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兆 예탁금, '빅히트' 공모 끝나야 성격 확인 가능
신용잔고 역대 최대...신용대출 죄며 추가 여력은 바닥
펀더멘털 1년 선반영...내년 코스피 이익 규모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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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코스피 3000 간다는 겁니까 안 간다는 겁니까?"
한 증권사 시황 담당 연구원이 최근 고객으로부터 받은 전화의 질문 내용이다. 지난 3월 이후 6개월간의 강세장을 경험한 증권가의 시선은 자연스레 향후 증시가 더 오를 수 있을지로 향하고 있다.
부동산의 '투기 자금'을 '생산적인 투자'로 돌리려는 현 정부 입장에서도 이는 중요한 이슈다. '뉴딜 펀드'의 최종 수익률은 결국 유통시장인 증시에서 확정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금융권의 전망은 '단기 조정, 중장기 추가 상승'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금은 장기 강세장의 초입에 불과하다'는, 과격하다 싶을 정도의 낙관적인 의견까지 제도권 리서치센터에서 나오고 있다. 반면 팽배한 낙관론이 고점의 징후라며 대비를 해야 한다는 신중론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올해 증시를 받쳐왔던 개인투자자들의 유동성이 이제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향후 증시의 추이를 결정할 핵심 변수 중 하나는 현재 유일한 매수 주체인 개인투자자들의 투자 여력이다.
현재 국내 증권사 투자자예탁금 규모는 55조원에 달한다. 지난해 말 대비 28조원가량 늘어났다. 역대 최대 수준이다. 증시 낙관론을 펼치는 측에서는 이를 두고 아직 유동성 장세는 끝나지 않았다고 진단한다. 정부의 강력한 정책으로 유동성의 부동산 시장 유입이 다소 주춤한 가운데 결국 돈이 갈 곳은 증시밖에 없다는 주장도 많다.
다만 증권가 일각에서는 지금의 예탁금 규모가 과대평가돼있다는 진단을 내리기도 한다. 이 뭉칫돈이 기다리는 것은 증시 진입 타이밍이 아니라 일부 공모주, 특히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실제로 투자자예탁금 규모는 카카오게임즈 청약을 한 달 앞둔 지난달 초부터 급증하기 시작해 지난달 말 60조원으로 최고치에 달했고, 공모가 끝난 이후 5조원가량 빠져나갔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카카오게임즈 청약이 한창일 때 빅히트가 신고서를 제출해 공모 일정을 확정했기 때문에 흘러들어온 자금이 일단 한 달 정도 더 머물기로 한 것이라 생각한다"며 "빅히트 이후 구미를 당길만한 대형 기업공개(IPO)가 없다면 카카오게임즈 이전 수준으로 천천히 되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개인투자자들이 레버리지를 위해 주로 활용하는 신용융자 잔고도 한계에 달했다. 현재 신용융자 잔고는 18조원에 육박하고 있다. 2018년 6월 기록한 종전 최고치 12조6479억원을 지난 6월29일 2년만에 돌파한 뒤, 사실상 매일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다.
브로커리지 점유율 기준 상위 10개 증권사 중 5곳이 현재 신용융자를 제한하고 있고, 2곳은 제한을 검토 중이다. 신용융자 수요 폭주로 한도가 전부 소진된 까닭이다.
지난 3월 지점 기준 6개월간 신용융자 잔고는 11조원 증가했다. 이 기간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증시에서 35조원을 순매수했다. 단순 계산하면 매수 자금의 3분의 1은 빚이었고, 이 마저 속속 추가 대출이 막히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한 대형증권사 관계자는 "카카오뱅크가 주식담보대출 전문은행이냐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이너스통장을 활용해 증시에 투자하는 젊은 직장인들이 크게 늘어난 게 사실"이라며 "정부가 고소득 고신용 직장인의 신용대출을 손보면 증시도 다소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 증시에선 유동성 증가 둔화의 징후가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달러화의 타락'을 상징하는 금값이 온스당 2100달러를 돌파했다가 돌연 1900달러까지 폭락한 후 횡보하고 있는 게 대표적이다. 초미의 관심사였던 9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별 다른 추가 통화 정책이 나오지 않으며 성장주를 중심으로 실망 및 차익실현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미국 성장주는 유동성 장세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던 종목들이다.
