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최고경영진도 아닌 계열사 대표인데
윤 회장 의사 반영...시장 기대 져버리고 'my way'
"금감원 위상 전 같지 않지만...당혹스러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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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그룹이 금융당국의 징계 방침과는 상관없이 인사권을 행사하는 모습이다. 교체가 유력했던 KB증권의 각자대표 두 명을 모두 1년 연임시킨 것이다.
그룹 안팎에서는 '대안이 마땅치 않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의 징계가 가지는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도 사실이다. 다만 지주 최고경영자가 직접 징계의 타깃이 됐던 이전 사례와는 달리, 시장에서 대부분 교체를 전망했던 계열사의 대표 인사에서도 당국과 각을 세운 모양새다. 이로 인해 금융당국이 느낄 '당혹감'이 더 클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KB금융지주가 18일 단행한 계열사 대표이사 인사의 핵심은 그룹 부회장직 신설과 교체설이 일부 제기됐던 KB증권ㆍKB카드 대표이사 연임 결정이었다. 이 중 KB증권 인사는 금융당국의 징계 방침과 정면으로 맞서는 결정이라는 점에서 후폭풍이 예고되고 있다.
KB금융지주 계열사대표이사추천위원회(대추위)는 윤종규 KB지주 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허인 국민은행장, 스튜어트 솔로몬 지주 사외이사, 유석렬 사외이사, 정구환 사외이사가 위원으로 참여한다. 사실상 윤 회장의 의지가 가장 많이 반영된다는 의미다. '윤 회장이 시장의 전망을 외면하고 마이웨이만 고집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금융감독원 제재심의위원회는 지난달 10일 박정림 KB증권 대표에게 문책경고의 중징계를, 김성현 대표에게 주의적 경고의 경징계를 권고키로 했다. 각각 직무정지ㆍ문책경고로 통보됐던 징계 초안에서 각각 한 단계 낮아진 결과였다.
중징계 통보를 받은 박 대표의 경우 징계가 확정되면 향후 3년 간 금융회사의 등기임원이 될 수 없다. 경징계를 받은 김 대표의 경우에는 징계 확정 시에도 연임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KB증권은 금감원의 책임론을 주장하는 탄원서를 국회 정무위원회 의원들에게 전달하는 등 박 대표 구명을 위한 로비 활동까지 불사했다. 금융권에서는 처음부터 KB증권이 ▲그룹 인사 전 징계가 확정되지 않도록 하고 ▲연임이 가능할 정도로 징계 수위를 낮추는 '투 트랙' 전략을 짠 것으로 보고 있다.
박 대표 징계의 핵심 배경은 라임펀드 판매였다. KB증권의 해당 부서 실무팀장이 라임자산운용측과 결탁한 정황이 일부 드러나기도 했다. 김성현 대표는 호주 부동산펀드 투자 관련, 손실을 본 일부 기관에게 공모주 배정 혜택을 줬다는 이슈가 제기됐다.
당초 이르면 이달 초 확정될 전망이었던 두 대표의 징계 수위는 내년 초로 미뤄진 상태다. 금감원 제재심 결정은 '권고' 수준으로, 증권선물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본회의를 거쳐 최종 의결된다. 이달 9일, 16일 두 번 열린 증권선물위원회에 라임펀드 판매 증권사 징계안은 상정되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공시위반 법인 조치 등 기본적인 안건만 처리됐다.
이번 인사를 앞두고 그룹 안팎에서는 KB증권 대표이사 교체 가능성을 유력하게 봤다. 당초 금감원에서 직무정지의 중징계를 예고한 박정림 대표의 경우 '징계 처분의 효력이 닿지 않는 비금융회사로 이동하는 게 아니냐'는 뜬소문까지 떠돌기도 했다. 현행 법규상 직무정지의 경우 4년, 문책경고의 경우 3년간 금융회사의 임원이 될 수 없다.
KB금융의 결정은 '징계 정면돌파'였다. 규정상 위배되지는 않는다. 아직 징계안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년 초 금융위 전체회의에서 확정되더라도 부여된 임기는 소화할 수 있다. 다른 금융사들의 최근 대응처럼 징계 효력금지 가처분신청ㆍ취소 소송의 절차를 밟을 가능성도 있다.
그 결과 금감원은 체면을 구기게 됐다. 금감원은 올 하반기 '라임펀드 판매사 징계'에 사활을 걸고 있다. 감독 부실에 따른 책임을 금융회사에 전가하기 위한 것이란 분석이 나올 정도다. 물론 라임펀드 및 옵티머스펀드의 사기 행각이 전국민적인 관심을 모으고, 공분을 사고 있는 상황에서 담당 기관인 금감원이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는 당위론도 힘을 받고 있다.
지난해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때에도 비슷한 전개가 펼쳐지긴 했다. 당시 금감원은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에 대한 징계를 감행했다. 두 사람 모두 이에 불복해 가처분 소송을 냈고, 승소했다. 손 회장은 올해 초 연임까지 성공했다.
다만 DLF 사태땐 징계의 칼 끝이 두 그룹의 최고경영자를 향했다는 점에서 이번과는 차이가 있다는 평가다. 두 그룹 모두 당시 징계를 승복하면 그룹 지배구조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이었다. 이번 KB증권의 경우엔 '차기 리더 후보군'이긴 하지만, 지주나 은행의 최고경영자가 아닌, 산하 계열사 대표이사였다는 점에서 '격'이 다소 차이난다는 지적이다.
한 금융그룹 관계자는 "아무리 금감원의 위상이 전 같지 않다지만, KB금융이 'KB증권에 대한 금융당국의 징계 의지는 신경쓰지 않겠다'고 공표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솔직히 좀 놀랬다"며 "증권사 최고경영자(CEO)급 인재 풀(pool)이 거의 고갈 상태라 '대안'이 없다는 것도 이번 결정에 한 몫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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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0년 12월 18일 15:39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