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지배구조 개편·미래 비전과 맞물려
국내선 활로 없어…해외 M&A 더 늘 듯
성과 실현 의문…무리한 투자될까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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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벽두부터 대기업들의 해외 진출 움직임이 분주하다. SK그룹은 글로벌 수소기업 플러그파워의 최대주주에 올랐고, LG전자는 전기차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손을 잡았다. 앞서 현대차도 로봇회사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하기로 했다. 조단위 거래를 거침없이 성사시키고 있다.
기업들의 해외 M&A 움직임은 지배구조 개편과 맞물려 있다. 주요 그룹들은 3세, 4세 경영 체제가 본격화하며 오너의 지배력 강화와 미래 비전 제시가 화두다. 저마다 세워둔 청사진이 있지만 국내선 규제가 강하고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터라 시선을 해외로 돌리고 있다. 달아오른 주식 시장도 일단 기업들의 행보를 긍정적으로 본다.
기업들의 적극성은 반길 만하지만 반대로 조급증 때문에 무리한 투자가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세계적 흐름과 그룹들의 지향점이 겹치기 때문에 우리 기업간에도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다. M&A 성과가 실제로 득이 되었는지는 여러 해가 지난 후에야 판가름 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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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대형 M&A의 포문은 SK그룹이 열어젖혔다. SK㈜와 SK E&S가 손잡고 플러그파워 지분 9.9%를 15억달러를 들여 사들이기로 했다. 국내는 물론 아시아 수소시장에서도 기선을 잡겠다는 포부다. SK그룹은 작년 수소사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꼽고 SK E&S, SK이노베이션 등 에너지 관계사와 함께 ‘수소사업추진단’을 설립했다.
SK그룹은 기존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해외 M&A도 분주하다. SK㈜의 해외 자회사 SK팜테코는 바이오 CMO(위탁생산) 이포스케시(Yposkesi) 인수를 추진 중이다. SK하이닉스는 불과 3개월 전 인텔의 낸드 사업부를 90억달러(약 10조3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티맵모빌리티를 분사해 글로벌 공유차량업체 우버의 투자를 유치했고, 11번가는 세계 최대 이커머스사 아마존과 손을 잡는 등 소문을 모두 현실화했다.
SK그룹의 발빠른 행보는 그룹 철학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는데 플러그파워 M&A도 그 일환이다. M&A 성과에 따라 그룹 수뇌부의 역학구도도 달라졌다. 그룹 M&A의 주축인 박정호 SK텔레콤 사장과 수소사업 중책을 맡은 유정준 SK E&S 사장이 연말 인사에서 부회장에 올랐다. 추형욱 SK E&S 사장도 플러그파워 투자를 이끈 공로로 승진했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올해도 SK그룹이 관심을 가질 영역은 바이오와 반도체”라며 “반도체는 인텔 낸드를 인수했으니 대형 거래보다는 소형 기술 기업에 집중할 것이고, 바이오는 미국 SK팜테코를 주축으로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 체제가 공고해진 현대차그룹의 미래 전략은 점차 뚜렷해 졌다. 그룹의 사업군 비중을 미래차 50%, 개인항공기 30%, 로봇 20%로 맞춘다는 청사진을 빠르게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그룹 사상 가장 큰 규모의 M&A였던 앱티브(Aptiv)와의 합작을 통해 자율주행 차량에 힘을 실었다. 오로라(Aurora), 리막(Rimac) 등 각 분야 선두기업과도 손잡았다. 현대크래들, 전략기술본부, 기획조정실까지 다양한 부문에서 움직였다.
지난달 발표한 보스턴다이내믹스 인수로 더 이상 자동차 시장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기아차는 최근 사명을 자동차를 뺀 기아(KIA)로 확정하면서 이 같은 확장 및 재편의 기조는 명확해졌다. 항공우주모빌리티(UAM) 분야에선 상당히 앞서 있다. 작년 CES에서 우버와 개인용비행체(PAV)를 선보인 현대차는 2025년 최종 상용화를 목표로 삼고 있다. UAM 사업을 이끄는 신재원 사장, 연료전지사업을 맡은 김세훈 부사장 등은 정 회장의 전폭적인 지지 속에 초고속 승진했다.
현대차의 사업 확장은 미래차 시장에서 뒤처졌다는 위기감에서 비롯됐다는 평가다. 유럽과 미국, 일본의 경쟁사보다 기술 개발에 늦게 뛰어들었는데 구글과 바이두 등 ICT 기업들까지 미래차 경쟁에 뛰어들며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글로벌 기업에서 각 분야의 인재를 끌어들였는데, 이는 정몽구 명예회장 시대의 종식을 불러왔다. 현대차는 지배구조 개편에서 한 차례 큰 실패를 맛봤기 때문에 더 실효성 있는 청사진이 필요한 상황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현대차의 M&A는 미래차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일 뿐 아니라 각 계열사별로 새로운 성장 스토리를 만들어 주면서 지배구조 개편 과정을 매끄럽게 하기 위한 사전작업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LG그룹은 4대 그룹 중에서도 해외 M&A에 보수적이었다. 2018년 오스트리아 전장 업체 ZKW에 조단위 자금을 들였을 뿐 이후 잠잠했다. 2018년 구광모 회장이 4세 경영 시대를 열었지만 새로운 색채를 갖추기보다 이 전의 비주력, 비핵심 자산 정리에 먼저 공을 들였다. 상징과도 같았던 중국 베이징 트윈타워도 매각했다.
