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선 '사모펀드' 금기어
운용사들 사이에서 독립적인 수탁기관 만들자는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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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부실사태의 ‘여진’이 지속되고 있다. 사모펀드 설정액은 줄어들고 어렵게 자금을 모아도 돈을 보관해 줄 수탁은행을 찾기는 이제 거의 불가능에 가까워졌다. 돈도 있고, 투자할 때가 있어도 수탁은행이 없어서 투자 하지 못하는 사태에 운용사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국내의 한 신생 운용사는 1000억원 이상의 펀드를 조성했지만, 수탁은행에 발목이 잡혀서 투자 집행을 못하고 있다. ▲신생 사모펀드에 ▲해외투자까지 은행들이 불편해 하는 모든 요소를 갖췄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은행장까지 만나서 수탁업무를 해주겠다는 ‘오케이’ 사인을 받아도 실무진에서 퇴짜를 놓아버리는 경우도 있다. 실무진이 굳이 그 책임을 “내가 져야 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 ‘수탁 위원회’에 안건을 올려 부결시킨다. 은행원들 사이에선 '사모펀드'는 금기어로 통한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어디를 찾아가도 수탁은행을 해 준다는 곳이 없어서 펀드만 만들어 놓고 투자를 못하는 상황이다”라며 “작년 연말이 지나면 조금이나마 풀릴까 했는데 최근 상황은 은행들이 아예 못한다는 분위기로 더욱 냉각됐다”라고 말했다.
수탁은행 이슈가 불거진 것은 작년 사모펀드 사태가 터지면서다. 하나은행이 옵티머스 사모펀드 수탁사로 곤혹을 치르자 시중은행들이 수탁계약 거부에 나서면서다. 자산운용사가 펀드를 만들어 은행, 증권사 등을 통해 판매하면 그 자금은 수탁은행에 들어간다. 그저 운용사의 자금을 보관하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감독당국이 사모펀드 부실 사태의 책임을 수탁은행에 물으니 은행들이 수탁계약을 거부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제는 아예 수탁은행의 감시 업무를 강화하는 법안까지 통과된 상황이다.
지난달 24일에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은행, 증권사 등 수탁기관의 사모펀드 감시의무가 강화됐다. 수탁기관은 펀드 운용지시의 법령, 규약, 설명서 준수여부를 감시하고 불합리한 운용지시가 있는 경우 시정요구를 해야한다. 법상으로 수탁계약을 금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실상 수탁은행이 감시 업무까지 해야 하고, 그 책임도 져야 한다는 점에서 은행이 해당 업무를 할 유인이 전혀 없어졌다는 게 업계 평가다.
이러다 보니 운용사들끼리 출자해서 별도의 수탁기관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은행, 증권사 모두 수탁 업무에 대한 책임 강화로 누구도 해당 업무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렇다 할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법률적인 절차에 대해선 논의가 필요하지만 적어도 운용사들끼리 만이라도 모여서 해당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한 자산운용 업계 관계자는 “펀드를 만들어도 수탁은행이 없어서 투자를 못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면서 “운용사들끼리 힘을 모아 해당 업무를 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관을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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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4월 04일 07:00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