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어난 미래 투자…"재무부담 관리 필요"
-
초유(初有)의 불확실성 속에서 주요 대기업들의 신용도도 더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다. 우수한 신용도를 갖고 있는 대기업들이 주력 산업에서 부진을 겪고 있다. 코로나 영향이 큰 정유, 유통, 호텔 면세 등의 산업은 단기적인 수익성 제고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수의 산업이 격변기에 들어서면서 기업들은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생존을 위한 투자를 멈출 수 없는 상황인 가운데 동시에 수익성은 악화하며 재무부담은 증가하는 추세다.
신용평가사들은 공통적으로 재무부담 관리와 신사업 투자 성과 가시화를 향후 신용도를 결정짓는 관건으로 보고 있다. 신평사들은 대기업 집단 중 주요 계열사들이 실적 부진을 겪고 있는 롯데, 한화, 신세계, LG, SK의 재무부담 관리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
'2축' 흔들리는 롯데그룹, 불투명한 회복 시기
롯데는 양대 축인 유통과 화학에서 실적 부진을 겪으며 그룹 수익성 저하 추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룹의 이익창출 규모가 2017년 고점 이후 감소한 가운데 올해 코로나 영향으로 전 계열의 이익창출력이 더 악화하며 그룹 신용도 하방 압력이 커졌다는 평이다.
롯데는 2018년부터 현금흐름이 저하되면서 그룹 차입부담은 확대되고 있다. 2018년 이후 주요 계열사들이 투자 지출을 조절하면서 자본적지출(CAPEX)은 감소하고 있으나 현금흐름이 저하되며 순차입금 규모는 증가하고 있다. 또 2018년 이후부터 신리스회계기준 도입으로 차입금이 증가한 상태다. 롯데의 비금융부문 합산 순차입금은 2018년 16조2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26조2000억원으로 크게 뛰었다.
당장 재무건전성이 크게 우려되는 수준은 아니다. 늘어난 차입금도 그룹 EBITDA와 자산을 고려하면 부담되는 수준은 아니라는 평이다. 부동산 등 47조원의 유형자산도 재무융통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다만 사업 구조조정 등 투자자금 소요가 계속되고, 어려운 업황에 단기간 내 그룹 실적이 회복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면서 그룹 전반의 재무부담 확대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다.
유통과 호텔 등 대표 계열사는 신용 리스크가 크게 증가한 상태다. 롯데쇼핑은 코로나로 인한 실적 전망과 재무안정성 저하 가능성이 반영돼 등급전망이 ‘부정적’으로 변경됐다. 호텔롯데도 ‘최악’의 업황에서 그 어느때보다 신용도 하방압력이 높은 상태다. 사실상 코로나 장기화로 당분간 실적 부진을 벗어나기 힘들 가능성이 높다.
그룹에서도 위기감을 느끼면서 ‘체질 바꾸기’에 속도를 내는 분위기다. 롯데는 이례적으로 지난 8월 ‘깜짝 인사’를 발표하는 등 그룹 쇄신에 나섰다. 최근 롯데정밀화학이 두산솔루스 인수전에 투자자로 참여하면서 ‘배터리 전쟁’에도 도전장을 냈다. 지난해 롯데케미칼이 배터리 기술을 보유한 일본의 히타치케미칼 인수에 나섰다 실패하고, 히타치케미칼을 인수한 쇼와덴코 지분을 매입한 바 있다.
'부정적' 등급 대폭 늘어난 한화, 재무부담 모니터링 필수
한화그룹은 올해 7곳에 달하는 계열사의 등급전망이 ‘부정적’으로 변경됐다. 한화솔루션, 한화토탈, 한화에너지, 에이치솔루션, 한화호탤앤드리조트 등 비금융 주요 계열사를 비롯해 금융 부문을 책임지고 있는 한화생명보험과 한화손해보험도 전망이 ‘부정적’으로 변경됐다.
불확실성이 커진 가운데 한화그룹은 최근 대기업 중 처음으로 올해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김동관 한화솔루션 전략부문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는 등 세대 교체에 속도를 내고 있단 평이다.