최근 들어 분위기가 달라졌다. LG전자는 지난달 글로벌 자동차 부품사 마그나인터내셔널과 손잡고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규모 전기차 부품 합작법인(JV)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달 초엔 미국 데이터 분석 스타트업인 알폰소를 8000만달러에 인수하기로 했다. 다른 그룹에 비하면 갈 길이 멀지만 작년 사업보고회를 기점으로 그룹의 성장 방향이 명확해진 분위기다. M&A 인력을 확충하려는 수요도 있다.
LG그룹은 작년 LG에너지솔루션 분사, 구본준 고문의 계열 분리가 있었다. LG화학은 새로운 성장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 기존 주력인 석유화학 부문은 국내 비중이 높기 때문에 올해는 해외 M&A 기회를 물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오 사업도 육성 가능성이 크다. 계열분리로 실리콘웍스가 떨어져 나갔는데, LG그룹이 다시 반도체 산업에 발을 들일지 관심사다. 반도체는 LG그룹이 주목하는 전기차에서도 중요한 영역이다.
한 증권사 전자 담당 연구원은 “현재 완성차 업계의 화두는 제조사에서 IT 기업으로의 변모인데, 반대로 보면 전통 완성차가 아니라도 기술만 있으면 전기차 시장에 진출할 수 있다”며 “현대차나 LG전자의 주가가 상승한 것은 결국 기업성격이 바뀌고 있고 이를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 입장에선 해외 사업 확장이 필수가 됐다. ‘선택과 집중’ 경향이 강해지면서 비주력 사업을 정리했으니 새로운 아이템을 채워 넣어야 하는데 국내에선 매물이 마땅치 않다. 총수가 화두를 던져도 국내에만 앉아서는 성과를 낼 수 없다. 그룹의 미래나 오너의 입지 강화는 해외 M&A 성과에 따라 갈릴 가능성이 크다.
기업들이 국내에서 그린필드 전략을 펼치긴 쉽지 않다. 뉴딜 정책의 성과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정부는 시스템반도체·미래차·바이오헬스 등 3대 신산업이 새로운 주력으로 빠르게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반색할 뿐 규제 완화엔 관심이 없다. ‘공정경제 3법’에 이어 ‘중대재해처벌법’도 통과됐다. 기업들은 실기하지 않기 위해서든 현실적 고려에서든 지금까지 쌓아둔 자금을 올해 해외로 쏟아야 할 상황이다.
삼성그룹도 올해는 해외 M&A에 나서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나온다. 2017년 하만을 인수한 후 대규모 거래가 없었다. 반도체와 가전의 호황이 언제까지 이어질 지 불투명하다. 이재용 부회장이 다시 실형을 선고받으며 입지가 좁아졌지만 언제까지 제자리만 지킬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부회장이 고른 4대 성장동력(인공지능·5G·바이오·전장) 모두 챙길 것이 많다. 삼성전자가 주춤한 사이 글로벌 테크 기업들은 활발하게 합종연횡을 이뤘다.
물론 이건희 회장 별세 후 상속 마무리 작업이 급선무다. 이 회장이 보유한 상속 대상 주식은 삼성전자(4.18%), 삼성생명(20.76%), 삼성물산(2.88%) 등으로 상속세 규모는 10조원 이상이다. 상속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가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에 앞서 삼성생명이 가진 삼성전자 지분 8.5%를 확보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롯데그룹은 작년 인사에서 임원진을 대폭 줄였다. 그룹 M&A의 상징인 황각규 부회장이 물러났고, 조직도 사실상 와해됐다. M&A는 이제 각 BU에서 주도해야 한다. 과거처럼 시장이 성숙한 후 2~3위 사업자를 인수해 뒤따라가는 전략은 빛을 잃은 지 오래다. 부진을 겪는 유통 BU의 경우 확장 의지가 불투명하고 해외 채널도 줄이는 모습을 보였다. 그보다는 모빌리티 확장 계획을 밝힌 화학BU에 시선이 모인다. 롯데케미칼은 꾸준히 소재사업 M&A 기회를 물색해왔다. 롯데정밀화학은 두산솔루스 M&A에서 재무적투자자(FI)로 참여했다.
해외 M&A 의지와 필요성이 반드시 긍정적인 효과로 발현될지는 의문이다. 하만이나 모멘티브 등 대형 해외 거래도 기대했던 성과가 아직 발현되지 않고 있다. 그룹 총수는 내건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그간의 공로를 인정받은 임원들은 다시 역량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M&A 성과를 서두르면 협상력이 약화하거나 보여주기식 거래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 무리한 투자는 주주가치에도 득이 되지 않는다.
LG전자와 매그나 합작만 해도 평가가 엇갈린다. 유망한 ‘전기차’ 관련 사업이지만 실질은 제조업이다. 파워트레인 분야는 글로벌 기업들의 각축이 심하다. 합작도 마그나가 신성장 자금을 넣는 것이 아니라 구주를 사는 방식이다. 일각에선 사업이 잘 되지 않을 경우 LG전자가 손을 떼기 더 편해진 면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현대차와 앱티브가 합작할 때도 고가 투자란 시선이 있었다. 자율주행 5위권 업체 중 유일하게 남은 곳이다보니 비싼 가치를 쳐주고야 손을 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애플과 손을 잡는다면 유의미한 이익을 거둘 수 있을지 관심사다.
해외 M&A로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것은 비단 우리 기업만의 고민이 아니다. 유망한 기업일수록 해외 기업과 인수 경쟁을 벌여야 한다. 주요 그룹들의 세부적인 지향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큰 화두는 반도체, AI, 모빌리티, 바이오, 신소재 등 겹치는 것이 많다. 당연히 국내 기업간 경쟁은 불가피하다. 작년 글로벌 화학사 사솔의 에탄크래커센터(ECC) 인수전엔 한화솔루션과 LG화학, 롯데케미칼 등이 관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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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1월 19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