증시의 흐름을 결정하는 건 유동성과 펀더멘털이다. 현재 증시의 강세는 유동성의 힘이 향후 펀더멘털을 1~2년 이상 앞당겨 끌어온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유동성'이 '기대감'을 가격에 선반영시킨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예로 최근 하나금융투자는 두산퓨얼셀의 20년 뒤 예상 순이익을 기반으로 목표가를 제시하는 레포트를 내 화제가 됐다. 두산퓨얼셀은 개인 매수세가 몰리며 올해 주가가 4000원에서 6만원까지 올랐다. 현재 주가수익비율(PER)은 260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국내 증시의 펀더멘털은 괜찮은 것일까.
일단 기저효과의 덕을 볼 거란 전망이 많다. 2018년부터 국내 증시는 실적 쇼크의 연속이었다.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갈등으로 국내총생산(GDP)의 절반을 차지하는 대외무역이 침체됐다. 155조원까지 전망하던 2018년 코스피 기업 순이익 총합은 130조원으로 전년 대비 10% 역성장했다. 100조원 안팎은 할 거라던 2019년 순이익도 72조원으로 2013년 이후 최저였다. 올해엔 80조원 정도가 '베스트 시나리오'로 꼽힌다.
내년 코스피 순이익 전망치는 100조원에서 130조원으로 제시되고 있다. 기존의 기저효과까지 더하면 폭발적인 성장세가 될 수 있다. 현재 2400 안팎을 오가는 코스피 지수대는 지난 2017~2018년 코스피 기업 순이익 합계가 130조~143조원이던 시절의 중간값보다 조금 높다. 현 지수가 내년 증시 펀더멘털의 베스트 시나리오를 1년 3개월 앞서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한 지점이다.
현재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은 13배 안쪽이다. 역대 최고치 수준이다. 코스피가 13배 수준의 밸류에이션(가치척도)를 내년 하반기까지 유지할 수 있다면 코스피 지수 3000이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물론 이 시점엔 2022년 전망이 반영된다. 코로나19와 미국 대선 등 대내외적으로 불확실성이 커 아직은 전망이 불가능한 시점이라는 평가가 많다.
현재 제도권 금융가에서 가장 강한 톤으로 증시 강세를 말하는 곳은 KB증권 리서치센터다. KB증권은 최근 '유동성만 좋은 것이 아니다. 증시의 펀더멘탈도 좋다', '역사적 급등장의 수급 주체는 내국인이었다'는 제목의 레포트를 잇따라 펴내며 강세론을 펼치고 있다. 지금은 유동성에 의한 증시 과열 또는 버블이 아니라, 장기 상승장이 진행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KB증권은 지난 2018년 코스피 예상치를 최고 3060으로 제시하며 '코스피 3000 대망론'에 불을 지폈던 하우스다. 2017년 하반기 바이오 중심 랠리로 증시 참가자 모두가 희망에 들떠있던 시기였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2018년 1월29일 장중 2607.10을 역대 최고점을 기록했고, 이후 1년 간 23% 하락했다. 하락의 배경으로는 역시 2018년 코스피 기업 순이익이 예상외로 두 자릿 수 감소세를 보였던 게 첫 손에 꼽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코스피 12개월 선행 PER이 13배 수준을 계속 유지하려면, 적어도 2022년 코스피 기업 순이익 합계가 150조원 이상은 돼야할 것"이라며 "산업구조상 한국에 황금기와 같았던 2017년보다도 더 벌어야 한다는 건데, 현 상황에서 과연 가능한 일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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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09월 2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