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지분 매각 고심하는 삼성생명은 이중고
정의선 회장 금고 현대글로비스도 정조준
SK·CJ·LG 등 지주회사도 포함
명확한 기준 없어, 총수 길들이기 전락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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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너일가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 대상 기업을 확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대기업 계열사의 3분의 1가량이 규제 대상이 된다. 오너일가의 편법적 경영 승계를 방지하는 취지에는 대부분 공감하지만 정상적인 계열사 거래를 통한 기업의 경영 활동을 저해하는 요소란 반론의 목소리도 있다.
법 개정이 완료하면 언제든 공정거래위원회의 사정권에 들 수 있기 때문에 기업들은 규제에 맞춰 오너가의 지분을 팔거나, 내부거래 비중을 급격하게 낮춰야 한다. 다만 빠른 시일 내에 매출 구조 재편이 쉽지 않거나 보안 등의 이유로 내부적으로 거래할 수밖에 없는 기업들의 경우엔 상당한 혼란도 예상된다. 공정거래법, 상법 등의 개편안을 통해 기업들의 자금소요는 급격하게 늘어날 것으로 보이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그룹별 지배구조 또는 사업재편 가능성도 예상가능하다.
공정위가 추진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즉 사익편취규제의 핵심은 오너일가가 지분을 보유한 기업의 범위를 확대하는 것이다. 기존 법안은 오너일가가 30% 이상을 보유한 기업만을 대상으로 사익편취 대상을 규정해 감독했다면, 이번 개정안은 오너가의 지분율 요건을 20%로 낮추고 해당 회사들이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까지 내부거래를 따져보겠단 의미로 해석된다.
과거 사익편취규제에 해당하는 대기업 계열사는 210곳이었으나 이번 개정안이 통과하면 598곳(▲ 오너일가 20~30% 보유기업 30곳 ▲과거 규제대상기업 50% 이상 자회사 223곳 ▲신규 규제대상기업 50% 이상 자회사 135곳 추가)으로 늘어난다. 전체 대기업 집단 계열사(2108곳)의 28.3%에 해당하는 수치다. 일단 정부 발의로 추진되는 해당 법안은 기업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당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국민의힘은 자회사를 해당 규제에서 제외하는 법안을 발의했으나 현재로선 정부와 여당의 안건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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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업법, 상법 개정안 등을 피해갈 수 없는 삼성그룹은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도 촉각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물산은 이미 과거에도 규제 대상이었으나 50%이상 보유한 자회사까지 범위가 확대하면서 삼성물산 건축부문의 설계를 담당하는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급식업체 삼성웰스토리, 제일패션리테일 등 4곳이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해당할 것으로 보인다. 오너일가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30% 남짓인데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점을 고려하면 오너일가가 직접 보유한 지분율을 낮추긴 쉽지 않다. 결국 각 계열사별로 내부거래 비중을 급격히 낮춰 법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관건이다.
성물산 측은 “회사의 내부거래심의위원회에서 내부거래를 감시하고 있다”며 “회사의 내부거래는 주로 반도체 공장 등의 건설에 해당하는데 기술유출 방지를 비롯한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에 예외에 해당하는 부분도 많다”고 설명했다.
삼성생명은 금융회사가 자산의 3%(시가 기준) 가 넘는 자회사 주식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보험업법 개정안의 압박을 받는다. 여기에 이건희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이 20% 넘는 지분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사익편취규제 대상에 오르게 된다. 삼성생명의 자회사까지 확장하면 5곳의 계열사가 추가로 규제 대상에 오르는 셈이다. 오너일가의 20%를 초과하는 지분율이 많지 않기 때문에 규제 요건에 맞는 지분 매각도 고려해 볼 수 있지만, 삼성생명 역시 삼성전자의 핵심 주주인 점을 고려해야 한다.
과거 사익편취 규제에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기업은 현대차그룹이었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2014년 현대차그룹의 광고대행사 이노션 지분 30%를 외국계 사모펀드(PEF)에 매각했다. 이후 2015년 정몽구 명예회장과 더불어 당시 공정거래법에 맞춰 현대글로비스 지분 13.4%를 시간외대량매매(블록딜)로 처분하며 현재 29.99%의 지분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의 통과시 약 10%의 지분을 팔거나,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을 낮춰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다.
현대글로비스의 올 상반기 매출액은 약 6조4000억원, 이가운데 4조9000억원 이상이 현대차와 기아차로부터 발생했다. 내부거래 비중이 상당히 높고, 오너일가의 핵심 자금줄 역할을 하는 회사의 특성상 정부의 규제가 본격화하면 제 1의 표적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현대차 그룹은 최근 중고차 시장 진출을 선언했고, 그 주체로는 사업적 연관성이 가장 높은 현대글로비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이를 사업다각화를 통해 전체 매출 규모를 키워 내부거래 비중을 줄여나가는 작업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과거 일부 지분을 외부에 매각하거나 사업부를 떼내는 방식도 고려했으나 최근엔 전체적인 볼륨을 키우며 모비스, 현대차와 함께 그룹을 지탱하는 3개의 축으로 부상하는 모습이다”며 “단순히 글로비스의 사업적 역량을 키우는 차원이라기 보단 지배구조개편, 정부 규제 탈피 등 복합적인 목표 달성을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오너일가가 각각 20% 후반대의 지분율을 유지하고 있는 SK·CJ·LG와 같은 대기업 지주회사들의 경우도 이번 규제 대상에 신규로 포함된다. 과거에 이미 총수일가의 사익편취규제를 받고 있는 GS그룹은 GS건설을 중심으로 그 대상이 확대하고, 신세계그룹은 약 15곳의 자회사가, 효성그룹은 효성중공업을 중심으로 한 11곳의 자회사가 포함될 전망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일부 지주회사의 경우 자회사 및 관계회사와의 거래를 통해 상당부분 매출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지분율 요건만으로 규제를 적용하긴 쉽지 않다”며 “특히 건설, 중공업 업종의 경우 내부거래 비중이 굉장히 높기 때문에 세밀한 법 적용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룹 별 각기 다른 사정으로 인해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가져올 재계의 혼란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업종 또는 사업 성격에 따른 내부거래 세부 기준에 대한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도 않았기 때문에 자칫 정부의 입맛에 맞는 표적 규제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 측은 내부거래 기준과 관련해 “살펴볼 대상은 넓어지는 게 맞지만 제재 건수가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며 “절대적인 금액 기준보다 (사익편취해당 기업에 대해) 얼마나 유리(또는 불리)하게 측정됐는지 질적인 측면을 살펴보자는 취지”라고 밝혔다.
일단 현행법 개정이 사실상 불가피한 상황으로 진행하면서 각 그룹 별 사업적, 지배구조 개편의 속도도 빨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금확보가 최우선 과제인 대기업들은 국내 기업 M&A에서 유의미한 투자자로 나서기 어렵기 때문에 대형 사모펀드(PEF)와 기업들간의 합종 연횡도 점차 늘어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 사태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는 아시아 지역의 리즈널 펀드 그리고 조단위 자금조달에 성공한 국내 대형 PEF들은 오너일가의 지분정리 현황, 대기업의 스핀오프(Spin-off) 등에 상당히 관심을 갖고 투자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
PEF 업계 한 관계자는 “정부의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는 오히려 자금력이 막강한 PEF에는 큰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며 “지배구조개편의 한 축에서 자금줄 역할을 하거나, 규제 회피를 위한 사업 재편 과정에서 PEF들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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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0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