한화그룹의 비금융부문의 영업현금창출력은 약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 태양광 부문에서 흑자 전환하면서 매출이 증가세를 보였지만 화학 부문에서 수익성 저하가 나타나면서 올해 전반적인 영업현금창출 규모가 전년 대비 축소했다. 그룹합산 영업이익은 2017년 3조9000억원 규모에서 2019년 2조원대로 떨어졌다. 화학 부문의 불안정한 수급구조로 단기간 내 그룹실적 개선을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다.
공격적인 외형 확장 투자로 그룹 전반의 재무부담은 빠르게 증가했다. 화학·태양광 부문의 대규모 설비투자를 진행했고, 한화토탈, 한화디펜스 지분인수로 자금소요가 이어졌다. 지금까지는 화학부문의 우수한 현금흐름으로 대응했지만 지난해 들어서는 실적 부진에 자금부족이 나타났다. 한화그룹의 2019년 말 총차입금은 2018년 말 대비 2조6000억원이 증가한 18조원을 기록했다. 총차입금/EBITDA 지표가 2018년 말 3.4배에서 지난해 말 5.1배로 빠르게 상승했다.
한화그룹의 투자 확대로 인한 재무부담 증가에 대한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산 매각 등 재무적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동시에 영업실적이 저하하면서 그룹 전반의 재무안정성은 저하된 수준이 지속될 것이란 관측이다.
금융 부문에서는 수익성 저하가 가장 큰 문제다. 한화생명과 한화손해보험의 수익성 회복 여부와 규제강화에 대한 대응 여부에 따라 금융 부문의 신용 위험 심화 혹은 완화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불쑥 당겨진 ‘유통 대전환기’ 맞은 신세계, 신규투자 성과 가시화 관건
신세계 그룹은 코로나가 앞당긴 ‘유통 대(大)전환’에서 선두를 지키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올 상반기 코로나에 따른 이동제한 등으로 소매유통, 호텔에서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락했다. 신세계그룹의 매출 80%는 유통, 외식, 호텔, 패션 등 소매 유통 부문에서 발생하는만큼 올해 전반적으로 저조한 실적이 예상되고 있다.
최근에는 그룹 내 ‘교통정리’에 나서며 ‘격변기’ 대응 태세를 갖추는 모양새다. 9월28일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자신이 보유한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지분을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에게 각각 증여했다. 이번 증여로 정 부회장과 정 총괄사장은 각각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의 최대주주에 올랐다. 그룹 내 분리 경영을 가속화하기 위함이란 분석이다. 앞서 2016년 정용진 부회장과 정유경 총괄사장은 각각 보유한 신세계와 이마트 주식을 맞교환한 바 있다.
영업환경이 빠르게 변화하면서 신세계그룹 합산 영업이익률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 그룹합산 영업이익률은 3.5%로, 최근 5개년 평균인 4.7%에 비해 저하된 수준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마트는 창고형 할인점, 아울렛, 복합쇼핑몰 등 공격적으로 신규 유통 포맷 투자를 이어가고 있으나, 이커머스에서의 저수익구조와 경쟁 심화, 신규사업 확장 비용 부담으로 이익창출력이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올 초 이마트는 ‘AA+’ 등급에서 한 등급 내려왔다.
결국 진행중인 신규사업 투자의 실적 가시화 여부가 향후 그룹 신용도에 핵심 요소다. 대형마트 수익성 저하와 온라인몰 및 전문점 등 신규사업의 이익창출력 개선이 지연되면서 그룹 수익성은 하락세다.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확보, 복합쇼핑몰 개관 등 당분간은 영업현금흐름을 초과하는 투자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룹 내 통합 온라인법인인 SSG닷컴은 2022년까지 약 1조1000억원의 대규모 물류설비 확충이 계획돼 있다. 일정 수준의 외형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초기 투자 비용이 그룹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앞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는 쿠팡 등 경쟁사와의 ‘유통 전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투자라는 평이다.
LG, 성장산업 확보와 재무부담 관리 동반돼야
LG그룹은 주력사업인 전자와 화학 부문의 실적이 저하세를 보인 가운데 투자 확대로 인한 재무부담 관리가 숙제로 떠올랐다.
