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도 제고 목적”…지방이전 압박 커지는 미묘한 시기
‘원주 이전설’까지…역명 병기로 ‘서울 존재’ 각인 효과
산은이 압박 버틸까…이동걸 회장 연임과 연계 시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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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이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에 ‘산업은행역’ 명칭을 추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책은행으로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목적인데 공공기관 지방이전 압박이 커지는 상황이라 시기가 공교롭다. 지방이전 논의가 본격화하기 전 역사 이름을 바꿔 산업은행은 ‘서울에 있다’는 인식을 각인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1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산업은행은 지하철 9호선 ‘국회의사당역’의 보조 이름으로 ‘KDB산업은행역’을 추가하는 안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시메트로9호선은 지난달 역사 사명 병기를 위한 입찰공고를 냈고, 7일 산업은행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삼아 계약 조건을 협상 중이라고 밝혔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사명 변경은 대표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시장 인지도를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최근 수년간 지하철 내부의 광고판을 활용해 업무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었다. 지하철역 이름까지 더해지면 광고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 지하철 역에서 200여미터 떨어져 있어 기준(500미터 이내)에도 부합한다. 산업은행의 명분과 의지가 있을 때 마침 서울시메트로9호선의 공고가 난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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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을 중심으로 국책은행 이전 등 국토균형개발 목소리가 높아지는 터라 시기는 미묘하다.
정치권은 국책은행 지방이전을 지방 민심을 잡을 ‘전가의 보도’로 활용해 왔다. 여당은 이번 21대 국회의원 총선거에 앞서 공공기관을 추가로 옮기겠다는 뜻을 드러냈다. 2년이 채 남지 않은 다음 대선에서도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여당 국회의원들은 ▲공공기관이 이전대상에 해당하는지 매년 검토하고 ▲공공기관 신설 시 지방에 우선 설립되도록 한다는 내용의 국가균형발전특별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
최근엔 산업은행(원주혁신도시), 기업은행(대전), 수출입은행(부산 BIFC) 등 국책은행의 이전이 예정돼 있다는 확인되지 않은 풍문이 돌았다. 국토교통부가 이달 중 내놓을 혁신도시 성과평가 연구보고서에 공공기관 추가 이전 내용이 담기느냐에 시장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 시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먼저고 정치권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 정부 부처간 의견을 조율해야 하고 지방자치단체, 노조와의 협의도 진행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 지방이전 시즌1은 참여정부 때 기본구상이 발표됐고 여야가 공히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사업이었음에도 작년에야 마무리됐다”며 “현재 일부 국회의원의 논의가 있을 뿐 대통령이 지침을 내리거나 정부 차원에서 움직이는 상황은 아니라 추가 이전이 급히 진행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 발전에 득이 될지도 미지수다.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업무야 본사가 어디든 큰 상관이 없다. 그러나 글로벌 사업 확대, 신산업 육성 등 업무는 서울이 적임지라는 것이다. 서울조차 글로벌 금융허브로 키우기 어려웠다. 국민연금은 전주로 내려간 후 ‘거름냄새 난다’는 조소를 들어야 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도 수출입은행장 시절 ‘서울에 있는 것이 영업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산업은행은 내부 알림에서 이번 역사명 병기를 통해 ‘산업은행의 위치에 대해 적극적인 홍보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직원 사이에서도 ‘KDB산업은행보다 한국산업은행이 낫지 않느냐’ ‘주관부서(홍보실)가 일을 잘했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광고 목적이든, 서울에 남기 위해서든 산업은행이 여의도에 있다는 점을 알려두는 것이 유리하다는 데 뜻을 모으는 분위기다.
문제는 산업은행이 국책은행 이전 압박을 버틸 힘이 있느냐다. 정부 여당은 출범 초기부터 정책마다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뚝심있게 밀어붙이는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이번 총선에선 압승을 거두면서 웬만한 목표는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얻었다. 국책은행 직원들의 불안감도 이전보다 커질 수밖에 없다.
국책은행 이전 문제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의 임기와 연계지어 보는 시선도 있다. 이 회장이 누차 밝힌대로 산업은행은 밀린 일을 처리하는 것만도 벅차다. 본인은 극구 손을 내젓지만 회장 연임 가능성은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힘 있는’ 회장이 계속 자리를 지킨다면 지방이전 바람도 한 차례 피해갈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 회장은 작년 ‘수출입은행과 통합’ 화두를 던지기도 했다.
금융감독당국 외부 자문위원은 “이동걸 회장이 벌려 놓은 것은 많은데 매듭지은 것이 없다 보니 연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며 “연임하면 역량이 세기 때문에 지방 이전 압박도 버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동걸 회장은 오는 9월 3년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다. ‘산업은행역’ 병기는 인쇄 및 안내방송 등 준비 기간을 거쳐 9월부터 실행될 예정이다. 역이름 병기계약 기간은 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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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7월 14일 09:5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