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용 심화하는데 정부는 여론 눈치만
외국인 국내 주식 주문 절반 줄어들기도
공매도 선별 금지ㆍ처벌 강화 해법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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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금지 기간 재연장 여부를 검토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지금 전 세계에 공매도를 금지한 증시는 한국과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뿐입니다. 아무리 표가 중요하다고 해도 산업의 근간을 이렇게 무너뜨리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한 증권사 기획 담당 임원)
공매도 제도의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다. 공매도가 이미 글로벌화한 국내 자본시장의 한 구성으로 자리 잡고 있고, 그에 맞춰 돈이 흐르고 있는데 그 물길을 갑자기 막아버린 것이다. 이런 왜곡은 결국 시장의 지반을 허약하게 만들고 있다. 점점 시장의 가격은 믿을 수 없게 되고 있고, 국민의 자산을 책임져주는 운용업계는 부실화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지지율에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현 정부가 만들어낸 '참극'이라는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70%에 가까운 '공매도 금지' 찬성 여론에 못이기는 척 정부가 금지 기간을 연장한다면, 단기적으로 여론은 우호적으로 작용하겠지만 결국 국내 금융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될 거라는 우려가 제기된다.
지난 3월 급락장에 시장 충격을 줄이고자 공매도를 한시적으로 금지했던 유럽연합(EU), 대만 등 주요국들은 대부분 지난 5월 금지 조치를 해제했다. 아직 공매도 금지를 유지하고 있고, 기한 연장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건 한국 등 극히 일부 국가뿐이다.
대만은 지난 6월 중순 공매도 금지를 해제했다. 이후 대만 가권 지수는 12% 올랐다. 같은 기간 공매도 금지를 유지한 국내 코스피는 11% 올랐다. EU 주요국들은 앞서 지난 5월 중순 공매도 금지를 해제했다. 이후 유로스톡스 지수는 19% 올랐다. 같은 기간 코스피는 23% 올랐다. 아예 공매도를 금지한 적이 없는 나스닥 지수는 전 고점을 경신하며 1만1000대를 뚫고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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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매도 금지가 주가 상승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자본시장연구원도 지난 2016년 관련 세미나에서 '공매도는 주가 하락과 연관돼 있지만, 주가 하락을 과도하게 부추긴다고 보긴 어렵다'고 국내 복수의 연구 결과를 소개했다. 오히려 공매도가 시장의 정보 효율성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시장 유동성 공급에도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했다.
문제는 여론이다. 지난 8월13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공매도 제도 존속 여부에 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공매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38%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공매도 금지를 연장해야 한다는 의견까지 합치면 공매도에 부정적인 응답을 한 비율이 63.6%에 달했다. 공매도가 주가 하락의 주범이며, 외국인과 국내 기관이 국내 개인투자자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수단이라는 이미지가 각인돼있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외국인과 기관이 정보의 격차와 물량 차이, 자본 규모의 차이 등을 활용해 개인투자자들을 흔드는 용도로 공매도를 활용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중 하나"라며 "올해 3월 공매도 금지 후 하필 코스피가 70%나 올랐다는 점이 개인투자자들의 공매도 금지 여론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 말했다.
그 사이에 국내 증시의 저변은 하나하나 약화되고 있다.
당장 국내 증시의 35%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떠나고 있다. 공매도 금지 이후 외국인들은 코스피·코스닥 합쳐 16조원을 순매도했다. 선물 순매수(7조원)을 감안해도 자금이 순유출했다.
매수와 매도는 반복되는 것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더 중요한 문제는 주문과 거래 자체가 줄고 있다는 점이다. 모 해외증권사 국내지점은 올해 해외에서 들어온 한국 주식 주문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50%가량 줄었다. 홍콩 등지에 나가 있는 국내 증권사 세일즈부서도 한국 주식에 대한 관심 자체가 줄었음을 체감하고 있다.
