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선사들은 지원 뒷전…기안기금 지원도 어려워
자구 노력도 여의치 않아…”위기 자초했다”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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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옛 현대상선)이 정부의 해운업 재건 정책에 힘입어 부활의 날개짓을 펴고 있다. 정부와 국책은행의 지원 의지에 시장이 화답하며 대형 컨테이너선을 건조했고, 21분기만의 흑자전환도 예상된다. 다시 해운업 불황을 맞아도 쓰지 않은 카드가 많아 위기 대응이 가능할 것이란 평가다.
중소 해운사들은 정부 지원 대상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 기간산업안정기금(기안기금) 지원을 받기 쉽지 않고 자산 매각도 여의치 않다보니 운영자금을 마련도 큰 부담이다. 정부의 지원 근거가 없거나 선사가 위기를 자초한 면도 있다. 당분간 유동성 부담이 이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016년 상반기 한국 해운업계의 선복량은 100만TEU를 넘었다. 그러나 그해 한진해운이 파산하며 선복량은 1년도 채 되지 않아 반토막 났다. 선복량은 꾸준히 줄어 올해 초엔 50만TEU를 밑돌기도 했는데 2분기 들어 반등세로 전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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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이 반등의 중심에 섰다. 코로나19 확산 후 세계 물동량이 줄었지만 HMM은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투입하며 ‘규모의 경제’를 달성했다. 소형 선박과 운송비 차이가 크지 않지만 짐은 많이 실을 수 있어 수익성이 높았다. 4월 알헤시라스호를 시작으로 올해 2만4000TEU급 선박 12척이 투입된다. 2015년 1분기 이후 20분기 연속 적자를 냈던 HMM은 2분기 흑자전환이 점쳐진다. 내년 중 1만6000TEU급 선박들도 인도될 예정이다.
HMM의 부활엔 정부의 지원이 있었다. 2018년 ‘해운재건 5개년 계획’ 이후 초대형 컨테이너선 건조 지원이 이뤄졌다. 초대형 컨테이너션 투입 이후엔 효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났다. 해운동맹(디 얼라이언스)의 말석에 겨우 꼈으나 초대형 컨테이너선 도입 이후 대등한 구성원으로 올라섰다. 코로나 대책도 HMM 위주로 이뤄졌다. 해운업을 염두에 두고 꾸린 기안기금은 아직 쓰지도 않았다. 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가 대주주이니 한진해운처럼 유동성 위기에 흔들릴 가능성은 거의 없어졌다.
HMM의 입지가 올라가니 자금조달도 숨통이 트였다. 자본시장에서 직접금융을 조달할 정도는 아니라도 선박금융을 꾸리는 것은 가능해졌다. 코로나 사태 후 달러화 품귀 현상이 있었지만 HMM은 현재 자금 조달이 원활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선박금융 전문가는 “현재 시장에서 달러화 파이낸싱이 가능한 선사는 HMM 정도 뿐”이라며 “1만6000TEU급 선박 자금 조달 작업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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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이 부상하는 사이 중소형 선사들의 살림살이는 점점 더 팍팍해졌다. 정책 지원 우선 순위에서 밀렸고, 정부에서든 시장에서든 자금을 끌어오는 것이 어려운 모습이다.
중소 해운사들은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어렵기 때문에 물동량과 매출 감소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영향력을 키우고자 잇따라 선박 건조에 나섰지만 애초 탄탄하지 않은 체력으로는 자금을 부담하기 쉽지 않았다. 2017년 한국형 해운동맹을 표방하며 출범한 한국해운연합(KSP)도 별다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신용등급이 떨어지거나 등급전망이 악화하는 곳들이 늘었다. 동아탱커는 ‘흑자도산’ 했다.
해운사들은 기안기금이 유동성 압박을 해소할 창구가 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지원 대상(300인 이상 고용, 차입금 5000억원 이상 등)에 해당하는 곳이 많지 않았다. 코로나 영향으로 업황이 악화했다고도 보기 어려운 곳들이 대다수라 신청조차 어려웠다.
다른 금융지원 방안은 대부분 중복이거나 한 곳에 수십억~수백억원 수준의 지원에 그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부 선사는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코로나로 위급함을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금을 받아야 할 때는 신용평가사들이 안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점을 내세우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다.
현실적으로 정책 지원을 받기 쉽지 않다보니 선사들은 정부와 정치권을 향해 강한 목소리를 냈다. 산업은행이 엄격한 재무 관리를 요구하면 수출입은행을 찾아가고, 그도 여의치 않으면 정치권에 기댔다. 국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등에 이달 중순까지 각 5000억원 규모 운영자금을 대출해달라고 요청했고, 내달 초순까진 기안기금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작 정부와 국책은행들은 적극 지원에 나서기보다 더 엄격한 재무 관리를 요구하기도 했다.
중소 선사들은 여러가지 자구 노력에 나섰지만 그도 여의치는 않았다.
지난달 장금상선 계열사 시노코페트로케미컬은 유조선(VLCC) 4척을 SK해운에 4236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대규모 유동성 확보 기회였으나 용선주(GS칼텍스)의 동의를 사전에 얻지 않아 갈등이 불거진 것으로 알려졌다. 폴라리스쉬핑 역시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의 현금으로 바꾸기 위해 신조 벌크선 일부를 에이치라인해운에 넘기려 했으나 화주의 눈치를 봐야 했다. 회사는 유럽에 상장하길 원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고, 대형 사모펀드(PEF)와의 투자 유치 협상도 원활하지 않았다.
중소 선사들은 선박건조 자금을 조달하거나 새로 돈을 빌리는 것 역시 쉽지 않다. 원화든 외화든 자금을 구하기 쉽지 않다보니 일부 선사는 중국 금융사로 눈을 돌렸다. 보통 금융사들은 선박 가격의 70~80%까지만 금융을 지원해주지만 중국 금융사들은 중국에서 선박을 건조할 경우 95%까지 지원해주기 때문이다. 자기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여야 할 만큼 자금 사정이 급박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일시적인 유동성 공급처인 폐선 매각 역시 여의치 않았다. 폐선을 분해해 고철을 팔아야 이득을 거둘 수 있는데, 최대의 폐선 시장인 인도에 코로나가 확산하면서 분해작업이 쉽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HMM이야 자금이 부족해지면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가 알아서 채워준다”며 “장금상선이나 폴라리스쉬핑 등은 시장과 산업은행에서 외면당했고, 코로나 피해보다는 레버리지를 일으키다 유동성 위기를 맞은 상황이라 정책 지원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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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8월 12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