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문 대표들 색깔 강해져
삼일 거버넌스 변화에 빅4 회계법인 관심 커
제왕적 리더십 구시대의 유물로 사라질 수 있단 평가
-
올해 상반기 리더십 교체가 이뤄진 이후 삼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윤훈수 CEO 체제가 시작되면서 기존의 삼일과 다른 모습들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그간 삼일의 리더십은 50여년 동안 1등 회계법인 자리를 놓치지 않을 정도로 공고했다. 파트너들의 일사분란함과 공격적인 영업이 그 기반이란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윤 CEO가 수평적인 문화를 강조하면서 부문 대표들의 색깔이 도드라지는 등 기존의 삼일의 조직문화와는 다른 변화를 꾀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비단 삼일뿐만 아니라 4대 회계법인 거버넌스에 미칠 영향이 작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지난 4월 윤훈수 감사 부문 대표가 삼일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선출됐다. 윤 대표는 66년생으로 1987년 삼일회계법인 입사를 시작으로 2017년 7월 부터는 감사 부문 대표를 맡으며 삼일의 감사 본부를 이끌었다. 신 외감법 도입에 따라 감사부문의 위상이 올라간 점이 CEO 선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윤 CEO의 선임은 경쟁 회계법인에도 큰 관심을 끌었다.
그간 전임 CEO가 후임 CEO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후계구도가 이어져 오던 기존의 관행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파트너들간의 투표를 통해 선출됐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그간 삼일에서 볼 수 없었던 CEO 후보들끼리 경쟁이 나타나면서 업계에선 삼일이 이를 어떻게 봉합하는지 관심있게 지켜봤다.
결국 그 과정에서 경쟁구도를 형성한 배화주 딜 부문 대표에게도 일정한 역할이 부여됐다. 배 대표는 고객 및 마켓 담당 대표에 선임되며 윤 CEO가 조직경영 전반을, 배화주 대표이사가 고객 및 마켓 등 대외업무를 맡게 됐다.
윤 CEO는 기존의 수직적인 조직문화를 탈피하고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윤 CEO는 “집단지성과 다양성이 존중받는 수평적인 조직문화를 정착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삼일회계법인이 서비스 품질을 높이며 사회적으로 신뢰받는 회계법인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앞으로 조직 운영 방향에 뜻을 밝혔다.
이후 선출된지 반년이 지나면서 기존의 삼일과는 다른 모습들이 나타난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선 각 부문 대표의 위상이 이전보다 올라갔다는 평가다. 일례로 딜 자문의 경우 유상수 딜 부문의 대표의 색깔이 뚜렷하게 나타난다는 평가다. 한 다른 빅4 회계법인 관계자는 “유 대표 취임 후 딜 본부의 조직도가 발표되었을 당시에 상당히 놀랐다”라며 “기존의 조직도를 완전히 뜯어고치고 딜 본부를 6개로 나누었다는 점에서 유 대표의 색깔이 강조되었다는 점이 확연히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경쟁사들은 딜 부문에서 삼일과의 경쟁 격화를 걱정하고 있다. 유 대표가 딜 소싱 역량을 강조하면서 중소형 딜에서 삼일과 부딪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고 있다. 유 대표가 딜 본부 조직을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는 점에서 향후 1년 동안 성과가 무척 중요할 것이란 점에서 긴장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딜 본부에서 유 대표의 조직장악력이 강화되면서 삼일과의 경쟁이 더욱 격화될 것으로 예상한다”라며 “수임실적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삼일과 출혈경쟁을 벌일 경우 업계 전체적으로 수익성이 저하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처럼 부문 대표들의 색깔이 드러나는 가운데 오히려 윤 CEO는 조용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회계법인들에서의 평가는 아직까진 다른 부문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는 방식으로 회사를 이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각에선 윤 CEO가 아직 회사 경영에 나선지 반년 밖에 안됐다는 점을 그 이유로 들기도 한다. 그간의 CEO들과 달리 후계자로 낙점되어서 경영수업을 받은 것이 아니라 파트너들간의 투표로 CEO에 올랐다는 점에서 아직은 회사 경영을 배우는 시기로 바라본다.
또한 상대적으로 지지기반이 약한 점도 이유로 거론된다. 선거라는 과정을 통해서 CEO에 오르다 보니 전임자들보다는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평가다. 일례로 경쟁 후보였던 배화주 대표에 대외 업무를 맡긴 점도 기존의 삼일에선 볼 수 없던 조직구조다.
이는 이미 선거를 통해 CEO를 선임하는 절차가 자리잡은 딜로이트안진 등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파트너들간의 투표가 CEO 선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다 보니, 아무리 CEO라고 하더라도 제왕적인 권력을 행사하는데에는 제약이 있다. PwC를 비롯한 글로벌 4대 회계법인들에선 이미 이런 문화가 전반에 퍼져 있다. 글로벌 CEO가 파트너들간의 투표로 선출되다 보니 사업부문 및 지역대표들의 입김이 글로벌 CEO 못지 않게 강력하다는 평가다.
이에 반해 국내는 아직까지는 CEO가 인사권을 비롯한 회사 경영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EY한영의 경우 박용근 CEO가 올해 3월 취임하면서 수평적 조직문화가 자리잡고 있는데다, 삼일마저 부문 대표를 비롯한 파트너에게 힘이 실리는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자리잡을 경우 국내 회계법인의 거버넌스에도 큰 전환점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다른 대형 회계법인 파트너는 “윤 CEO가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경영기조를 이어갈지 여부에 따라서 회계법인의 거버넌스 구조가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본다”라며 “삼일마저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정착된다면 삼정을 제외한 빅4 회계법인에서 제왕적 CEO는 구시대의 전유물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1월 03일 15:47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