우선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키우고 있는 차량용 전장 사업의 투자 성과 가시화 여부가 주목된다. LG그룹은 오스트리아의 ZKW 인수 등 제품군 다각화를 통한 외형 성장을 시현하고 있다. 다만 한신평은 “매출의 높은 성장 대비 수익성 확보는 지연되고 있다”며 “중장기적으로 외형 성장 흐름은 유지될 전망이나, 수익성 관점에서 사업성 분석능력 향상과 원가구조 개선, 이를통한 수주금액 현실화가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전자와 화학부문 투자로 2019년도 전년도와 비슷한 19조9000억원의 대규모 CAPEX가 집행됐다. 여기에 LG헬로비전 인수 영향으로 그룹 순차입금이 2019년 말 29조원으로 증가했다(2019년 말 19조5000억원). 다만 OLED 관련 대구모 투자가 일단락되면서 당분간 차입 증가 폭이 다소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신평사들은 디스플레이, 스마트폰 등 부진 사업의 실적 회복 여부와 2차전지 성장성과 수익성 제고 수준이 향후 그룹의 영업실적 개선의 관건이라고 전망했다.
LG그룹은 지난해 2018년에 이어 주력산업 부진으로 그룹 영업이익 규모가 감소했다. 화학 부문에서 업황 둔화와 ESS 화재 관련 일회성 손실이 나타났고, 전자부문에서는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사업 부진이 심화하면서 이익감소가 나타났다. 그룹 전체 영업이익이 2018년 8조4000억원에서 2019년 5조2000억원으로 감소했다.
LG화학은 올해 전지 부문 증설 투자 약 3조원을 포함해 연간 5조~6조원의 투자가 예정돼 있다. 전기차 시장에서 주도권 확보를 위해 생산설비 확충이 필수인 만큼 당분간 일정 규모의 CAPEX 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GM과 합작법인(JV) 설립 등 지분투자로 인한 자금 부담도 상당한 수준이 예상되고 있다.
북경 트윈타워, LCD 소재 관련 사업 등 자산 및 사업 매각으로 일정 부분 충당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신평사들은 12월로 예정된 LG화학의 전지부문 분할은 단순·물적분할로 당장 LG화학의 차입부담과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이후 IPO(기업공개) 등 자금조달 계획은 추후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SK, 주력사업 업황 저하 속 재무 관리 필요
SK그룹은 주력 사업부문에서 이익 축소가 이어지는 가운데 공격적인 투자가 계속되고 있다. 코로나 여파로 국제유가 큰 폭으로 하락하며 정유 화학 부문에서 대규모 영업손실이 발생하는 등 하반기에도 정유·화학·에너지 부문 실적 부진이 예상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SK는 2019년 발전 ·도시가스 부문을 제외한 전 부문의 매출이 전년 대비 역성장했다. 전반적인 매출감소, 반도체부문 수익성 저하 영향으로 2019년 그룹 합산 수익성도 전년 대비 크게 저하됐다. 올해 1분기에는 정유 화학 부문에서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해 그룹 합산 영업이익도 적자 전환한 것으로 파악된다.
올해 SK이노베이션, SK에너지, SK인천석유화학의 등급전망이 ‘부정적’으로 변경됐다. SK이노베이션은 유가 급락 등 마진 축소로 올해 상반기 대규모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재무구조 개선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반적인 그룹 재무지표 저하가 나타나고 있지만, 우려되는 수준은 아니라는 평이다. 올해 정유와 화학부문의 대규모 영업적자도 ICT부문이 손실을 보완하면서 전년 수준의 이익규모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또 반도체 부문의 투자 축소로 그룹 전반의 잉여현금 창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그룹 차원의 적극적 투자를 통해 사업포트폴리오 확대와 신규 성장동력 확보에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9년말 기준 그룹의 총차입금은 63조원, 순차입금은 46조원으로 확대됐다. 차입금의존도 및 순차입금의존도는 각각 30.9%, 22.8%로 전년 대비 저하됐다. 순차입금/EBITDA 지표는 0.7배에서 2.0배로 증가했다.
SK바이오팜 등 바이오 계열사들은 아직까지 그룹 실적에 유의미한 영향은 미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산업 특성상 향후 연구개발에 대규모 비용이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 직접 지분을 보유한 SK㈜, SK디스커버리 등의 재무부담 증대가 예상된다.
한국기업평가는 “SK이노베이션 등 일부 주력 계열사의 재무안전성 저하 우려가 심화하면서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시기로 보인다”며 “공격적인 투자가 지속될 경우 계열전반의 신용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확대될 수 있어, 비주력 사업 매각 등을 통한 그룹 차원의 리스크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0월 05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