공매도 금지 이후 코스피·코스닥 주요 종목 중 오히려 거래량이 줄어드는 경우도 많아졌다. 한국거래소와 시장조성자 계약을 체결한 800여개 종목 역시 마찬가지다. 주식형 상장지수펀드(ETF)의 괴리율도 공매도 금지 이후 점차 벌어지고 있다. 이는 ETF의 거래 안정성이 크게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선물시장엔 유동성 위축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개별주식선물의 저평가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데, 이는 현물 주식의 매도 압력을 키운다. 주식의 변동성은 커지고 가격 형성 과정은 불안정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는 거래 비용을 증가 시켜 결국 시장 참여자들의 전체 수익을 깎아 먹게 된다.
삼성증권은 지난 6월 '공매도 금지 영향분석' 리포트를 통해 "공매도 감소와 주가 상승에는 뚜렷한 상관성을 찾기 어렵다"며 "공매도 비중 상위 종목의 주가 변동과 공매도 흐름을 비교하더라도 주가등락률은 공매도 거래 규모와 무관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분석했다.
시장을 기반으로 자산을 굴려 수익을 내야 하는 운용업계는 고사 직전이다. 지난 1분기 자산운용업계의 전체 순이익 규모는 1164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반토막 났다. 2분기는 더 참혹한 수치가 기다리고 있을 거란 평가다.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9500여명을 넘던 국내 자산운용사 임직원 수는 불과 반년 새 6000명으로 30% 이상 줄었다.
운용업계의 약화는 가벼이 볼 사안이 아니다. 국내 금융자산 약 4000조원(비금융주체 기준) 중 절반에 가까운 1800조원(2019년 9월말 기준)이 자산운용업계를 통해 간접투자시장에서 운용되고 있다. 이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면 결국 국민경제의 부담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갈팡질팡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포털 사이트의 댓글에 휘둘리는 것 같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다. 공매도 금지의 실익이 크지 않음을 인지하고 있지만, 여론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해석된다.
정부의 난처한 입장은 지난달 말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비공개로 열었던 금융시장 전문가 간담회를 통해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당시 이 자리에서는 ▲공매도 금지가 주식 시장 안정화를 가져온다는 실증 분석 결과가 거의 없고 ▲다른 파생상품 가격을 왜곡시키며 ▲일부 중소형주 가격에 거품을 유발할 수 있다는 얘기를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더불어 시장 붕괴에 대한 우려와 '동학 개미 운동'의 장기 투자 유도 방안 등에 대한 논의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예정대로 9월 중순 공매도 금지를 해제한다는 게 아니라, '의견 수렴 후 결정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결국 여론이 무섭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며 "국내 공매도 규제는 이미 다른 나라와 비교해도 매우 강한 편인데, 그마저도 기약 없이 금지해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벗어난다면 그간 염원해 온 코스피의 선진 증시 편입도 기대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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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법은 공매도 전면 금지 연장이 아니라, 선별 금지와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에 있다는 의견이 점차 힘을 받고 있다. 이전에도 정부는 공매도를 허용하는 와중에도 금융주에 대해서는 금지하는 선별 전략을 택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기업의 시가총액과 거래량, 공매도 비중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하자는 것이다.
국내법은 주식을 빌려서 매도하는 차입공매도만 허용한다. 하지만 공공연하게 무차입공매도(naked short-selling)가 벌어지고 있고, 일부 발각돼 처벌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의 경우 불법 무차입공매도가 발각되면 이득의 10배를 벌금으로 부과한다. 무차입공매도를 허용하는 미국 역시 고의 결제 미이행 시 최대 20년의 징역 혹은 500만달러(약 60억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국내법은 불법 공매도 1건당 벌금 6000만원, 가중해도 9000만원이 상한선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공매도 관련 법규는 국내법이 다른 나라보다 훨씬 촘촘하고 제한도 많다고 보면 된다"며 "무차입공매도 처벌 강화와 업틱룰(Up-tick Rule) 모니터링만 강화해도 개인투자자들이 우려하는 상황은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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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8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