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에 쏠려 오락가락 비난받기도 ...증권가선 '퇴행'
공모주 불패 신화는 '허상'..."뒷감당 어찌 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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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도 잘 알 걸요. 자기네가 얼마나 말도 안되는 짓을 벌이고 있는지." (한 증권사 IPO 실무담당자)
'동학개미 사수'에 나선 금융당국이 투자 시장에서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겠다고 나섰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현행 '최소 20%'로 규정돼있는 공모주 일반투자자 배정분을 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확정되면 조만간 발표할 공모주 청약제도 개선안에 반영될 전망이다.
주요 증권사 실무 담당자들을 포함, 증권가에서는 경악을 넘어 허탈하다는 반응이다. 이유는 이 같은 정책이 자본시장의 근간을 무너뜨리고 선량한 투자자들에게 복구할 수 없는 손실을 떠안길 거란 우려 때문이다.
공모주 배정 방식은 자본시장법상 금융투자협회 규정으로 정한다. 금융투자협회의 현행 '증권 인수업무 등에 관한 규정' 제9조는 우리사주조합원에게 20%, 일반청약자에게 최소 20%, 고위험고수익투자신탁에 최소 10%, 코스닥의 경우 벤처기업투자신탁에 최소 30%의 공모 물량을 배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과거 30여년간 국내 자본시장 역사에서 공모주 일반투자자 배정분은 점차 줄어드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증시가 '국민의 재산 증식'을 위해 전략적으로 활용되던 1980년대 '국민주' 시대에는 일반투자자 배정분이 전체 공모물량의 절반에 달하기도 했다. 이후 정보의 비대칭성, 전문투자자 육성 등 전략적 판단에 따라 일반투자자 배정분은 점차 축소돼왔고, 2008년부터 현행 '20%룰'이 정착했다.
불과 2년 전인 2018년까지만 해도 '일반투자자 배정분 축소'에 방점이 찍혀왔다. 일부 대형증권사들이 금융투자협회에 20%룰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 즉 해당 규정을 아예 폐지해 배정 자유도를 높이던지, 최소한 지금보다 비율을 낮춰달라는 내용이었다.
금융당국 역시 이에 호응해 일반투자자 배정분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검토하기도 했다. 2018년 11월 '자본시장 혁신과제' 발표를 앞두고 기업공개(IPO) 주관사의 자율성과 책임성을 높인다는 큰 원칙이 세워졌던만큼, 상당히 내밀한 검토가 이뤄졌다.
이 같은 흐름은 자본시장 상황이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국민주' 시대땐 액면발행제도가 대세였다. 액면가로 신주를 발행하니 상장 후 시장가격이 형성되면 누구나 수익을 낼 수 있었다. 1987년 시가발행제도가 전면 도입되며 공모주에 참여해도 수익을 낼 수 없는 상황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민에게 기업이 일군 부를 나누어준다'는 재분배 기능이 사라진 것이다. 여기에 일반투자자들은 적정 가격 분석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손실을 볼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점도 고려됐다.
금융연구원이 지난해 12월 발표한 'IPO 시장의 질적 성장을 위한 방안' 리포트에 따르면, 국내 공모주 시장의 특징은 '상장일 고평가'와 '상장 후 저평가' 현상이다. 시장 참여자가 적정 가격을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가 시장에서 빠르게 생산ㆍ공유되지 않고, 시장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한, 고위험 시장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같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상장한 기업 주식의 상장 후 수익률은 시장수익률보다 통계적으로 유의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수익률 대비 공모주 수익률의 하락 폭 수준은 2019년에 가까울수록 확대됐다. 2019년 신규 상장주의 3개월 누적초과수익률은 시장 수익률 대비 마이너스(-) 25%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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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배경으로 인해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라도 일반투자자 배정분을 줄일 필요성이 있다는 주장이 시장에서는 힘을 얻어왔다.
일반투자자들로서는 공모주 펀드 등을 통해 간접투자할 경우 손실 가능성이 훨씬 떨어진다. 대부분의 공모주 펀드는 채권 등 안전자산에 50~70%의 자산을 투자해놓고, 공모주를 통해 추가 수익을 도모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런 흐름과 달리, 금융당국의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뒤집힌 건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개인 자금이 증시에 쏠리게 시작한 올해 3월 이후로 추정된다.
증시가 약세로 돌아서면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들이 이번 정부에 부정적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지난 7월말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과 비공개로 가진 간담회에서 이런 인식의 일각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런 와중에 SK바이오팜 등 일부 공모주가 이른바 '대박'을 내며 개인 자금이 증시에서도 공모주라는 특정 섹터에 넘치도록 몰리기 시작했다. 지난달 말 카카오게임즈 공모 청약에 60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몰렸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장롱 속 쌈짓돈까지 꺼내들고 왔다'던 2010년 삼성생명보험 공모 청약때 몰렸던 증거금이 20조원 수준이었다. 자금 쏠림의 격이 달라진 것이다.
결국 최근 금융당국의 태도 변화는 증시가 급락하지 않도록 개인투자자들의 자금을 증시에 묶어두는 방편 중 하나로 공모주 일반투자자 배정비율 확대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을 낳고 있다. 하지만 공모주는 위험한 투자처라는 점에서 이런 발상은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을 거란 우려가 나온다.
당장 보호예수(락업)기간을 적용받지 않는 일반투자자 배정 주식 수가 늘면 상장 첫날 주가 변동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청약한 증거금의 규모로 신주 배정량이 결정되는 현행 배정구조로는 자본력이 우월한 '고액자산가'들과 '수퍼 개미'들만 혜택을 독차지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행 잔액인수 구조에서 증권사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기관투자가의 수요는 수요예측 과정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수요가 너무 약하면 아예 공모를 취소할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다. 일반투자자 공모 청약이 이뤄지면 취소가 불가능해진다. 만약 청약 미달이 발생하면 주관사가 모두 떠안아야 한다.
일반투자자 배정 비율이 커지면 이런 위험 역시 커진다.
이런 부담으로 인해 증권사들이 흥행이 보장되는 안정된 기업만 선별해 상장하게 되면 정부의 '혁신기업 자금공급' 목표는 오히려 흐려질 수 있다. 잔액인수분으로 인해 증권사의 북(book;투자한도)이 묶이면 이 역시 자금 공급의 순환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최소한 정부와 업계 사이에 '일반투자자는 공모주에 간접투자하는 게 옳다'는 인식이 공유되고 있었는데, 최근 움직임을 보면 뒷감당을 어찌 하려고 이러는 지 모르겠다"며 "일반투자자 배정 확대가 실제로 이뤄지면 공모주 시장은 더욱더 투기판으로 변해버릴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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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0월 0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