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V 가동까지 한 달…신속인수제 신청도 저조
정부지원 없이 비우량 자체조달 불확실성 커
-
A급 이하 비우량 기업들이 보릿고개를 겪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저신용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가 6월말에나 가동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되면서 한 달여 기간 동안 비우량 등급에 대한 정책지원 공백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회사채 신속인수제의 경우 신청률이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SPV 지원 본격화 이전까진 독자적으로 차입금 상환에 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6월 중 회사채 만기가 돌아오는 A급 이하 기업은 20곳 안팎으로 이들이 차환해야 할 총액은 1조원 이상 규모다. A등급 중 SKC와 한솔제지가 공모시장에서 목표금액 이상의 수요를 모집하며 흥행에 성공한 사례도 있지만 대다수 기업은 시장 상황을 살피며 수요예측 시점을 조율 중이다.
차환일정을 앞둔 기업들은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A급 이하 회사채와 CP 매입을 위한 특수목적기구(SPV)의 출범 시기는 6월 말로 예상된다. 정부가 출자금 1조원 중 5000억원을 3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마련하기로 한 만큼 가동 시점은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한 이후로 밀려날 것으로 보인다.
채권시장에선 기존 채권시장안정펀드 등 지원책과 마찬가지로 실제 SPV의 매입이 시작되는 건 7월 이후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6월 만기물량을 대상으로 한 첫 회사채 신속인수제 대상 기업의 경우 신청 자체가 저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
채권 시장 관계자들은 정책 지원 공백이 예상되는 6월 중 비우량 기업이 독자적으로 시장성 조달에 성공할 수 있을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5월 들어 정부의 시장 안정화 대책이 속속 발표되며 발행시장 내 온기가 충분히 퍼졌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5월 마지막주 들어 AA- 등급인 KCC도 투자수요 확보에 실패하며 옥석 가려내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5월 중 공모 발행에 성공한 일부 A급 기업들도 발행금리를 민평 대비 70bp 이상 높이는 등 유인책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마저도 업황전망이 안정적이고 만기 3년 이하로 발행하는 경우에 한해서"라고 지적했다. 이어 "싱글 A라는 등급 자체에 대한 투심이 안정세로 접어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라고 했다.
회사채 시장은 대규모 미매각 사태가 다음 발행일정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1일 현대건설기계(A-)가 1500억원 회사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에서 50억원의 주문이 들어왔고 25일 한화건설(A-)은 주문량이 '제로'였다. 위 관계자는 "두 사례가 6월 차환일정을 앞둔 비우량 기업에는 악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
다음달 만기를 앞둔 기업 중에는 전방산업 부진으로 실적전망이 불확실한 기업도 다수다. 크레딧 담당 한 연구원은 "현대건설기계가 대규모 미매각 사태에 맞닥뜨린 것도 해당 업종의 전망에 대한 평가가 투심에 악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라며 "6월 중 독자적으로 발행에 나서는 기업 중에서 비슷한 사례가 나올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6월 중 정부지원 공백사태를 기업이 자처한 상황이라는 시각도 제기된다. 정부 지원이 필요한 기업으로 '낙인' 찍히는 것보단 자체적으로 조달에 나서는 게 낫다고 판단한 기업들이 많다는 것이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도 신청이 많지 않은 것도 조달 비용 측면에서 유인이 부족하다는 점도 있지만 정부 지원을 받는게 장기적으로 평판에 부정적이라는 기업들의 판단이 깔려있다.
채권시장 관계자는 "자체 조달에 나섰다가 미매각 물량이 발생하면 결국 주관 계약을 맡은 증권사의 인수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몇몇 기업이 이렇게 해서 당장 자금 조달에 성공하더라도 미매각 사례가 반복될 경우 비우량 기업의 자금조달 창구가 더 좁아질 수 있는 부작용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5월 2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