에서 합병비율이 불공정하게 산출됐다고 지적한 것이 광범위하게 수용된 상황"이라며 "특정 주주가 불이익을 받기 쉬운 구조인 만큼 행동주의 진영에서 세를 불리기 유리한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물산과 현대차그룹 사례는 참고서 역할을 한다는 후문이다. 한 법무법인 M&A 담당 변호사는 "A그룹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분할합병 관련 가처분 소송을 맡았는데 가장 먼저 참고했던 것이 삼성물산 사례였다"라며 "비슷한 딜을 준비 중인 기업들도 미리 공부하는 등 과거에 비해 겁을 내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다른 법조계 한 인사는 "법률상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재계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된 방식인데 엘리엇 이후 그 허점을 소액주주 진영이 막아버린 상황"이라며 "기업 평판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한 번 무산되면 비슷한 방식을 다시 취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법 규정만으로는 법원 측에서 합병비율 산정의 공정성을 판단하기 힘들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금융위원회가 현행 기업가치 산정기준의 공정성을 검토한 바 있지만 추가적인 개선 조치는 없었다.
IB업계 한 관계자는 "기업 가치는 결국 회계법인에 의해 평가받는데 방식은 결국 국제회계기준(IFRS)을 따른다"라며 "IFRS 양이 방대하긴 한데 결국 재량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고 소송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재판부가 평가 전반에 걸쳐 잘잘못을 따지는 건 사실상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이어 "여기서 더 들어가기 위해서는 합병비율 상 숫자가 아니라 과정 상의 편법이나 불공정을 파고 들어야 한다"라며 "트렌드도 최대주주뿐 아니라 실무과정에 참여한 관계자까지 수사범위를 확장해 위법 요소를 밝혀내는 쪽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재 삼성물산 합병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최근 정몽진 KCC 회장이 당시 삼성물산 자사주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이면계약을 맺었는지 조사에 들어갔다. 삼성물산 기업가치가 제일모직 대비 저평가됐다는 의혹 자체가 아니라 과정 상의 위법성을 밝히는 방식이다.
시장 일각에서는 이 같은 문제를 공론화하고 회계법인의 기업가치 평가에 대한 독립성·공정성 담보를 위한 법제화 움직임도 꾸준히 관측된다. 강성부 KCGI 대표가 발기인으로 등록된 기업거버넌스포럼은 최근 삼광글라스 사례를 위시해 합병비율 산정제도에 관한 행사를 예고한 바 있다. 행사에는 한국판 엘리엇 법안으로 알려진 사모펀드 규제개선안을 대표 발의한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참석한다.
기업 지배구조 개편이나 최대주주 일가 내 승계 문제를 마무리짓지 못한 그룹들의 고민도 커질 전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승계 준비는 5년에서 10년 이상 시간이 걸리는데 2·3세 경영인 승계 발판으로 마련된 기업을 그룹 정점에 있는 지주사와 합병하는 방식은 사실상 물 건너 간 상황"이라며 "승계를 앞둔 그룹 입장에서 잡음을 일으키지 않는 방식을 찾기가 무척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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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5월 2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