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는 전략적 기부 강조하는 '벤처기부' 화제
기부효과, 자칫 정부의 선심성 정책처럼 변질 될 수도
하지만 재계 확산 시 정치권 '기업옥죄기' 반전카드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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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에 이어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도 전 재산의 절반 이상을 사회에 내놓기로 하는 등 빅테크 창업자들의 ‘기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재산, 경영권 대물림을 반복하던 기존 재계에 신선한 충격으로받아들여 진다.
하지만 이들의 기부릴레이가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사업에서 보여준 혁신이 기부에서도 나타나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나아가 '이익공유제' 등 기업규제 목소리가 커지는 환경 속에서 해당 움직임이 갖고 올 사회적 파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카카오를 창업한 김범수 이사회 의장이 자신의 재산 절반이상을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격동의 시기에 사회문제가 다양한 방면에서 더욱 심화되는 것을 목도하며 더 이상 결심을 더 늦추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기부에 나선 동기를 설명했다.
뒤이어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도 재산 절반이상을 사회에 환원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위해 김 의장은 세계적기부클럽인 ‘더 기빙플레지(The Giving Pledge)'의 219번째 기부자록 등록했다. 더 기빙클레지는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과 빌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부부가 2010년 함께 설립한 자선 단체다. 10억달러(한화 1조원)가 넘는 자산을 보유해야 가입 대상이 되고 재산의 절반이상을 기부해야 한다.
이 소식에 재계와 정치권은 환호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김범수, 김봉진 의장의 통큰 기부에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일각에선 재벌의 ‘대물림 집착’에 대한 지적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그러나 이들의 기부가 마냥 반갑지만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통큰기부'지만...방식이나 시기 나아가 효과 미지수
단순히 ‘통큰 기부’라고 치켜세우기에는 이들의 기부가 가져올 효과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재산의 절반을 기부한다는 것이 어려운 결정이지만, 기부가 단순히 ‘돈을 내면 사회가 좋아진다’처럼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이미 기부문화가 발전된 해외 사례와는 비교된다.
수년 전부터 해외에선 ‘벤처 기부’가 화제다. 벤처 기부는 전통적 기부 방식이 아닌, 기부를 사회 투자개념으로 보고 자선단체에 투자한다. 즉 돈만 기부하고 마는 게 아니라, 시간과 전문성, 네트워크 등을 동원해 사회 문제 해결에 나서는 추세다.
또한 이전보다 훨씬 더 거대한 문제 해결에 집중한다. 이를테면 ‘장애인을 돕자’ 보다는 ‘사람들에게 더 나은 헬스케어 시스템을 제공하겠다’는 식의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접근한다. 이런 문제 해결은 근본적인 시스템의 변화를 수반해야 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기부를 넘어서 기부 방법을 고민하는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
해외에선 기부를 위한 자선자문단 활동 활발
이처럼 전략적 기부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주목 받는 것이 기부를 위한 자문단이다. 2001년 설립된 록펠러 자선자문단은 록펠러 재단과 별개로 운영되는 곳으로, 자선의 전반에 대한 자문과 운영을 도와주는 비영리 기관이다. 이들은 기부자가 어떤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은지, 어떤 방법이 있을지를 고민해 ‘로드맵’을 작성한다.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단순 기부가 아닌 ‘사회적 임팩트(impact)’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런 점에서 김범수, 김봉진 의장의 기부는 아직까진 이런 사회적 변화에 대한 고민이 보이진 않는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일부에선 ‘통큰 기부’보다는 빅테크 시대에 변화할 사회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진정한 기부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빅테크 기업의 영향력은 전 산업 분야에서 커지고 있다. 카카오는 메신저를 넘어서 모빌리티, 금융 등 전방위로 그영향력을 확대한다. 카카오의 영역확장으로 기존 산업에 있던 종사자들의 일자리 문제는 점점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배달의 민족’ 확장은 국내 자영업 생태계의 근본을 바꿔놓고 있다. 배민에 어떻게 노출되는지에 따라 소상공인 매출은 직격탄을 받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이들 정책에 따라 생사가 갈리는 것이다.
자칫 계획없는 거액 기부가 오히려 ‘사회의 독’이 될 수도 있다.
지자체에서 벌어지는 선심성 사업에도 취약계층의 삶이 나이지지 않는 사례들이 대표적이다. 정부가 실업수당, 취약계층 지원의 막대한 돈을 풀지만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심화하는 현상은 '무분별한 거액 기부가 오히려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의 좋은 예이다.
한 자선단체 운영자는 “거액기부에 환호하기 보다는 이들이 보여줄 기부문화 혁신에 환호해야 한다”라며 “기부로 전 재산을 다 내놓는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빅테크가 가진 사회적 문제는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정치권 기업 옥죄기 분위기 속 반전카드 될지 관심
그럼에도 이번 기부릴레이가 주는 메세지는 가볍지 않다. 부의 불평등 해소를 어떻게 해결할지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여당을 중심으로 특정 기업에 몰리는 부를 재분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익공유제' 입법이 대표적이다. 기업의 팔 비틀기 논란에도 불구, '상생'이란 이름으로 추진되는 입법으로 북유럽을 비롯한 복지국가를 표방하는 국가들에서 나왔던 제도들을 본뜨려는 모습이다.
이에 반해 미국에서는 거액 자산가의 자발적 기부문화가 '꽃'을 피웠다. 굳이 국가가 나서지 않아도 특정집단의 부가 사회적 약자로 흘러들어가는 '파이프 라인'이 미국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다. 유럽식 자본주의와 미국식 자본주의가 갈리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한국은 미국도 유럽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의 모습으로 발전해왔다. 그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유럽식 모델을, 빅테크창업자들은 미국식 모델로 현재의 부의 불균형 문제를 접근하고 있다. 이번 기부릴레이가 재계 전반으로 퍼질지, 아니면 소수 몇명의 선행으로 끝날지에 따라서 해당 문제를 접근하는 방식이 갈릴 수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특정 기업에 부가 쏠리는 현상은 앞으로도 심화될 것"이라며 "이번 기부릴레이가 그 해답을 새로운 기부문화 정착에서 찾을 것인지, 아니면 국가가 나서서 부를 재분배 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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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2월 2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