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회장 최대 치적인 하나-외환 통합 핵심 인사
함영주-지성규-이진국 사법 리스크 대안 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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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마지막 임기 1년을 남겨두고 하나은행·하나금융투자 등 주요 계열사 CEO에 깜짝 인사를 등용했다. 두드러진 대외활동이 눈에 띄지 않았던 내부 인사들의 발탁이다. 복심(腹心)역할을 한 최측근 인사들에 대한 보은(報恩)이란 평가와 포스트 김정태 회장 시대를 맞아 김 회장이 추후에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나은행장 최종 후보에 낙점된 박성호 부행장(디지털리테일그룹)의 경우, 김 회장이 이전부터 최고경영자를 염두에 두고 육성해 온 인재라는 평가가 많다. 기존 최고경영자들이 사법 리스크에 휘말리며 등판 시기가 다소 빨라졌고, 이로 인해 '깜짝 인사'라는 말이 나오게 됐다는 분석이다.
하나은행은 오는 25일 주주총회를 열고 그룹 및 은행 임추위가 단독 후보로 추대한 박성호 현 하나은행 부행장을 은행장으로 선임하는 안건을 통과시킬 예정이다. 지난달 말 열린 그룹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선 박성호 부행장과 이승열 부행장을 복수후보로 추천했고 곧이어 개최한 은행 임추위에선 박 부행장을 단독 추대했다.
박 부행장은 앞서 차기 회장 후보 추천 과정에서 최종 후보 리스트 4인 중 하나로 포함되며 주목을 받았다. 지성규 하나은행장이 회장 후보에서 제외된 상황에서 유일한 50대 회장 후보였다. 이미 1년 전부터 김 회장의 1년 연임이 언급되고 있던 상황이라, 행장 교체 수순이 아니겠느냐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이어진 행장 인사에서 박 부행장이 새 하나은행장으로 지명됐다.
박 부행장은 1987년 하나은행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에 입사해 33년 하나금융그룹에 몸 담은 내부인사다. 하나은행 경영관리 본부장, 하나금융지주 경영지원실장을 맡으며 김정태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다.
2015년 외환은행 노조의 통합금지 가처분을 법원이 받아들이며 당시 하나은행-외환은행 통합을 담당하던 고위 임원 3명이 사실상 경질된 상황에서, 그룹 최고전략책임자(CSO)이자 통합추진단장을 맡아 갈등을 봉합하고 연착륙시키는 데 성공했다. 2016년부터는 정보기술(IT) 계열사인 하나금융티아이 대표를 맡아 두 은행의 전산통합 실무를 총괄했다.
지난 2015년 7월 김정태 회장이 외환은행과 통합 합의서에 서명한 직후, 금융위원회에 직접 예비인가를 신청하기위해 모습을 나타낸 인사가 바로 박성호 당시 하나금융 그룹전략 총괄(당시 전무)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당시 법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불거진 통합 갈등을 조기에 봉합하며 김정태 회장 눈에 들었고, 이후 김 회장이 직접 박 부행장을 하나금융티아이 대표로 낙점했다"며 "김 회장 최대 치적으로 꼽히는 하나-외환 통합 작업과 청라통합데이터센터의 핵심 공로자로서 차근차근 최고경영자 수업을 받아온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사실 금융업계 내에서 이름이 갖는 무게감, 그간의 행보에서 나타난 존재감을 비쳐볼 때 박성호 부행장이 행장에 추대될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함영주 전 행장(현 부회장)이 지난 2019년 채용비리 혐의를 받아 행장 연임 포기 의사를 밝힌 후 발탁된 지성규 현 행장은 경영성과 측면에선 크게 흠잡을 게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지 행장은 행장 임기를 마친 이후 그룹 부회장 선임이 거론되고 있다. 다만 이를 두고 '예우 차원'이라는 해석이 흘러나온다. 잇따른 사모펀드 사고와 관련한 책임을 묻고, 결과에 책임을 다하라는 뜻으로 업계에선 해석하고 있다. 가장 유력한 차기 회장 후보로 꼽히는 함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역시 사법 리스크에 노출돼있는 지 행장까지 차기 최고경영자 후보 풀(pool)에 들어가진 않을 거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발탁된 박성호 행장 후보에 대한 집중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만약 올해 진행될 예정인 징계 관련 행정소송에서 함 부회장이 사법 리스크를 해소하지 못하면, 박 후보가 차기로 부각할 가능성이 커진다.
다만 이 경우 최고경영자 경험이 적다는 단점이 부각할 수 있다는 평이다. 하나금융 입장에선 김정태 회장의 마지막 1년 임기 중 함 부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해소되고, 함 부회장이 회장직을 역임하는 상태에서 박 행장이 3~4년가량 은행장 경험을 충실하게 쌓는 게 최고의 지배구조 시나리오가 되는 셈이다.
일각에선 이런 식으로 최고경영자 승계가 이뤄질 경우, 김 회장이 퇴임 후에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함 부회장 역시 2015년 두 명의 현직 은행장을 제치고 '깜짝 발탁'됐다. 김 회장 및 조직에 대한 로열티가 핵심 배경으로 거론됐다. 박 행장 후보 역시 '김 회장 라인'으로 분류되는만큼, 이후에도 상당기간 김정태 회장의 그림자가 그룹 경영에 어른거릴 수 있다는 것이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이뤄진 하나금융 CEO 인사의 핵심은 김정태 회장이 점찍어 둔 최고경영자 후보들이 대거 약진했다는 것"이라며 "무난한 연임이 예상되던 지 행장의 임기를 2년으로 끊고 박 후보를 올렸다는 건 김 회장이 자신의 임기 중 후계 구도를 정리하려는 의도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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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3월 16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