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관사단 공모가 산정 애먹어, 목적은 '우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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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상장 직후 주가가 급등하는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 지난해 '빅히트 쇼크' 이후 잠시 냉각기를 거쳤던 공모주 기대감이 다시 부풀어오르는 모양새다.
‘따상’에 대한 열망이 많아질수록, 주관사들의 기업가치 산정(밸류에이션)에 대한 압박도 커진다는 분석이다. 시장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일부러 공모가를 낮게 산정하거나, 수요예측 이전에 기관투자자와 미리 손발을 맞추는 현상도 빈번하다는 후문이다.
지난 12월 신규 상장한 기업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공모가보다 2배 이상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명신산업은 공모가보다 무려 6배 넘는 4만3100원에, 포인트모바일, 알체라, 석경에이티 등도 세 배가 넘는 가격대가 형성됐다. 9월 상장한 박셀바이오는 지난 7일 주가가 30만원에 육박하면서 수익률이 한 때 10배까지 오르기도 했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일반적인 사례가 됐다. 지난달 12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한 에어비앤비는 상장 첫날 공모가 대비 112% 폭등했고, 인슈어테크 레모네이드 역시 7월 상장 당시 첫날 주가가 140% 가까이 올랐다.
급등한 종목들은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투자 시점에 따라 투자자들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공모주 투자자는 안정적으로 큰 이익을 냈을 가능성이 크지만, 대부분 청약경쟁률이 1000대 1을 훌쩍 넘었기 때문에 수익 규모는 미미할 거란 지적이다. 상장 후 급등하는 걸 보고 투자한 투자자는 손실을 봤을 가능성이 크다. 최근 박셀바이오가 대표적이다. 한 때 공모가(3만원) 대비 10배 오른 30만원까지 상승하면서 연일 투자자들의 입에 오르내렸지만, 지금은 그 절반 수준인 17만원대까지 떨어졌다.
주관사의 고민도 커졌다. 정석대로 밸류에이션을 하자니 수요예측에 실패할 수 있고, 그렇다고 공모가를 낮게 설정하자니 향후 밸류에이션 전략 실패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탓이다. 그럼에도, 일부 증권사들은 수요예측 흥행과 투자자의 기대 부응을 위해 처음부터 공모가를 낮게 설정하는 사례도 있다는 후문이다. 최근 씨앤투스성진이나 모비릭스 등 수요예측 흥행이 이어지는 가운데 흐름에 동참해야 하는 분위기도 한 몫 한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투자자들이 워낙 공모주 수익률에 대한 기대를 많이 가지고 있다.”라며 “공모가를 높게 형성해서 떨어지는 것보다 꾸준히 우상향하거나 ‘따상’을 꾀하는 것이 요즘 분위기”라고 말했다.
한 IB업계 관계자도 “(공모가를 산정할 때는) 발행사의 눈치도 봐야 하고, 수요예측에도 흥행해야 한다. 국내 기관투자자를 제외하고 해외투자자와 미리 연락해 수요예측 결과와 공모가액을 맞추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이를 제재할 뚜렷한 방법이 없다는 점은 문제다. 지난해 빅히트 사태 당시 금융감독원이나 한국거래소에서 상장기업을 대상으로 심사기준이 높아졌지만, 원칙적으로 주관사와 발행사의 영역인 공모가 산정을 놓고 왈가왈부할 마땅한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금감원도 인력이 제한적인데, 전문 영역인 밸류에이션을 일일이 살펴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며 “실제로 빅히트 이후 일부 기업에 한해 공모가 산정 과정에 개입을 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증권신고서 수정 요청 정도만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상장을 꾀하는 기업들의 경우, 대부분 증권신고서 정정 과정을 거친다. 다만 공모가 관련해서는 가치산정 방식이 다소 부정확할 수 있다는 점을 안내해주는 정도에 그친다.
이미 투자를 선행한 기관투자자의 입장에서도 이를 제재하기가 쉽지가 않다. 일단 수요예측에 성공해야 하기 때문에 공모가액을 낮춰서 설정하는 것을 굳이 통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국내 기관 관계자는 “공모가액이 낮아지면 투자자 입장에서 회수금이 줄어들 수 있지만 그것보다는 수요예측 결과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대체로 주관사의 편의를 봐주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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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1월 20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