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벤처캐피털(VC) 투자철학 벤치마킹 움직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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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이전에는 다수의 스타트업에 ‘일단 투자하고 보자’는 식이었다면, 이제는 전략적 투자자(SI)로서 추후 사업기회를 적극적으로 찾는 모양새다. 쿠팡, 마켓컬리, 크래프톤 등 유니콘 기업들이 속속 나오면서 대기업들이 스타트업 투자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자연스레 투자 과정의 디테일도 변화하고 있다. 추후 사업 협력까지 염두에 둔만큼 계약서 작성부터 기존의 벤처캐피털(VC)들이 차용했던 방식과는 완전히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수 후 통합(PMI) 작업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대기업들의 주안점으로 꼽힌다.
최근 국내 한 대기업은 벤처투자 시 유의할 점 등을 배우기 위해 외부 강의를 진행했다. 사내 벤처투자(CVC) 팀원 등 수십 명이 화상 콘퍼런스에 참여했다. 스타트업 투자 시 계약서 작성 등의 기본적인 내용부터 최근 투자 동향까지 말 그대로 ‘스타트업 공부’에 푹 빠졌다는 전언이다.
대기업들은 스타트업 투자 시 향후 사업협력을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계약서 작성 단계부터 전략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 VC들은 스타트업의 현재 가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향후 투자회수 수단을 확보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둔다. 회사와 주주들이 회사 정보를 진술하고, 해당 내용이 사실과 다를 경우 책임을 지도록 하는 이유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투자 수익률보다는 경영 참여권 등 향후 사업협력을 위한 수단이 중요하다. 진술 및 보장이나 수익 보장형 투자와 관련한 부분을 다소 포기하더라도 사업협력 시 독점적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래 사업협력 가능성을 미리 계약서에 명시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특정 대기업이 배달 대행 플랫폼을 인수하는 경우 해당 기업의 물동량을 우선적으로 처리하도록 하는 등의 조건을 내거는 식이다. 김남훈 법무법인 위어드바이즈 변호사는 “대기업들은 향후 플랫폼 통합 등의 볼트온(유사업체와 인수합병)하는 그림을 염두에 둔 경우가 많다”라며 “일반적인 VC 계약은 이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에 특허법, 개인정보보호법 등 데이터 공유 법리, 공정거래법 검토를 통한 계약서 고도화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반면 대기업들은 투자 기업에 대한 실사 과정은 더욱 정교하게 진행해야할 필요성이 크다. 단순 투자자들은 투자대상의 가격이 적정한 지 여부만 파악하면 됐지만, 대기업들은 미래의 사업 시너지까지 고려해야한다. 이 때문에 대기업들이 투자한 스타트업의 사업적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관리·감독할 수 있는 툴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이다. 예를 들어 단순히 해당 스타트업의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사례만을 파악하는 것보다, 해당 법령과 관련한 다수의 질문리스트를 만들어 주기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적합할 수 있다.
대기업들이 최근 플랫폼 기업 인수에 관심이 많아진 만큼 실사뿐 아니라 PMI 등 사후 관리의 중요성도 부각되는 모양새다. 불특성 다수의 개인이 모이는 플랫폼 기업에 투자하게 되면, 그만큼 인수 주체로서 관리‧감독의 의무까지 짊어질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롯데나 신세계 등 전통 대기업들의 인수합병(M&A) 행보를 보면 플랫폼 회사를 통한 몸집 불리기 위주”라며 “대기업으로서는 해당 플랫폼을 인수해 사건, 사고가 발생할지 또는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 등이 가장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정거래법에 저촉되지 않도록 투자 기업의 지분율을 조정하는 것 역시 대기업들의 주된 현안으로 꼽힌다. 3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최다 출자자인 경우 계열회사로 편입해야 하는데, 이 때 해당 회사와 거래에 제약이 발생할 수 있어 대기업들이 상당히 조심스러워한다는 후문이다.
대형 로펌의 한 기업자문 변호사는 “공정거래법상 특수관계인으로 분류된다면 부당지원, 일감 몰아주기, 법인세법 등 여러 항목을 신경 써야 하므로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 시에 이를 고려해서 투자 구조를 짜는 것이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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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베스트조선 유료서비스 2021년 04월 12일 07:00 게재]