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CEO 겨냥 판매사 압박 수위 강화
주요 대형증권사 CEO 임기 대거 만료 앞둬
사모펀드 사태가 세대교체 도화선 될수도
-
"결국 인사로 매듭을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금융권 고위 관계자)
외풍(外風)으로 인한 세대교체가 이뤄질까. 라임자산운용을 시작으로 크고 작은 금융사고가 잇따라 터지며 핵심 판매 창구였던 증권사 책임론이 급부상하고 있는 까닭이다.
금융당국이 판매사를 통한 보상에 집중하고 있는 가운데,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들도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않다. 올해 말부터 내년 3월 사이에 주요 8개 대형증권사 중 5곳의 CEO 임기가 만료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예상보다 큰 규모의 인사가 단행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올해 7월말 현재 기준 분쟁 조정 절차를 밟고 있거나 조정이 필요한 사모펀드 및 관련 상품 규모는 5조원을 훌쩍 넘는다. 지난해 라임 사태가 본격화한 이후 옵티머스운용·알펜루트운용의 펀드가 잇따라 환매중단됐다. 올해 2분기 이후에도 젠투파트너스·디스커버리펀드·TA인슈런스 무역금융 파생결합상품(DLS)의 환매가 중단되는 등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
잇따른 사고에 금융당국은 일단 판매사의 책임을 먼저 문책하는 방향으로 해결의 물꼬를 트고 있다.
라임운용의 펀드 4건과 관련, 지난달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에서 '사기에 해당한다'며 판매사가 100% 보상하라고 결론을 내린 게 대표적이다. 금융당국은 지난해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도 핵심 판매사인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을 징계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수습했다.
최근엔 증권사를 대상으로 한 움직임이 좀 더 본격화했다. 이달 초 라임펀드를 판매한 일부 증권사에 '내부통제 표준 규정 위반에 대한 의견서'를 요구한 것이다. CEO의 내부통제 책임을 묻는 절차로, 통상적으로 CEO 징계를 위한 첫 걸음으로도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우리은행과 하나은행 역시 이 같은 절차를 거쳐 징계를 받았다. 법인은 6개월간의 일부 영업정지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전 우리은행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전 하나은행장)이 중징계(문책경고)를 받았다. 중징계를 받으면 금융회사 임원 선임·연임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두 사람은 모두 이에 불복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현재 분위기대로라면 증권사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판매사들은 이달 27일까지 분조위 권고안 수용 여부를 확정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지난달 분조위의 라임펀드 100% 보상안에 대해 판매사들이 이사회에서 '지급연기'를 결정하며 소극적인 거부 의사를 표시한 데 대해 금융감독원이 이를 갈고 있다는 얘기까지 들린다. 증권사의 행동을 이끌어내려면 CEO 압박이 제일 효율적일 거란 목소리도 나온다.
-
하필 올해 말부터 내년 3월 주주총회까지 국내 주요 대형증권사 CEO 중 상당수의 임기가 만료된다. 아직 임기가 남아있는 CEO도 금융사고가 겹겹이 터지며 안심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닐 거란 평가다.
증권가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증권사는 NH투자증권과 신한금융투자다. 정영채 NH투자증권 대표는 2022년까지 임기가 남아있지만, 자신의 임기 중에 4000억원이 넘는 옵티머스운용 상품을 판 부분이 집중조명 되고 있다.
같은 상품을 판매한 한국투자증권의 경우 개인투자자에게 조건없이 투자금의 70%를 선지급키로 했지만, NH투자증권은 지난달 임시 이사회에서 이를 보류했다. 판매액이 4400억여원에 이르러 70% 선지급시 3000억원이 넘는 자금이 소요되는 까닭으로 분석된다. 800명이 넘는 개인투자자들은 NH투자증권이 책임지고 100% 보상하라며 시위를 진행하기도 했다.
올 초 이영창 체제가 출범한 신한금융투자 역시 관심의 대상이다. 이 대표의 임기는 내년 말까지로 1년 넘게 남았다. 하지만 라임사태 등 고객 혼란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김병철 대표가 물러난 이후에도 젠투파트너·디스커버리펀드 등 금융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금융권 일각에서는 사모펀드 시장이 지금처럼 커지기 전인 2013년을 마지막으로 업계를 떠나있던 이 대표가 이번 사태를 컨트롤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임 김병철 대표 역시 본인 임기 이전에 벌어진 일에 대한 이슈로 인해 사퇴한 상황에서, 잠잠해질만 하면 터지는 금융사고에 대해 이 대표 역시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란 지적이다.
한국투자증권 정일문 대표의 임기도 일단 내년 초 만료된다. 한국투자증권은 라임·옵티머스·알펜루트 펀드의 주요 판매사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11월 기준 알펜루트 펀드를 3000억여원어치 판매했다. 알펜루트와의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규모 역시 가장 크다.
KB증권의 경우 지뢰밭처럼 터지는 사모펀드 이슈에서는 그나마 자유롭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자체 상품 이슈가 발목을 잡고 있다. 사실상 사기를 당한 호주 부동산펀드 사고, 6월 말 환매 중지된 1000억원 규모의 TA인슈런스 무역금융 DLS가 대표적이다.
박정림·김성현 KB증권 대표의 임기는 올해 말까지다. 상품 이슈 외에도 실적 이슈가 만만치 않은 부담일 거란 분석이다. KB증권은 올해 상반기 수탁수수료가 전년 대비 92% 증가하는 와중에도 당기순이익은 24% 줄었다. 일회성 순이익 차감 요인이 630억원에 달했지만, 이 역시 사모펀드 TRS 관련 평가손실·고객보상 관련 충당부채 등 경영진의 책임과 무관하지 않은 이슈였다.
자기자본 규모 기준 국내 1위 증권사인 미래에셋대우는 최현만 수석부회장과 조웅기 부회장의 임기가 내년 초 만료된다. 그나마 다른 증권사들에 비해선 금융사고 이슈에서 한발 비켜서 있다는 평이 다수다. 역시 내년 초까지가 임기인 장석훈 대표의 삼성증권도 라임운용과 젠투파트너스 상품을 일부 취급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 고객이 피해를 본 지주 계열 증권사의 경우 CEO 인사에 좀 더 엄정한 잣대가 드리워질 가능성이 크다"며 "사모펀드 사태가 증권가 대규모 CEO 교체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8월 17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