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공채 프리미엄은 없다'는 신동빈의 경고
유통조직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방증
-
롯데쇼핑이 헤드쿼터(HQ·본부) 기획전략본부장(상무)에 정경운 동아ST 경영기획실장을 선임했다. HQ 기획전략본부장직이 롯데쇼핑 백화점·마트·슈퍼·이커머스·롭스 5개 사업부를 총괄하는 자리다.
롯데쇼핑 총괄 임원에 외부 출신 인사를 선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신임 본부장은 2001년부터 보스턴컨설팅그룹에서 근무한 경영 컨설팅 전문가다. 강희태 롯데쇼핑 대표(그룹 부회장)가 신동빈 회장으로부터 '구조조정 전문가'를 영입해오라는 주문을 받았고, 정 신임 본부장을 적격자로 판단했다는 후문이다. 지난해말 컨설팅사 출신을 신임 대표로 기용한 이마트와 유사하다.
이번 롯데쇼핑 인사는 신동빈 회장이 기존 경영진들에 보내는 '경고' 성격이 짙다는 분석이다. 기획총괄 임원으로는 첫 외부인사 영입이다. 대표직이 아니라 상무직에 앉혔다는 점에서 신 회장이 '순혈주의'를 완전히 내려놓은 건 아니라는 해석도 있지만 그간 정통 '롯데맨'들을 기용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인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롯데와 신세계 등 통상 유통기업들은 그간 그룹 공채 출신을 요직에 앉혀왔다. 오랜 기간 회사에 몸담으며 오너에 대한 충성심이 있는데다 유통업에 정통하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라면서도 "롯데도 외부인사를 데려오기 시작했다는 건 더이상 이 업계에 '공채 프리미엄'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능력주의에 기반해 당장 성과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만이 롯데에 남을 수 있다는 경고 사인을 기존 경영진들에 보여준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 신임 본부장은 롯데쇼핑 경영정상화를 위한 구조조정 업무를 최우선으로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강도는 이마트보다도 셀 가능성이 있다. 이마트의 강희석 대표는 컨설턴트일 때부터 아마존 등 유통기업들을 주로 들여다 본 유통 특화 전문가였지만, 정 본부장은 구조조정 전문가다.
부진 점포 위주로 구조조정에는 가속이 붙을 수 있다는 기대감은 있지만 롯데그룹 유통조직이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음을 또 한번 드러낸 게 아니냐는 아쉬움도 제기된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정기인사 발표에서도 여전히 내부적으로 방향성을 잡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일 년 동안 경영 정상화, 신사업 M&A, 포트폴리오 다각화, 수익성 극복 등 많은 키워드를 내놨지만 결국 선택은 구조조정이라는 지적이다.
그룹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던 유통 채널 통합은 올해도 결국 이익 창출로 이어지지 못했다. 온라인 비중을 늘리면서 트렌드를 따라가려 노력하고 있지만 온라인 사업은 마진율이 낮은 데다 마진율 높은 오프라인 사업은 오히려 매출 성장률이 역신장하고 있다. 그룹 전체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시기에 유통혁신까지는 지지부진한 점이 아쉬움을 남긴다는 평가다.
백화점, 할인점, 슈퍼마켓 등 비효율 매장 폐점을 통한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실적 개선 틀은 마련했지만 자산손상과 구조조정 비용으로 세전이익과 순이익은 큰 폭의 적자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당장 연내 실적 턴어라운드도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키움증권은 롯데쇼핑이 3분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에 비해 26% 감소한 649억원을 기록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내년부터 실적이 개선될 거란 관측도 제기되지만 구조조정에 따른 일회성 비용을 미리 반영해놓은 데 따른 기저효과란 분석이다.
아직 정기인사가 남았지만 유통업계 내 평가는 '올해도 반전은 없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고 있다. 한 증권사 유통 담당 애널리스트는 "롯데쇼핑은 '구조조정' 키워드 말곤 말할 게 없다. 황각규 부회장 퇴진 등 파격인사 이후로도 롯데지주 주가는 파동 없이 여전히 잠잠한 모습을 보여줬다. 시장의 기대감이 없다는 게 롯데그룹의 가장 뼈아픈 점이 아닐까 싶다"라고 지적했다.
경쟁 기업인 이마트는 SSG닷컴(쓱닷컴)의 성장세에 힘입어 기업가치를 올리고 있다. 쿠팡은 턴어라운드에 성공해 올해 대규모 흑자를 낼 가능성까지 점쳐진다. 증권가에서도 '유통 3사'로 롯데쇼핑을 더이상 거론하지 않는 분위기다. 보통 쿠팡과 이마트(쓱닷컴), 네이버 구도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롯데쇼핑은 이번 인사로 조급함만 드러냈다. 신 회장이 문책성 인사로 기존 경영진들에 긴장감은 불어넣고는 있지만 막상 조직의 쇄신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다. 인수·합병(M&A) 등 앞으로의 사업전략을 내거는 게 아니라 구조조정 단계만 계속 머물고 있다는 한계를 보여줬다"라며 "구조조정 전문가를 일년 전 기용한 이마트와 비교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인사"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오너가 내릴 수 있는 결단은 대부분 인력 물갈이로 귀결된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이 실제로 점점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0월 20일 13:58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