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매매 연계 WM 강화'말고는 대안 많지 않아
'인력 효율화' 이슈 부각...PF 규제는 '그나마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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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보기엔 호황기다. 유동성이란 유동성은 모두 증시로 흘러들고 있다. 속으로는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위탁매매(브로커리지)를 제외하면 현상유지조차 버겁다. 경영전략 수정이 불가피하지만, '위탁매매와 연계한 자산관리(WM) 강화' 외에는 뾰족한 대안이 없다.
하반기를 불과 한 달 앞둔 국내 주요 증권사의 현 주소다. 당분간 위탁매매로 살림을 꾸리며 기업금융(IB)과 트레이딩(매매), 대체투자ㆍ상품 전략을 밑바닥부터 다시 세워나갈 수밖에 없을거란 평가가 나온다.
국내 주요 증권사 1분기 실적의 특징은 브로커리지 부문의 재약진이다. 외부 환경에 좌우되는, 천수답(天水畓) 사업의 실적 비중이 커진 것이다. 한때 20~30%대로 크게 줄었던 주요 증권사 수수료 수익 내 브로커리지 수익 비중은 올 1분기 다시 50%를 넘어섰다.
현재 코스피ㆍ코스닥 합산 국내 증시 일일 평균 거래규모는 25조원을 넘나든다. 28일에도 코스피시장에서만 14조2000억원, 코스닥시장에서는 11조7000억원의 거래가 이뤄졌다. 전일 대비 3조원이나 늘었다. 2016년만 해도 양 시장 합산 일일 거래규모가 10조원에 못 미치는 날이 많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의 자금은 물론, 경마가 중단되며 20조원에 달하는 경마시장의 자금까지 모두 주식시장으로 흘러들었다는 소문이 돈다"며 "코로나19가 지속되는 한 유동성 장세가 지속될 거란 믿음도 점차 강해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증권업계는 복잡한 표정이다. 위탁매매를 제외한 대부분의 비즈니스는 눈에 띄게 망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간 효자 역할을 해왔던 트레이딩이 대표적이다. 트레이딩 비중이 컸던 한국투자증권 등 일부 대형사는 트레이딩 탓에 1분기 대규모 적자를 냈다. 기업금융(IB) 부문은 자금조달을 담당하는 일부 전통 IB 영역을 제외하고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라임 사태 이후 파생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거부감이 커졌다. 주식연계증권(ELS) 시장 규모는 전성기의 절반 이하로 줄었다.
지난해 말 세웠던 올해 경영 전략과 실적 목표는 사실상 거의 백지화 된 상황이다. 일단 주요 증권사는 WM 강화로 대응하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를 비롯해 일부 증권사에서 대체투자 및 IB 부문 인력을 일선 영업점이나 WM으로 재배치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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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는 사실상 딱히 방도가 없다는 게 가장 큰 고민거리다. 일단 그간 많게는 실적의 50%를 차지했던 트레이딩, 특히 ELS 자체 헤지는 축소가 불가피하다. 자체 헤지 규모가 컸던 한국투자증권과 규모 축소를 공언한 상태다. 미래에셋대우나 NH투자증권 등은 이미 축소를 진행하고 있다.
그나마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규제가 지난해 말 원안에서 다소 후퇴한 방향으로 도입된 게 위안거리다.
당초 원안에서는 PF관련 채무보증 전액을 자기자본에서 한도 차감하기로 했지만, 실제 금융투자업 규정은 주거시설의 경우에만 100% 차감하고, 상업용ㆍ해외 프로젝트는 50%만 차감하기로 했다. 국내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PF는 아예 한도가 차감되지 않는다. 기존 PF에 소급 적용도 하지 않기로 했다. 신규 프로젝트만 규제 대상이다.
문제는 국내 PF 시장 자체가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 영향으로 4월 PF 관련 신규 자산유동화증권 발행액은 지난해 12월의 3분의 1, 지난 2월의 절반 수준으로 축소됐다. 현지 실사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해외 PF 투자도 녹록지 않다. 당장 인력을 줄여야 할지, 코로나19 종료 이후 돌아올 성수기를 위해 인력을 유지해야 할지부터 선택해야 한다.
주식자본시장(ECM) 부문도 일단 우려와 달리 증시가 안정적으로 상승 곡선을 그리며 '밥값'은 하고 있다는 평가다. IB부문 인력 효율화를 염두에 두고 있는 몇몇 증권사들도 ECM 부문 인력은 축소하지 않기로 방침을 세웠다. 5~7월 3개월 사이에만 2조원에 가까운 공모가 진행되는데다, 미뤄진 대형 기업공개(IPO)도 잇따라 본 궤도에 올라서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한 대형증권사 고위 임원은 "일단 증시는 좋으니 여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버티며 인력 효율화와 먹거리 발굴을 동시에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해외 유수의 증권사들처럼 트레이딩 등 리스크가 큰 사업은 줄이고 고액자산가 중심 WM 위주로 사업을 개편하는 방향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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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6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