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유증서 공매도 금지 혜택 본 발행사 多
차익거래 수요 늘기 전 증자 마무리 지어야
-
정부가 내년 3월 공매도 재개를 예고하며, '유상증자 골든타임'이 끝나가고 있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올해 증자를 진행한 기업들은 예상보다 주가 하락폭이 제한된 상황에서 무난히 자금 모집을 끝냈는데, 공매도 전면 금지로 '차익거래'가 불가능해진 점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히는 까닭이다.
공매도 차익거래 규제가 아직 입법 단계를 밟고 있는 상황에서, 공매도가 부활할 경우 증자 기업에 대한 공매도 수요가 다시 폭증할 가능성이 크다. 비교적 주가 폭락 걱정이 덜 한 상황에서 무사히 증자를 끝마칠 수 있는 기한이 4개월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난 10일 연내 무차입 공매도에 대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내년 3월 15일을 기점으로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공매도 금지 조치를 해제하겠다고 발표했다. 내년 3월까지 무차입 공매도 제재 방안을 수립해 현행법이 규정한 차입 공매도를 다시 허용하겠다는 이야기다.
금융위원회는 코로나 19의 글로벌 팬데믹이 선언된 지난 3월 16일부터 6개월간 한시적으로 공매도 금지 제도를 도입한 이후 지난 9월 6개월 연장을 결정한 바 있다. 공매도를 금지한 지 8개월 만에 코스피 지수는 2500선을 돌파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유상증자에 나선 기업들이 공매도 금지의 혜택을 본 것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많다.
올해 자본시장에는 유독 유상증자에 나서는 기업이 많았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상반기까지만 해도 상장사의 유상증자를 통한 조달 금액은 3조876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7월 이후 한달여 만에 100여곳 이상 상장사가 유상증자 계획을 밝히며 대폭 늘어나기 시작했다. 코로나 장기화 속 증시 회복으로 침체를 맞은 경기민감 업종이 대거 유상증자에 나선 것이다.
통상적으로 유상증자는 주가에 악재로 풀이된다.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는 신호이며, 주가 희석 우려가 부각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매도 금지 이전 일부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은 발행가 산정 기간 동안 해당 기업 주식을 공매도해 발행가를 최대한 끌어내리고, 공모가 확정 후 싼 값에 신주를 취득해 차입한 기존 주식을 갚는 방식으로 '무위험 차익거래'를 반복해왔다.
이는 유상증자 결의 이후 상장사 주가 약세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월 아시아나항공 인수 자금 마련을 위해 유상증자에 나섰던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이다. 증자계획 공시 이후 HDC현산의 공매도 비율은 23.54%까지 치솟았고, 주가는 5거래일 만에 14% 폭락했다. 이후 신주 발행가격이 대폭 떨어지며 증자 규모도 20% 이상 줄어들었다.
그러나 공매도 금지 이후로 이런 모습은 자취를 감췄다. 대한항공 주가는 발행 주식 수 80%를 추가 발행하는 1조원대 증자 결정에도 2만원대 안팎을 지켰다. 최종발행가액은 1만4200원으로 증자 규모 축소도 2%대에 그쳤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항공사나 극장, 구조조정 중인 기업의 유상증자도 어쨌든 예상을 뒤엎고 완판이 이어졌다"라며 "주가가 빠질 만큼 빠진 상황에서 유증 참여만으로도 평단가를 낮출 수 있었겠지만, 공매도 금지가 발행사의 증자 계획을 밀어붙이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금융위 예고에 따라 내년 3월 이전 유상증자를 마칠 수 있는 기업은 공매도 금지의 혜택을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실제로 자기자본 규모인 1조원대 주주배정 후 실권주 일반공모 방식 유상증자를 추진 중인 포스코케미칼은 증자 계획 공시 이후에도 주가 하락폭은 5% 안팎에 머물고 있다. 포스코케미칼의 이번 증자 주금납입일은 내년 1월 21일이고 2월 초 신주를 상장할 예정이다. 증권가에선 포스코케미칼의 증자 규모가 줄어들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유상증자를 마무리하기까지 3~4개월 이상이 소요되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골든타임은 임박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적어도 연내 증자를 결정해야 '차익거래' 수요로 인한 공매도 공세를 회피할 수 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공매도 금지 조치 해제 이전에 보완 입법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주요 선진국 증시 중 공매도 투자자가 신주 발행 공모에 참여할 수 있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미국ㆍ일본 등은 공매도 투자자가 일정 기간 해당 기업의 신주를 인수할 수 없도록 금지하고 있다.
지난 8월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1명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해당 개정안에는 유상증자 계획을 공시한 이후 발행가액이 확정되기 이전에 공매도할 경우 증자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도 담겼다.
개정안이 통과할 경우 당국이 공매도를 재개하더라도 과거와 같은 차익거래는 불가능해진다는 평가다. 개정안은 현재 국회 정무위원회 심사를 거쳐 본회의 심의를 앞두고 있다. 다만 해당 법률은 지난 국회에도 제출됐다가, 본회의를 넘기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던 바 있다. 당시 여야 정쟁으로 인해 제대로 된 심사를 단 한 차례도 거치지 못했다. 지금도 국회의원들의 관심도는 현저히 떨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내년 2월부터 3월까지 상장사는 주주총회와 사업보고서 시즌이 돌아오기 때문에 할려면 서둘러야 할 것"이라며 "발행사 입장에서는 주총과 감사 시즌과 겹쳐 증자를 마무리짓는 것이 여간 부담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
[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1월 17일 17:4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