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기업의 한국 이탈도 문제로
-
글로벌 기업들의 탈홍콩 움직임이 서서히 가시화하고 있다. 홍콩보안법 제정으로 홍콩을 떠나는 기업들이 점차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다. 여기에다 코로나 사태로 인해 중국 본토 지점 축소 움직임도 감지된다.
국내에서도’ 아시아 금융허브’를 외치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온 나라가 부동산 문제란 거대한 이슈에 묻혀있다. 지정학적으로 홍콩을 대체하기 가장 좋은 조건이란 평가지만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속에 기회를 허공에 날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사인 뉴욕타임즈가 아시아 디지털 뉴스 편집 거점을 홍콩에서부터 한국 서울로 이전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홍콩보안법이 시행되면서 이에 대한 조치로 이뤄졌다. 뉴욕타임즈 거점 이전 소식에 홍콩 기업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기업에 다니는 임직원들에게 아시아 국가중에서 가장 선호도가 높은 국가는 일본이 첫 손에 꼽힌다. 오랜기간 경제대국으로서 차지한 국제적인 위상과 일본문화에 대한 선호도가 강하다는 설명이다.
한 글로벌 기업 임원은 “코로나 사태로 중국 본토 직원을 아시아의 다른 국가로 배치하는 중에 직원 대다수가 일본을 택했다”라며 “한국을 택한건 모국어가 한국인 직원 일부만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이 와중에도 글로벌 기업 임직원이 서울지점을 선택하더라도 현실에서 부딪치는 문제가 만만치 않다. 최근 부동산 대책이 시시각각 나오면서 당장 살 집을 마련하기 힘들어졌다는 푸념이 나온다. 이들의 소득수준에 걸맞는 강남이나 한남동 주변에 아파트 전세나 월세 씨가 마르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관계자는 “외국인 입장에선 치안이 좋고 외국인 학교가 있는 지역을 선호할 수 밖에 없는데 서울에는 이런 공간이 강남이나 한남동 일부에 불과하다”라며 “최근에 부동산 정책으로 이곳의 임대 매물이 들어가면서 집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 됐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가 고소득자에 대한 새로운 과세 구간을 신설하면서 세금에서도 별다른 혜택이 없다는 지적이다.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2020세법개정안에 따르면 과세표준 10억원 초과구간을 신설해 소득세 최고구간을 현행 42%에서 45%로 상향한다.
-
정부가 밝힌대로 소득세 최고세율이 45%로 개정되면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와 함께 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000만명 이상 국가에 서 최고 수준의 소득세율이 적용되게 된다. 미국의 소득세 최고세율은 37%, 홍콩은 17%다. 일본이랑 최고 소득세율 면에서 차이는 없지만, 같은 소득세율을 적용받는다면 경제규모나 인프라에서 일본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비단 개인들만 한국에 매력을 못 느끼는 것만은 아니다. 법인 차원에서도 한국의 시시각각 변하는 규제환경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에 이전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일례로 주52시간제 적용 등 노동관련 규제가 강화하는 상황 등에 대한 외국기업들의 부담이 크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해고와 전환배치 등 고용조정의 어려움 ▲노조의 경영개입 등 과도한 요구 ▲경직적 임금체계 ▲노동 관련 제도·정책의 일관성 부족 등에서 어려움을 가장 크게 느끼고 있다는 답변이 많았다.
일각에선 기업유치가 문제가 아니라 해외기업 이탈을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크다. 지난해 외국인투자기업이 전년대비 3배 급증하는 등 홍콩뿐만 아니라 한국내에서도 해외 기업 이탈이 가속화하고 있다.
한 로펌 관계자는 “외국기업들에 한국 이전에 대해서 물어보면 다들 규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을 한국 이전에 따른 리스크로 꼽는 경우가 많다”라며 “규제의 일관성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한국을 기피하게 된다”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현재 정부에서 외국기업을 유치하겠다는 별다른 노력이 보이질 않는다는 지적이다. 최운열 전 민주당 국회의원 등이 탈홍콩 기업유치에 발벗고 나서자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정치권의 이목을 끌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정부가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기업 유치에 나설 경우 부동산 가격만 올라가고 양극화 문제만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 속에 이런 문제를 일부러 도외시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다.
이에 반해 일본 정부는 금융기업이 자국에 진출하면 법인세 감면, 임차료 경감 등 이전보다 강화된 인센티브를 준비 중이다. 이미 홍콩 거점 기업들과 접촉하면서 단기 비자 면제 프로그램을 가동한다는 소식도 전해지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 정부 입장에서 국내 문제도 복잡한데 해외기업 유치까지 신경 쓰긴 힘들 것이다”라며 “국부 차원에서 한단계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인데 국내 문제에만 발목이 잡혀있다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8월 13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