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성장했지만 '넥스트' 모멘텀 부재
지배구조 개선·주주가치 제고 등 필요
-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성장 모멘텀을 갖기 위해서는 체질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국내 기획사들은 ’한류 열풍’ 이후 뚜렷한 성장 모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아이돌 시장이 포화하면서 더 이상 신인그룹 데뷔는 주가 상승을 이끌기에 부족하다.
올해 상반기 국내 엔터산업은 ‘코로나 쇼크’를 피할 수 없었다. 엔터사 수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내외 콘서트와 굿즈 판매, 팬사인회 모두 멈췄다. 코로나가 종식되지 않는 이상 하반기도 뚜렷한 실적 개선이 어려운 상황이다.
예상되는 호재가 없는 건 아니다. 방탄소년단(BTS)을 키운 빅히트엔터테인먼트가 연내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룡’ 빅히트의 기업공개(IPO)가 엔터 섹터를 ‘산업’으로 격상시킬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한령(중국 내 한류 금지령)’ 해제를 향한 기대도 여전하다.
다만 어디까지나 기대감이다. 한한령이 해제된다 해도 코로나로 국내 아티스트들의 본격적인 해외 활동이 불가능하면 수익 증가를 담보할 수 없다. 외교 문제가 불거지면 언제든 다시 닫힐 수 있다는 불안감도 계속된다.
‘한류’의 주요 매출처인 중국·일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선 북미와 유럽 등 글로벌 매출 다변화가 관건이다. 엔터업계는 중국의 한한령과 일본의 혐한 감정 고조 등 대외 불확실성이 증가할 때마다 휘청였다.
BTS가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건 주류시장인 북미에서 인기를 얻으면서다. 2019년 빅히트의 총 매출에서 북미가 차지하는 비중은 29.3%로 국내(38.5%) 다음으로 크다. 아시아(15.0%)와 그 외(15.9%)를 합친 수준이다. 지난해 대외 변수로 국내 기획사들이 실적 부진을 겪은 데 반해 빅히트는 매출액 5872억원, 영업이익 987억원으로 창사 이래 최고 실적을 기록했다.
최근의 미국 시장 진출 시도는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YG의 블랙핑크는 이달 정상급 아티스트인 레이디가가와 협업곡을 발표하며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JYP도 연초 트와이스의 미국 진출을 위해 테일러 스위프트, 아리아나 그란데가 소속된 미국 유니버설 뮤직 산하 ‘리퍼블릭 레코드’와 전략적 협업을 체결했다.
또 다른 한류 주역인 국내 화장품 기업들은 일찍이 개별 브랜드 강화에 주력했다. 글로벌 그룹에 인수되며 화제가 된 닥터자르트와 3CE는 각각 더마화장품(피부과학 화장품), 색조화장품 전문 브랜드의 정체성을 쌓아왔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은 해외 브랜드 투자로 포트폴리오 다양화에 본격 시동을 걸고 있다. 반면 ‘K-뷰티’ 콘셉트를 고수한 로드숍 브랜드들은 국내외 시장에서 힘을 잃었다.
국내 엔터산업도 ‘K(한국)’를 지우고 글로벌 시장에서 개별 플레이어로 성장이 필요하단 분석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아티스트들은 장르 불문 ‘K팝’으로 분류된다. 덕분에 K팝이 문화로 자리잡을 수 있었지만 한편으론 ‘독’이기도 하다. 지난해 버닝썬 사태가 터지자 CNN 등 외신은 K팝의 부정적 측면으로 대서특필했다.
국내 엔터기업 대부분이 ‘제왕적 리더십’에 의존하는 점은 꾸준히 개선점으로 지목된다. 최대주주인 기획사 대표들은 프로듀싱, 해외 진출은 물론 M&A 등 사업 전반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3월 말 기준 SM엔터의 이수만 회장은 18.73%, YG의 양현석 전 대표는 17.31%, JYP의 박진영 대표는 17.7%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방시혁 빅히트 대표는 지난해 말 기준 지분율이 45.1%에 이른다. IPO 이후엔 약 36% 수준으로 낮아질 전망이다.
투자자들의 눈높이가 달라진 만큼 불투명한 지배구조, 시장과의 소통 부재 해결이 급선무란 평가다. KB자산운용이 소액주주를 대표해 SM에 이수만 회장의 개인회사 격인 라이크기획의 합병, 비주력 사업 정리, 배당 등 주주환원 실시를 요구한 것은 이러한 흐름의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SM은 2000년 코스닥시장 상장 후 단 한번도 배당을 실시한 적이 없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K팝의 위상이 달라졌지만 국내 엔터업계는 여전히 ‘이 바닥이 원래 그렇다’는 식의 비즈니스를 하고있다”며 “업계를 향한 신뢰가 떨어진 국내 투자자들뿐 아니라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요소를 중시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요구를 충족시키려면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6월 1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