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설부담 덜었지만 합의금 재원에 쏠리는 눈
ITC 판결 임박하며 재무악화 가능성 커지며
연이어 신용등급 불안까지 '첩첩산중' 평가
-
SK그룹 차원 과제였던 SK이노베이션의 재무개선 및 사업추진 계획이 연거푸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2차전지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전방위 자본조달에 나서고 있지만 LG화학과의 소송전과 등급불안 등 걸림돌이 코앞에 닥쳤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의 사업 성공을 위한 스토리텔링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시장의 의문도 커지고 있다.
ITC 최종판결이 임박한 만큼 소송 합의금 재원에 대한 갑론을박도 한창이다. 합의금은 어떤 형태로든 재무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판결 이후 기다리고 있는 신용등급 정기평가에 대한 불안감 역시 만만치 않다.
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최근 2차전지 투자 재원을 마련에 분주하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법인인 SK배터리아메리카는 신디케이트 그린론을 통해 4억5000만달러(약 5400억원)를 조달했다. SK이노베이션도 스페인 대형은행인 BBVA로부터 약 1400억원을 대출을 받았다. 8일 수요예측을 마친 3000억원 회사채 발행까지 포함하면 지난 한 달 간 1조원 가까운 실탄을 마련한 셈이다.
연이은 조달에도 재무개선 여력은 부족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지난 6월말 기준 SK이노베이션의 부채비율은 148%까지 불어났다. 정유사업 업황 회복 시점이 불투명한 만큼 하반기에도 적자 그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활을 건 2차전지 사업의 경우 핵심인 전기차 부문에서 손익에 도달하기까지 1~2년 이상 걸릴 거란 전망이다. 예상되는 합의금 규모를 고려하면 흑자전환 시점이 늦춰질 가능성도 있다.
-
SK이노베이션만의 재무스토리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의문은 오히려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앞서 지난 6월 SK그룹은 최태원 회장의 지시로 각 계열사 CEO만의 사업 성공을 위한 스토리텔링을 공유하는 자리를 가졌다. SK이노베이션에도 재무 관련 성공담을 포함해 신사업 발굴 및 M&A 등 사업계획 및 사회적 가치 창출에 대한 주문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차전지 업계에선 현재 진행 중인 SK루브리컨츠 매각과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상장 작업도 당시 마련된 재무스토리의 이행 과정으로 보고 있다.
증설부담에 대한 고민은 한층 덜었다. 그린론으로 조달한 5400억원은 미국 조지아 2공장 증설에 투입될 예정이다. 회사채로 조달한 3000억원 중 1000억원도 미국 내 배터리 생산거점을 담당하는 SK배터리아메키라의 지분을 취득하는 데 쓰인다. SK이노베이션이 11월까지 미국 법인 지분 취득에만 2000억원 이상을 출자한다. 미국 사업 철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관련 투자는 예정대로 가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반면 소송 합의금과 관련한 재원 마련은 깜깜이 형국이다. ICT 판결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뤄뒀던 합의금 문제를 다룰 시기가 닥쳤다는 지적이 많다. 소송 당사자인 SK이노베이션과 LG화학 모두 ITC 판결 전 합의 도출을 최상의 시나리오로 꼽지만 협상 테이블 바깥에서 대립각을 세울 뿐 진전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차전지 업계 한 관계자는 "고심 끝에 SK이노베이션만의 재무스토리를 마련했지만 이를 어떻게 실제 성공으로 이어갈 지에 대해선 난관이 많은 상황"이라며 "수개월 전만 해도 협상과 관련한 정보가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상황이었지만 지금은 짐작도 힘들어 업계 안팎으로 다양한 시나리오가 거론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합의금 규모는 최대 2조원 이상 거론된다. 조 단위 적자를 눈앞에 두고 충당금 설정을 미뤄둔 것이 더 큰 부담으로 다가왔다는 평도 적지 않다. 양사가 최근 대립각을 세우고 있지만 예비판결 결과가 뒤집힐 확률은 희박하다. 일시지급이냐 로열티 등 분납이냐, 지급 방식에 대한 고민이 남았을 뿐 재무지표 악화는 정해진 수순이란 전망이 지배적인 배경이다.
내달 5일 최종판결에서 패소가 확정될 경우 합의금 부담과 함께 11월 신용등급 정기평가에 나서야 한다.
진행 중인 사업부 매각과 계열사 상장 대금은 내년 이후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 조달한 자금을 합의금 재원으로만 생각하기도 어렵다. 배터리셀 설비투자에 이어 분리막까지 2차전지 전반 포트폴리오 확충 및 신사업 발굴도 게을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5년 배터리셀 생산능력을 연간 100GWh까지 확충하는 데만 매년 조단위 증설부담이 지속된다. 하반기 중 페루광구 매각대금이 유입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정유사업 적자폭을 줄이는 것 외 뚜렷한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증권사 2차전지 담당 한 연구원은 "신용등급 하락 조건을 충족한 상황에서 자금 유입 계획이라도 어필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차입금 규모가 대폭 불어난 상황에서 신용도 하락으로 금융비용이 늘어날 경우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9월 1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