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상 오른 K팝, 업태는 제자리
ESG관리 등 '지속가능성'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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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 빅히트의 주식시장 데뷔로 엔터테인먼트업계를 향한 관심은 그 어느때보다 뜨겁다. 하지만 여전히 기관투자자들은 “엔터주(株) 장기투자는 먼 얘기”라고 입을 모은다. 방탄소년단(BTS)과 K팝의 글로벌 인기로 산업 자체의 성장 가능성은 커졌지만, 상장기업으로서 국내 엔터사의 ‘지속가능성’은 의구심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기관들은 국내 엔터주가 ‘차익실현용’을 뛰어넘기 위해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을 통해 회사가 꾸준히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빅히트 상장 기념식에서 방시혁 의장은 “기업과 아티스트, 산업 종사자 모두 상생할 수 있도록 산업 구조를 혁신시키겠다. 상장사로서 주주 및 사회에 대한 깊은 책임의식을 느낀다”며 “기관투자자뿐만 아니라 주주 모두의 가치 제고를 위해 투명성, 수익성, 성장성, 사회적 기여에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엔터업계의 ‘아킬레스건’으로 지적받아 온 부분들을 의식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기관들에 엔터주는 차익 실현용 투자 성격이 강하다. BTS에 힘입어 기대를 모은 빅히트도 상장 첫날부터 외국인, 기타법인 등이 물량을 쏟아냈다. 빅히트 공모 과정에서 기관들이 당초 ‘신청한’ 물량 중 의무보유확약 비중은 43.8%에 불과했다. 최종 배정된 물량은 78%가 확약을 걸었지만, 절반이 넘는 물량이 6개월 안으로 몰려있어 기관들 매도가 쏟아지면 주가가 출렁일 가능성이 높다.
한 자산운용사 투자 담당자는 “국내 엔터사는 아이돌에 매출이 치중돼 아직까지도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다’는 인식이 있다. 그만큼 위험하고 안정성이 없다고 보는 것”이라며 “국내 엔터업계는 비즈니스도 워낙 특수해서 기관들의 이해도가 높지 않을 뿐더러, 회사들도 시장 이해도가 낮다. 최근 주식 시장의 관심이 높아진 건 맞지만 업태가 달라진 건 거의 없다”고 말했다.
결국 시장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회사들의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최근 투자자들의 판단에 있어 ‘지속가능성’, 즉 ESG의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엔터업계도 그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관측이다. 산업 규모도 커졌고, 개인투자자 등 이해관계자가 늘어나면서 ‘보는 눈’도 많아졌다.
지금까지 엔터사의 ESG에 대해 회사도, 시장도 관심이 없었다. 회사는 ‘노래만 잘 만들면 된다’ 식이었고, 투자자는 ESG를 고려한다면 애초에 엔터주를 제외했다. 투자포인트도 산업·소비재처럼 명확한 데이터가 나오는 섹터가 아니다보니 신인 기대감, 아티스트 인기, 회사 펀더멘털 등 제각각이다.
회사들의 시장 대응도 미흡했다. 지난해 SM엔터의 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기관투자자들의 요청이 있었지만 회사는 초기 ‘모르쇠’로 일관했다. 상장을 마친 빅히트는 이제 막 IR(Investor Relations) 팀을 꾸리고 있다. 한 엔터 담당 애널리스트는 “규모는 작은데 대중의 접근성이 높다보니 기본적으로 소통에 방어적인 편”이라며 “SM, JYP조차 아는 애널리스트가 아니면 전화를 받지 않을 정도다. 기관들도 연락이 안된다고 애널리스트에게 부탁하곤 한다”고 말했다.
투자자들은 유튜브의 등장, 북미대륙 진출 등 국내 엔터산업 자체의 성장성은 높게 보고 있다. 다만 장기적으로 각 사가 그에 맞는 대우를 받기 위해서는 아티스트와의 공정 계약문제, 혹독한 아이돌 트레이닝 등 사업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스태프 처우 개선, 콘텐츠의 윤리의식 강화 등 사회(S) 요소와 지배구조 개선, 주주가치 제고, 사외이사 및 이사회 역할 강화 등 지배구조(G) 부문 관리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부 리스크들은 불매운동, 아티스트의 활동 중단으로 이어져 수익에 악영향을 주고, 이는 주가에도 즉각 반영된다.
엔터·미디어 업계에서도 '다양성' 같은 글로벌 스탠더드의 화두가 중요해졌다. 이사회 및 고위직, 제작 환경에서 여성, 소수인종 등 여러 시각이 반영돼야 글로벌 트렌드와 감수성을 맞출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YG엔터는 대표 아이돌 블랙핑크의 뮤직비디오에서 여성 간호사를 성적 대상화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국내 상장 엔터사들은 이사회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그 역할조차 미미하다. 여전히 ‘오너’의 의중이 절대적이란 평이다.
한 기관투자자는 “기관들이 ESG를 보는건 결국 기업이 지속가능이 어려운 요인을 사전에 체크해 투자 리스크를 제어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국내 엔터사들이 취약점들을 개선해 시장에 어필하면 주가 측면에서도 좋은 포인트가 될 수 있다. 특히 해외 기관들에 투자 가능성을 만들어줄 수 있기 때문에 빅히트, SM, JYP 등 ‘잘나가는’ 곳들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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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0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