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호重 2003년부터 추진했지만 아직도 상장 미정
현대오일뱅크 역시 타이밍 놓쳐 상정 '수면 아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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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내 기업공개(IPO)요? 그 현대중공업이요? 그렇게 의사결정이 빠른 회사가 아닌데요. 진짜 연내 진행할 진 지켜봐야 할 겁니다." (한 증권사 IPO 담당 임원)
현대중공업은 국내 자본시장 초창기부터 기업공개(IPO)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줄 알았던 몇 안되는 회사로 꼽힌다. 다만 언제나 의사결정 시점이 발목을 잡았다는 평가다. 2000년 이후 20년간 주력 계열사의 상장을 수 차례 검토했지만, 상장을 완료한 건 중소규모 비(非)조선 계열사인 현대에너지솔루션(2019년) 단 한 곳 뿐이다.
2019년 한국조선해양에서 분사한 조선사업부문 자회사 현대중공업(신설 현대중공업)의 연내 상장 발표를 전해들은 증권가의 시선이 시큰둥한 건 이런 이유에서다. 상장 우선 순위에서 밀린 현대삼호중공업 주주들도 계산이 복잡해질 거란 지적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20년간 주력 계열사의 상장을 검토하다가, 시장 상황 등을 이유로 이를 철회하는 '역사'를 반복해왔다.
현대삼호중공업이 대표적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이 처음 상장을 검토하기 시작한 건 지난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르면 내년(2004년)부터 상장을 검토하겠다'라며 군불을 지폈다. 당시에도 장외시장 대장주였던 현대삼호중공업 장외가도 기대감에 치솟았다.
2003년부터 2007년까지 '순환업종'인 조선업계가 상승 싸이클을 탔다. 예상 기업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치솟았다. 2006년엔 '하반기 상장 유력'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실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2007년 5월 현대삼호중공업 장외가가 역사적 신고점을 경신했다. 그래도 '상장 개시'라는 이사회 결의는 이뤄지지 않았다.
2007년 말 증시가 흔들리더니 2008년 리먼브러더스발(發)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해양플랜트 과다 투자에서 비롯된 조선업종의 겨울도 시작됐다. 자연스레 현대삼호중공업의 상장 가능성은 쑥 들어갔다.
현대오일뱅크도 비슷한 단계를 밟았다. 현대중공업은 1999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국영석유투자회사에 매각했던 현대오일뱅크 경영권 지분을 2010년 되찾아왔다. 이 과정에서 단기자금인 기업어음(CP)으로 대규모 차입을 일으켰다. 이를 갚기 위해 2011년 곧바로 현대오일뱅크의 상장 절차를 시작했다.
2011년 10월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 등 주관사 선정까지 완료했다. 2012년 4월 상장 예비심사 청구까지 이뤄졌다. 하반기 증시 입성은 기정사실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이 역시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 2012년 유로존 위기가 몰아닥치자, 현대오일뱅크는 그해 6월 상장 예심 청구를 철회했다. 제 값을 받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취지였다.
유로존 위기가 끝나니 실적이 악화했다. 2014년 현대오일뱅크는 당기순이익이 불과 41억원에 그쳤다. 상장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실적이 어느정도 회복세에 접어든 2018년 다시 주관사 선정에 착수했고 권오갑 당시 부회장이 '10월에 상장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역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처리가 이슈가 되며 감리가 엄격해진 탓이었다. 자회사 회계처리에 대해 금융당국이 엄중한 잣대를 들이대며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결국 현대중공업그룹은 사우디 아람코에 현대오일뱅크 지분 19.9%를 매각하며 자금을 조달했다. 이후 현대오일뱅크 상장 가능성은 다시 수면 아래로 쑥 내려갔다.
현대중공업그룹 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 계열사 중 상장사는 한국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 현대에너지솔루션 3곳에 불과하다. 현대미포조선은 1983년, 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은 1999년 상장했다. 이후 20년간 상장에 성공한 계열사가 현대에너지솔루션 한 곳 뿐이다.
1999년 한국조선해양(옛 현대중공업) 상장은 '전광석화'였다. 1999년 6월 이사회에서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결의했고, 8월 공모절차를 마치고 상장했다.
당시 현대중공업의 움직임이 빨랐던 이유는 크게 세 가지였다. 현대중공업은 1993년부터 상장 가능성을 타진했지만, 대선 후보로 나섰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을 견제하려는 당시 김영삼 정부가 이를 호락호락 허용하지 않았다. 정권이 바뀐 후에야 허가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당시 장외시장으로 취급받았던 코스닥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명예 욕구'도 컸다. 당시 민영화 매물로 손꼽힌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인수를 위한 실탄 마련도 시급했다.
이후 현대중공업 계열사 상장 준비 과정에선 이런 '절박감'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2012년 현대오일뱅크 IPO를 준비했던 한 업계 관계자는 당시 현대중공업그룹의 내부 분위기를 '공무원보다 더한 집단'이라고 표현했다. 상장을 완수해야 한다는 사명감보다는, 최고경영진이 원하는 가격보다 공모가가 낮게 나올 경우 책임을 추궁 당할 걸 두려워하는 정서가 팽배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상황이 아직도 달라지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신설 현대중공업 연내 상장 발표 역시 스스로 '외통수'를 뒀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상장 추진과 동시에 최소 1조원을 성장 사업에 투입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두 사안을 연결해 발표하진 않았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신주 20% 발행으로 1조원 이상을 조달하겠다'고 읽힐 개연성이 충분했다는 지적이다. 목표 기업가치와 공모가를 특정해버린 것이다.
현대삼호중공업의 상장 시점도 껄끄럽게 됐다. 현대삼호중공업은 지난 2018년 상장 전 투자(Pre-IPO)를 통해 IMM프라이빗에쿼티로부터 4000억원을 유치했다. 당시 5년 내 상장을 약속했다. 2023년까진 상장 절차를 추진해야 한다. 일단 올해 신설 현대중공업이 상장 우선권을 가져가면, 현대삼호중공업의 상장은 일러야 2022년 하반기라는 말이 된다.
한 대형증권사 IPO 담당자는 "지금 같은 시장이 지속된다면 언제 상장을 하든 상관이 없겠지만, 내년 증시가 망가지면 약속 시한이 코 앞인 상황에서 공모가는 마음에 안 드는 사면초가에 처할 수 있다"며 "게다가 발표대로 현대중공업이 올해 상장한다면, 공모 분위기와 이후 주가 추이가 현대삼호중공업 상장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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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2월 01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