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필두로 은행계 증권사들 빅딜 관심 높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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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한 증권사는 최근 현대중공업 거래 수주에 사활을 걸었다. 이달 초 현대중공업의 ‘깜짝 발표’에 일정은 턱없이 부족했지만, 입찰제안서 및 경쟁 프레젠테이션(PT) 준비를 위해 명절도 반납하고 일에 매진했다. '윗선'에서의 관심이 커지며 부서장의 심리적 압박감이 상당했다는 후문이다.
‘대어급’ 공모로 꼽히는 현대중공업의 주관사 선정 절차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19일 입찰제안서를 제출한 증권사들은 이후에도 야근을 불사하며 PT 준비에 시간과 자원을 집중했다.
주로 중소형 거래에 집중했던 은행계 증권사들도 올해부터는 빅딜에 사활을 걸고 있다.
그동안 은행계 증권사들은 미래에셋대우, 한국투자증권 등 소위 ‘빅3’가 독식하는 대형 상장 거래에 목매지 않았다. 그보다는 중소형 거래 위주로 ‘선택과 집중’을 통한 전략적 수주에 주로 힘써왔다. 수주 경쟁이 치열한 증권업계에서 나름의 생존(?) 전략을 찾았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KB증권이 LG에너지솔루션과 카카오 계열사 등 굵직한 대기업 계열사 거래를 잇따라 수주하자 이러한 기류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다. 은행계 증권사에도 '빅딜 압박'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미 지주 단에서는 계열 증권사와 경쟁 그룹 계열 증권사의 실적을 비교하고 평가하는 게 일상이 돼있는 상황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원래는 대형 거래는 RFP가 잘 오지도 않았고, 오더라도 참가에 의의를 두는 경우가 많았다. 어차피 채택이 안 되니 굳이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우리의 주요 고객층인 중소기업과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라며 “그런데 올해 초부터는 윗 선에서 빅딜도 손 놓지 말자는 기조가 강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은행계 증권사의 접근 난이도가 비교적 낮은 발행사로 꼽힌다. 제작금융ㆍ운전자금 융통 등을 위해 은행권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야만 하는 까닭이다. 현대중공업은 이미 2011년 계열사 현대오일뱅크 주관사 선정 당시 은행계 증권사로만 주관사단을 구성했던 전례가 있다. 당시 우리금융 계열 우리투자증권(현 NH투자증권)이 대표주관을 맡았고, 신한금융투자ㆍ하나금융투자ㆍKDB대우증권(당시 산업은행 계열)이 공동주관사로 참여했다.
현대중공업은 어쩌다보니 KB증권이 LG에너지솔루션의 대표 주관사로 선정된 후 처음 주관사 선정을 진행하는 대기업 계열사 거래가 됐다. 자연스레 은행계 증권사들이 받고 있는 '부담'이 고스란히 투영될 수밖에 없다.
이들이 목을 매는 건 수수료 수익보다는 역시 '트랙레코드'다. 대부분의 대형 발행사는 주관사 선정 과정에서 '빅딜 트랙레코드'를 요구한다. 수천 억에서 조 단위의 거래를 조정해 본 경험이 있는지, 기관에 대한 홀세일(wholesale) 역량이 충분한지 검증하려는 절차다. KB증권 역시 2017년부터 IPO를 비롯한 주식자본시장(ECM) 공략에 공을 들여왔지만, 빅딜 트랙레코드가 없어 진척이 더뎠던 게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이번 거래에서 도태되는 증권사는 앞으로 수년 간 고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운이건 실력이건 한 고비를 넘어선 KB증권과 앞으로도 계속 비교당하며 경영진의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자연히 올해를 계기로 은행계 증권사 간 경쟁 구도도 더욱 격화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
이런 상황을 초래한 KB증권에 대한 불편한 심기도 일부 엿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실 KB증권이 영업을 매우 잘했다기보단, 전기차 업계의 미묘한 힘 싸움과 지주의 후광 등에 힘 입은 게 사실"이라며 "결과만 놓고 저기는 하는데 너희는 왜 못하냐고 압박을 받으면 실무진 입장에선 답답하긴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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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2월 25일 13:35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