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측에도 허수 많다"...빛 바랜 '사상 최대 경쟁률'
바람대로 '따상'가면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게임주 된다
1개월 락업 해제 시점에 '빅히트' 상장 겹친 점도 변수
-
"따상(공모가의 2배로 시초가, 이후 상한가)은 갈 것 같아요. 돈 쏠리는 거 보니 10만원도 갈 수 있겠죠. 저희 물량 보호예수(락업;lock-up) 풀릴 때까지만 주가가 버텨줬으면 좋겠습니다. 솔직히 오래 가지고 있을 주식은 아니에요" (한 자산운용사 운용역)
역대 최대 청약증거금 기록을 갈아치운 카카오게임즈를 둘러싼 '눈치 게임'이 벌써 시작됐다.
광기(狂氣)에 가까운 청약 열기에 상장 직후 '오버슈팅'(고평가)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동시에 투자업계에선 불안한 마음으로 탈출 시점을 가늠하고 있다. 거품이 생각보다 일찍 꺼져버리면, 막상 손에 쥐는 수익이 얼마 되지 않는 까닭이다.
국내 주요 기관들이 카카오게임즈 기업공개(IPO) 청약에 단기 차익실현 위주로 접근했다는 건 수요예측 결과를 살펴보면 확인할 수 있다.
-
전체 수요예측 참여 수량 중 락업을 약속한 물량은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였다. 그나마 1개월 확약이 50%에 달했다. 최대주주와 함께 6개월 이상 주식을 보유하겠다는 참여 물량은 전체 락업 수량 중 1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올해 IPO 붐의 주인공인 SK바이오팜과 비교해보면 차이가 두드러진다. SK바이오팜의 경우 전체 수요예측 참여 수량 중 81%가 락업을 약속했다. 락업 수량 중 절반 이상이 6개월 락업을 약속했다. 3개월 이상 락업 수량이 90%에 육박했다. 가장 짧은 15일 락업은 전체 락업 물량의 1.8%에 그쳤다.
증권가에서는 카카오게임즈 공모와 관련, '수요예측 경쟁률 사상 최대'라는 수식어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허수가 적지 않게 섞여있다는 것이다.
금융당국에서는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 등 불법 우회 청약을 방지하기 위해 해외 투자자의 경우 수요예측을 받을 때 거래내역을 제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주관사와 거래실적이 있거나 실체성이 확실히 증명되는 경우 '거래내역 유' 항목에, 거래실적이 없고 실체성이 모호할 경우 '거래내역 무' 항목으로 구분해서 증권신고서에 반영해야 한다.
카카오게임즈는 공식 자료를 통해 '수요예측 참여 기관 중 해외 기관투자자는 407곳에 달해 해외에서도 주목을 받았다'라고 홍보했다. 그러나 이중 실체가 있는 해외 기관은 145곳에 불과했다. 262곳은 거래실적도, 실존 여부도 주관사단이 인지하지 못한 투자자였다.
-
SK바이오팜의 수요예측 경쟁률이 835대 1로 청약 열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던 이유는 이렇게 실재성을 확인할 수 없는 해외 기관을 경쟁률 산정에서 아예 제외했기 때문이다. 만약 카카오게임즈도 같은 기준으로 수요예측 경쟁률을 계산했다면 1478대 1이었던 경쟁률은 1284대 1 수준으로 낮아진다.
앞서 코스닥 시장에선 피엔케이가 1372대 1, 이루다가 1316대 1의 수요예측 경쟁률을 기록한 바 있다. SK바이오팜과 같은 기준이었다면 '사상 최대'라는 표현은 쓸 수 없었던 것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보통 기관들은 청약 한도를 꽉 채워 수요예측에 참여하고, 추후 배정 과정에서 주관사와 협상을 통해 인수 물량을 조절하기 때문에 이른바 '수요예측 경쟁률'은 아무 의미도 없는 허수에 불과하다"며 "언제부턴가 일부 증권사가 거래를 홍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요예측 경쟁률을 활용하기 시작하며 노이즈(잡음)를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상장 직후 카카오게임즈의 주가가 급등한다면, 필연적으로 수익성과 고평가 이슈가 따라 붙을 수밖에 없다. '퍼블리싱'(유통)이 사업의 핵심인 카카오게임즈의 수익성은 국내 동종기업들에 비해 크게 낮다. 그렇다고 타사를 압도할만한 게임 라인업이나 규모를 갖추지도 못했다.
투자자들의 바람대로 카카오게임즈가 상장 첫 날 '따상'을 간다면 카카오게임즈는 밸류에이션 기준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주식이 된다. 올해 예상 실적 기준 주가순이익비율(PER)이 60배에 근접하는 까닭이다. 올해 예상 당기순이익이 7000억원 안팎으로 카카오게임즈의 9배에 달하는 엔씨소프트보다 2배 이상 비싸진다.
-
만약 일부 장외 투자자들이 주장하는대로 카카오게임즈의 주가가 10만원에 도달하면 PER은 93배로 뛰어오른다. 국내 게임사는 물론 액티비전블리자드, 일렉트로닉아츠, 닌텐도 등 글로벌 유수의 게임회사들의 밸류에이션 대비 3배 이상 비싼 수준이다.
지난 2일 증권신고서를 내며 본격적인 상장 절차에 나선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존재감으로 인해 눈치싸움은 더 복잡해지게 됐다. 빅히트는 10월 초 공모 청약을 받고 10월 중순 코스피에 상장한다. 카카오게임즈의 1개월 락업이 풀리는 기간과 겹친다.
애초에 '단타'로 카카오게임즈에 접근한 기관들이 락업이 풀리자마자 수익을 실현하고 종목 갈아타기에 나설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평가다.
한 대형증권사 IB 관계자는 "카카오게임즈의 상장 후 주가 상승 기대감은 오로지 '돈의 힘'과 '세간의 관심'에만 기대고 있는만큼, 어디가 고점이고 누가 마지막 폭탄을 떠안을지 치열한 신경전이 펼쳐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요즘 개인투자자들의 용어대로 '천하제일 단타대회'가 열릴 것 같다"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9월 0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